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진의 재미있는 K-LCC 이야기] (58) 전 세계 LCC 공통분모 ⑤ 신생 LCC에게만 엄격했던 국제선 취항 흑역사 3
김효정 기자2023-05-13 06:17:01
이 같은 와중에 변수가 생겼다. 대한항공이 K-LCC 시장에 진출하겠다고 전격 발표한 것이다. 대한항공은 제주항공 취항 이전에는 “우리나라에서 ‘저가항공사’는 안된다”고 줄곧 부정적인 전망을 내놨지만 제주항공 취항 1주년 기념일 하루 전날, 그들의 용어 그대로 ‘저가항공사 출범’을 공식 발표했다. K-LCC 가운데 유독 대한항공이 설립한 LCC는 처음부터 ‘저가항공사’로 불렸다. 이는 K-LCC의 우리말 해석이 ‘저가항공사’가 되게 만든 영향력 있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대한항공은 자사가 만드는 신설 K-LCC는 국내선이 아닌 중국과 동남아시아 노선을 운항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새로운 K-LCC 설립 및 취항계획에 의하면 2009~2010년경 취항하고, 건교부가 '국제선을 띄우려면 국내선 경험을 2~3년가량 쌓아야 한다'고 공언한 상태였기에 대한항공 자회사의 국제선 운항개시 시점은 2012~2013년이나 되어야 하는 게 정상이었다. 대한항공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신생 K-LCC들의 성급한 국제선 취항은 기존항공사들의 항공 국제등급에 악영향을 준다며 막은 게 그들이었던 지라 자사가 설립하는 항공사는 문제없다는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 같은 대한항공의 계획에 아시아나항공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지만 국내 최대 항공사의 K-LCC 시장 참여로 K-LCC업계의 이미지 개선에는 도움이 될 수 있어 K-LCC업계 전체적으로는 이익이 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왔다. 제주항공은 “최근 정부가 국내선 취항 3년이 흘러야 국제선 취항이 가능하다는 규정을 새로 만들어 기존 K-LCC 업체에 소급 적용하려 하고 있다”면서 “대한항공의 K-LCC가 만약 국제선에 쉽게 취항하게 되면 기존 K-LCC의 국제선 진출에 유리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제주항공에게 또다른 변수도 있었다. 2대주주였던 제주도에서 국제선 취항에 제동을 건 것이다. 제주도는 제주노선 항공좌석난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국제선 취항계획은 안전성 확보 이후에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제주도는 “제주항공은 제주도의 방침에 반발할 것이 아니라 항공사 설립취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고 제주도와 맺은 협약을 존중해 주기 바란다”면서 “적자폭을 줄이고 싶으면 탑승률 32.2%에 불과한 김포~양양 간 적자노선을 폐지하는 등 불합리를 줄이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K-LCC의 국제선 취항시 3년 이상의 국내선 운항경험이 필요하다는 건교부 방침을 두고 갈등은 더욱 첨예하게 대립했다. 특히 3년이라는 기준의 근거에 대한 설득력 있는 비판이 일었다. K-LCC들은 건교부가 내세운 3년이라는 기간은 객관적인 근거가 전혀 없고, 지나치게 기존항공사의 입장만 반영한 것이라며 반발했다. “외국 LCC들은 설립기간에 상관없이 인천공항에 들어오고 있는데, K-LCC에게만 3년이라는 기준을 들이대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그처럼 안전이 문제라면 국내선 운항도 금지하는 것이 맞다”고 비판했다. 제주항공은 “정기항공사와 부정기항공사를 가리지 않고, 운항편수가 많은 제주항공과 운항편수가 적은 한성항공을 가리지도 않고 있다”면서 “인위적으로 단지 3년이라는 운항기간을 고수하지 말고 운항편수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맞섰다.
이처럼 국제선 취항기준을 두고 갈등이 심화되자 정부는 항공법 개정을 서둘렀다. 건교부는 2007년 8월15일 "1960년대에 만들어진 정기, 부정기 항공운송면허를 국내선, 국제선 면허로 바꾸기로 내부적으로 결정했다"면서 "국내선 면허취득 후 3년정도 지나야 국제선 면허를 받을 수 있도록 지침을 마련해 2007년 말부터 시행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면허체제 개편은 별도 입법과정 없이 지침으로 실행된다고 설명했다.
건교부는 2007년 12월 초 한국교통연구원의 연구용역결과를 토대로 국제선 취항기준을 최종 확정할 방침이라고 예고했다. 또한 유럽은 국제선과 국내선 면허가 따로 없으며, 중국과 대만은 3년, 인도는 5년 동안 국내선 운항을 한 경우에 한해 국제선 취항을 허용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이를 뒤집어보면 전 세계 국가 중 국제선 취항을 규제하고 있는 나라는 중국, 대만, 인도를 제외하면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꼴이었다.
결국 건교부의 확고한 지침에 따라 제주항공은 취항 3년간 국내선 운항 후 2009년 6월5일 이후부터 국제선 취항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대한항공은 정부의 지침에도 불구하고 “3년 기준을 고집하지 말고 안전성을 면밀히 따져 조건이 충족되는 항공사에는 국제선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다시 말해 대한항공의 자회사에게는 굳이 3년 기준이 필요하지 않다는 논리였다. 대한항공은 2007년 11월26일 자회사 에어코리아(Air Korea, 후에 ‘진에어’로 사명변경)를 설립해 2008년 5월부터 국제선 운항을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에어코리아는 국내선은 운항하지 않고 국제선만 취항할 계획이며, 요금은 대한항공의 75∼80% 수준으로 책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에어코리아의 경우 대한항공의 정비, 운항경험을 모두 이어받기 때문에 다른 K-LCC와 달리 곧바로 국제선 면허를 취득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같은 대한항공 자회사 에어코리아의 2008년 5월 국제선 취항시기 발표는 제주항공이 예상하고 있는 국제선 취항시기인 2009년 6월이나 건교부의 국제선 취항기준인 국내선 3년 운항경험 등과 비교하면 상당한 모순이 있었다. 그만큼 대한항공 자회사의 국제선 진출 추진일정은 막무가내였다. 그런데 에어코리아의 출범 소식에 경쟁업체들의 반응은 묘한 대조를 보였다. 제주항공은 반기는 반면, 아시아나항공은 떨떠름한 반응이었다. 시장상황과 경쟁구도가 묘하게 엇갈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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