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진의 재미있는 K-LCC 이야기] (55)전 세계 LCC 공통분모 ④ 공항을 둘러싼 갈등도 전 세계 LCC가 똑같았다

김효정 기자 2023-05-03 16:50:08
양성진 '세상을 바꾼 K-LCC' 저자


1971년 운항을 시작한 사우스웨스트항공의 3개 취항도시 중 하나인 댈러스에 포트워스 신공항이 완공되었다. 정식명칭 댈러스-포트워스공항은 텍사스주 최대의 국제공항이었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은 신공항으로 가지 않고 이제 구공항이 된 러브필드공항에 남겠다는 뜻을 공항공단에 알렸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은 크고 멋진 신공항이 댈러스 도심에서 30분 거리인 반면 작고 낡은 러브필드공항은 10분 거리라는 점을 놓칠 수 없었다. 이미 휴스턴 하비공항에서 체득한 경험이 있었기에 도시에 빨리 들어가서 일을 보고 다시 되돌아가야 하는 사우스웨스트항공의 주이용객인 회사원들에게는 불편한 신공항일 뿐이었다. 즉 기존항공사와 사우스웨스트항공은 비즈니스 모델에 따른 주고객이 달랐다.

공항공단은 막대한 예산을 투자해 완공한 신공항 건설비용을 항공사들에게서 회수할 계획이었기에 사우스웨스트항공이 신공항으로 옮겨가지 않겠다고 버티자 난감했다. 공항공단은 지자체인 댈러스시, 포트워스시와 공동명의로 사우스웨스트항공을 고소했다. 이 법정다툼은 5년이 걸렸고 연방 대법원까지 갔지만 사우스웨스트항공이 승소했다.

법정다툼을 벌이는 동안 신생항공사였던 사우스웨스트항공은 회사 재건에 힘을 쏟을 겨를이 없었다. 직원들 역시 아침에 일어나면 맨먼저 회사의 재판관련 뉴스부터 살폈다. 그들은 회사의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싸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러브필드공항을 사수하는 싸움은 곧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였다. 이 같은 과정 속에서 사우스웨스트항공의 기업문화가 된 투쟁정신이 깃들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죽이려 드는 세력들과 맞서서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고야 말겠다는 집념을 다졌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은 미국 항공업계에서 고집쟁이이자 독불장군이었으며 혁신적인 개혁가이기도 했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은 이를 ‘개척자(frontier)정신’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개척자정신은 무에서 유를 찾아냈고, 직원들은 회사를 살리기 위해 너도나도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기존항공사 골리앗을 물리치고 살아남으려면 창조적 개척자정신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법정뿐만 아니라 하늘 위, 활주로, 공항터미널 등 어디에서나 기존항공사보다 더 빠르게 생각하고 더 빨리 움직여야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노베이션은 생존전략이 되었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이 취항직후 휴스턴 하비공항과 댈러스 러브필드공항을 지켜내느라 기존항공사, 공항공단, 지자체 등과 갈등을 겪고 온갖 고초를 겪으며 법정다툼까지 벌였던 것과 비슷한 일이 아시아에서도 똑같이 재연됐다. 에어아시아는 취항직후 수방공항을 주공항으로 사용했다. 수방공항은 수도 쿠알라룸푸르로부터 남서쪽으로 약 15km 떨어져 있다. 그런데 쿠알라룸푸르국제공항이 개항하면서 항공당국은 에어아시아에게 그 곳으로 옮기라고 지시했다. 에어아시아는 수방공항을 계속 사용하겠다고 주장하며 오랫동안 힘겹게 싸웠지만 정부는 절대 수락하지 않았다. 에어아시아는 결국 56km 떨어진 쿠알라룸푸르국제공항으로 근거지를 옮겼다. 에어아시아 사무실은 보안검색대 뒤로 지저분한 길을 20분 걸어가면 보이는 공항 주기장 바로 아래쪽에 위치했다.

우리나라는 전국의 모든 공항을 두 기존항공사가 사이좋게(?) 나눠 쓰고 있었는데 2005년이후 K-LCC가 취항을 하겠다고 나서면서 그동안 공고히 유지되던 기득권을 내놓지 않으려는 기존항공사의 반발이 거셌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이 댈러스-포트워스공항으로 가지 않고 기존에 이용하던 러브필드공항에 남겠다며 법정싸움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 대도시 주변에 큰 공항과 작은 공항이 공존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각 지방마다 공항은 산재해 있는데 어느 도시든 단일공항으로 운영되고 있다. 예를 들어서 김포공항 외에 인천공항을 추가로 개항할 당시 기존항공사와 K-LCC에게 이용공항을 구분해주었으면 좋았겠지만 인천공항과 김포공항 모두 국제선과 국내선, 기존항공사와 K-LCC 모두 이용하게 하고 있다. 게다가 몇몇 지방공항은 국제선과 국내선은 물론 군공항 역할까지 모두 해내고 있다. 그렇다보니 K-LCC들은 슬롯을 확보하기 위해 기존항공사와 열위의 경쟁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일본의 경우 우리나라보다 LCC가 늦게 태동했지만 LCC를 위한 별도의 공항터미널을 새로 지어 기존항공사와 다른 공간에서 운항하는 곳이 늘고 있다. 이는 신생 LCC에게 카운터 확보를 용이하게 해주고 더불어 LCC 이용승객에게는 공항이용료 절감효과까지 제공함으로써 궁극적으로 LCC의 저렴한 운임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K-LCC 취항이 임박해지면 운항 예정 노선의 각 공항은 예외없이 카운터 전쟁이 벌어지곤 했다. 부산 김해공항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2개사 만으로 운영이 되었는데, 제주항공이 신규 취항하면서 2006년 4월 공항측은 기존항공사에게 수하물 수속 카운터 2개씩을 반납하라고 요구했다. 김해공항 국내선터미널에는 대한항공이 체크인카운터 16개를 포함 모두 26개의 카운터를, 아시아나항공이 체크인카운터 8개 등 총 16개의 카운터를 각각 운영하고 있었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에 비해 우리가 여객운송능력 등 여러가지 면에서 3배나 큰 항공사인데 카운터 수를 똑같이 빼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거부했다. 아시아나항공 역시 “체크인카운터 8개 중 2개를 반납하면 항공사 업무가 불가능해진다”며 버텼다. 제주항공은 “기존항공사들의 카운터 반납이 늦어지면 신규취항 일정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며 “이는 기존항공사의 신생항공사에 대한 영업방해 시도라고 밖에 볼 수 없다”며 반발했다.

