결국 2년 2만 편 이상이라는 기존 지침에 따라 국제선 취항을 한 항공사는 제주항공뿐이었다. 후발 LCC로 2~3년 늦게 시장에 참여한 대한항공 자회사와 아시아나항공 계열사의 신생 K-LCC들은 1년 1만 편씩 줄어드는 불공정 게임이 되고 말았다. 사실 국제선 취항허가의 기준이 된 2년이냐 1년이냐의 문제는 규제 차원이 아닌 신생 K-LCC에게는 생사가 갈리는 차원이었다. 신생 K-LCC들이 회사 설립 이후 1~2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운항을 시작하고 나면 다시 2년간의 국내선 취항실적을 쌓는 동안 눈덩이처럼 커지는 누적적자를 견뎌내야 하는 보릿고개 기간 동안 살아남아야 하는 서바이벌 게임을 하고 있었다.
국내선에서 2년 이상 운항편수 2만 회의 운항이력을 채우는 동안 자본력이 취약할 수밖에 없는 신생항공사들은 적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국내선 취항조차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대표적으로 부정기항공사였던 한성항공은 취항 2년을 넘기고도 운항횟수에서 2만 편을 넘기지 못해 국제선 취항 기회마저 얻지 못하고 자금난으로 운항을 중단했다. 제주항공 역시 2년여의 국내선 운항기간 동안 수백억원대의 적자를 내며 근근이 버텼다. 이 기간 동안 제주항공은 제1금융권의 대출 거부로 인해 저축은행 등에서 두 자릿수의 이자를 내며 운용자금을 빌려 써야 했고, 매달 돌아오는 대출상환 압박에 부도를 걱정해야 했다.
그런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설립한 K-LCC들은 국내선 취항 1년 만에 국제선에 진출하면서 이 같은 취항 초 어려움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었다. 그래서 K-LCC들의 춘추전국시대를 지나 다수의 K-LCC가 국내외에서 경쟁하게 되자 제주항공을 중심으로 티웨이항공과 이스타항공 등은 ‘독립형 LCC’라는 동질적 집단으로 뭉치고, 진에어와 에어부산은 ‘자회사형 LCC’로 구분돼 K-LCC 안에서도 이질적인 두 집단으로 나뉘는 발단이 되었다.
정부의 이 같은 국제선 취항기준 완화가 한편으로는 K-LCC업계의 과열을 낳았다. 당시 K-LCC 신규 출범을 선언한 항공사들은 전국에 무려 12개사에 달할 정도였다. 때문에 혹자들은 항공사가 고속버스회사보다 많아질 지경이라고 꼬집었다.
제주항공은 2008년 7월11일 국제선에 취항하면서 K-LCC로서는 처음으로 국제선시대를 열었다. 제주항공의 국제선 취항은 국내선 운항 시작 2년 1개월 만이었으며, 우리나라 항공사에서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에 이은 3번째였다.
제주항공의 첫 국제선 취항 당일 국토해양부는 신규 항공사의 국제선 취항 허용기준을 '국내선 2년 이상 운항, 2만 편 이상 무사망사고’에서 ‘국내선 1년 이상 운항, 1만 편 이상 무사망사고’로 완화했다고 확정 발표했다. 국토부는 이 같은 내용의 '신규 항공사 국제선 취항기준(지침)'을 개정해 2008년 7월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국토부는 "최근 K-LCC 설립이 활발해지고 있지만 시장진입에 따른 제한에 대한 우려와 함께 고유가 등으로 장기간 국내선만 운행해서는 수익을 내기 힘든 구조에서 신규 항공사에 지나친 부담이 돼 공정한 경쟁을 저해할 소지가 있어 기준을 완화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로써 신규 항공사들은 국제선에 취항할 수 있는 시기가 모두 1년 앞당겨지게 됐다. 당시 K-LCC업계는 제주항공과 한성항공이 운항하고 있었으며, 2008년 7월 진에어와 영남에어가 취항 예정이었고, 코스타항공ㆍ에어부산ㆍ이스타항공이 2008년 연내에 취항을 준비중이었다.