K-LCC가 속속 생겨나면서 2008년 제주공항에서는 신생항공사의 제주 취항에 따른 체크인카운터 추가 설치문제가 대두되었다. 공항측은 연초부터 기존항공사들과 협의하는 동시에 터미널 공간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상업시설을 빼는 등 여러 조치를 취했지만 난항을 겪었다. 기존항공사는 “K-LCC 취항에 따른 카운터 설치를 위해 우리에게 카운터 반납과 수하물처리시스템 공동사용 등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한 처사”라고 주장하며 강력 대응방침을 밝혔다. 제주공항은 “기존항공사가 새롭게 시장에 진입하는 K-LCC를 방해하는 처사”라며 “2009년 9월 국제선청사가 완공되는 시점까지 1년간 기득권을 버리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공개 비난하기도 했다.

이처럼 K-LCC의 신규 취항을 둘러싼 각 공항의 카운터 배정 및 정비 사무실 확보 등을 둘러싼 갈등은 최소한 10년이상 전국 공항에서 똑같이 벌어졌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이나 라이언에어의 경우 기존항공사들이 사용하지 않는 서브공항을 허브공항으로 이용하지만 그렇지 못한 우리나라 공항 현실에서 필연적으로 빚어진 갈등이었다.

K-LCC 출범 10년이 지난 2015년에도 이 같은 문제는 계속됐다. 2015년 당시 K-LCC의 국내선 수송분담율은 빠르게 늘었지만 국내공항의 탑승수속시설은 여전히 기존항공사가 장악하고 있었던 데에서 갈등이 비롯됐다. 국내선 주요공항의 탑승수속시설 점유율은 기존항공사가 체크인카운터와 탑승게이트의 60%를 차지하고 있었다. 특히 김포공항은 체크인카운터의 66%, 제주공항은 60%가 기존항공사 몫이었다. 국내선의 경우, 기존 체크인카운터와 탑승게이트를 독점하려는 기존항공사와 K-LCC 간의 갈등이 신규 취항 및 증편 때마다 벌어졌다. 항공수요와 취항항공사 증대로 기존항공사가 양분해서 사용하던 탑승수속시설을 후발업체인 K-LCC와 재분배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음에도 각 공항에서 기존항공사의 기득권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K-LCC의 탑승수속시설 부족은 잦은 탑승 대기시간 지연 등 서비스 저하와 이용객 불편으로 이어졌다.

2016년 5월 2∼3일 태풍급 강풍으로 제주공항을 오가는 국내선 항공편이 무더기 결항된 적이 있었다. 이날 제주공항 대합실은 항공권을 구입하려는 승객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그런데 기존항공사 카운터는 여유가 있었지만 유독 K-LCC 카운터 앞에서만 승객들이 엄청나게 긴 줄을 서서 극심한 불편을 겼었다. 이 같은 풍경은 사진과 영상으로 찍혀 많은 언론에서 K-LCC업계를 비난했다.

하지만 이는 K-LCC 카운터가 이용객에 비해 턱없이 모자라 생긴 현상이었다. 2016년 1분기 제주공항 국내선 카운터 1곳당 처리승객은 제주항공이 4만2671명으로 가장 많았다. 카운터 1곳의 처리승객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대기시간이 길어진다는 의미다. 이어 이스타항공 3만2904명, 티웨이항공 3만1114명 등 K-LCC가 상위권을 차지했다. 에어부산과 진에어는 2만9906명, 2만6822명으로 기존항공사인 아시아나항공 3만883명보다 적고, 대한항공 2만1765명보다는 많았다. 같은 기간 국내선 출발편 이용객은 대한항공은 58만7648명, 아시아나항공 55만5893명이었다. 제주항공은 51만2053명으로 50만명을 넘고, 다른 K-LCC도 20만~30만명 수준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카운터 숫자는 체크인·발권카운터를 합쳐 대한항공 27곳, 아시아나항공 18곳, 진에어(부산전용 4곳 포함) 14곳, 제주항공 12곳, 티웨이항공 10곳, 이스타항공 9곳, 에어부산 9곳 등이었다. 결항사태시 K-LCC 대기줄이 기존항공사보다 긴 이유였다.

<글 / 양성진 ‘세상을 바꾼 K-LCC’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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