하지만 2008년 7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국내선 1년 이상 운항, 1만 편 이상 무사망사고’로 완화된 국토부의 '신규 항공사 국제선 취항기준(지침)'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고작 1년도 유지되지 못했다. 2009년 6월10일 항공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완전 폐지된 것이다. 그동안 항공운송사업 면허체계를 정기와 부정기 항공운송사업자로 구분하던 것을 국제, 국내, 소형 3개 항공운송사업자로 개편했다. 이는 항공사 설립 단계에서부터 국제 항공운송사업자로 면허를 받으면 곧바로 국제선에 취항이 가능하도록 개정한 것이다. 국제 항공운송사업자에게 요구되는 조건인 비행기 3대와 자본금 150억원만 갖추면 2009년 9월 이후부터는 국제선을 띄울 수 있도록 했다. 게다가 각 사업자별 등록기준도 크게 완화했다. 국제 운송사업 면허기준은 종전 항공기 5대, 자본금 200억원에서 항공기 3대, 자본금 150억원으로, 국내 운송사업 면허기준은 항공기 1대, 자본금 50억원으로 대폭 완화했다. 소형 운송사업 면허기준은 19인승 이하 항공기 1대와 자본금 20억원 또는 9인승 이하 항공기 1대와 자본금 10억원으로 등록기준을 낮췄다.
돌이켜보면, 2007년 초 국내선 운항을 3년 이상은 해야 국제선에 취항할 수 있다는 강력한 안전규정을 내세웠고, 2007년 말에는 국내선에서 2년 동안 최소한 2만 편 이상의 운항을 해야 국제선 부정기 운항을 허가하고 이후 국제선 부정기 운항을 1년 이상 해야 국제선 정기운항을 허용하겠다는 등의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고강도 안전대책을 요구했던 정부가 불과 2년 만에 전면허용으로 정책을 튼 것이다.
이로써 대한항공 자회사 진에어와 아시아나항공 계열의 에어부산이 가장 큰 혜택을 보았고, 여기에 이스타항공이 어부지리로 이득을 챙기는 꼴이 됐다. 반면에 법 개정 전 국제선 취항지침에 따라 이를 100% 이행하고 난 후 가장 먼저 국제선에 취항한 제주항공만 유일하게 손해를 본 셈이 되고 말았다. 국제선 취항기준이 수시로 바뀌면서 결국 K-LCC들의 혼란만 가중된 꼴이 됐다. 국토부는 당초 K-LCC업계의 출범 초기인 2007년까지 국제선 취항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노선허가권으로 K-LCC들의 국제선 취항을 미뤄왔다. 이 때문에 150억원 미만의 자본금에 단거리 국제선 취항을 노리고 출범한 K-LCC들은 국제선 면허기준이 2년여 만에 3번 바뀌게 되는 정부의 국제선 취항기준에 불만을 터뜨렸다. 2008년 10월18일 자금난으로 운항을 중단한 한성항공은 2007년 정부가 2년 2만 편 무사망사고 운항으로 국제선 면허기준을 정하겠다는 방침에 따라 항공기 추가 도입 등 투자를 확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2008년 7월 그 기준이 대폭 완화됨에 따라 투자메리트가 상실되면서 해외펀딩 실패 등으로 급속히 자금난에 빠져들었다.
K-LCC업계는 “‘2년 2만 편 기준’에 따라 K-LCC들이 준비를 해오다가 2008년 7월 ‘1년 1만 편’으로 기준을 완화해 놓고 불과 몇 개월 만에 다시 자본금 기준으로 바꾼 것은 대기업 산하 항공사들만 유리한 정책”이라면서 “시장을 개방하기 전에 시장참가자들이 공정한 경쟁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정부의 역할이 무색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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