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진의 재미있는 K-LCC 이야기] (54)전 세계 LCC 공통분모 ③ 신생 LCC에 대한 기존항공사의 가격대응은 전 세계에서 똑같았다_국내 LCC 사례
김효정 기자2023-04-29 06:49:01
기존항공사의 국내선 운임인하는 급성장하려는 신생 LCC를 곤혹스럽게 만들기 위해 꺼내 드는 전 세계 항공시장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었다. 작은 신생항공사였던 시절의 사우스웨스트항공과 에어아시아가 운항 초에 겪어야 했던 기존항공사의 가격대응은 국내 항공시장에서도 똑같이 재연되었다.
제주항공은 취항이 임박한 2006년 4월17일에야 운항계획을 발표했다. 취항일정은 2006년 6월5일로 결정하고 기본운임은 김포~제주 노선을 5만9100원으로 정했다. 대한항공이 마지막으로 인상한 2004년 7월16일부터 해당노선 운임이 8만4400원이었으니 2만5300원 저렴했다. 제주항공의 초창기 운임정책은 기존항공사 대비 약 30% 저렴한 수준을 유지한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아시아나항공이 제주항공 운항시점인 6월 한 달간 김포∼부산 노선 모든 항공편의 인터넷 판매가를 20% 할인하고, 김포∼제주 노선은 특정시간대를 선별해 인터넷 판매가를 30% 할인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김포~제주 노선의 오전 7시부터 오후 8시5분까지 김포발 제주행 항공편 22편 중 오후 2시25분과 5시30분 출발하는 항공편의 인터넷 구입 고객에게 정상요금인 8만4400원보다 30% 할인된 5만9080원을 받았다.
제주항공은 김포발 제주행 전체 항공편 5편 가운데 오후 2시50분과 6시10분에 출발하는 2편의 항공편에서 가격경쟁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아시아나항공은 수많은 노선 중 하나인 김포~제주 노선의 22편 중 2편에 불과했지만 제주항공은 전체 노선 5편 중 2편이었다. 아시아나항공의 이 같은 쪽집게 대응은 “굳이 제주항공을 탈 필요 없다”는 타깃전략이었고, 제주항공이 받은 상처는 치명적이었다. 아시아나항공의 30% 할인된 5만9080원은 오히려 제주항공의 5만9100원 보다 20원 더 쌌다. 아주 작은 신생항공사 입장에서는 항공대기업의 돌직구 견제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여기에 다시 대한항공이 가세하면서 항공요금 인하경쟁은 점입가경이 되었다. 대한항공은 6월15∼31일까지 김포∼제주 노선의 특정시간대 항공편에 한해 인터넷 판매가를 20% 할인했다. 그리고 이에 더해 6월 국내선 인터넷 특별할인행사에 돌입하면서 19개 국내선에서 5~25%까지 할인하기로 했다. 대한항공의 6월 특별할인에는 할인 대상 노선에 제주기점 전 노선이 들어간 것이 특징이었다. 특히 김포~제주 노선은 주중 최대 20%까지 할인해 5만8720원을 받고 적용편수도 5월보다 크게 늘렸다.
두 기존항공사의 파상공세가 잇따르자 궁지에 몰린 제주항공은 궁여지책으로 3~4일 만에 대응안을 마련하고 ‘전 노선 대상 추가할인’을 발표했다. 6월 한 달간 취항기념으로 김포~제주 노선의 서울발 오후편과 제주발 오전편에 한해 4만6300원으로 또다시 할인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견제에 다시 제주항공이 대응에 나서면서 국내 항공업계는 거센 가격파괴 바람이 불었다. 제주항공 취항을 계기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양분해 온 국내 항공시장이 3자구도로 재편되면서 그동안 국제유가 급등을 사유로 줄곧 오르기만 했던 김포~제주 노선 왕복 항공요금이 10년 만에 9만원대로 떨어지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서울과 제주 노선을 왕복 9만2600원에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금이야 1만원짜리 항공권까지 나온 적이 있지만 왕복 10만원 밑으로 비행기를 탄다는 사실에 소비자는 열광했다.
국내 항공시장에서 운임인하 경쟁이 펼쳐진 것은 2005~2006년이 사상 처음이었다. 이는 K-LCC 취항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입증한 셈이다. 한성항공이나 제주항공이 취항하기 전에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기존항공사들은 1999년 항공요금 자율화 이후 2001년 평균 14%, 2004년 평균 8% 각각 인상했다. 그 때마다 유독 제주도에서 거세게 반대했지만 운임인상은 대부분 원안대로 이루어졌다. 그 과정에서 제주도민을 다소나마 달랠 필요가 있는 경우에 한해 지극히 제한된 범위 안에서만 제주도민 특별할인 카드를 썼을 뿐이었다.
기존항공사들은 K-LCC 본격 취항 이후에는 철저하게 국내선 운임동결 카드를 활용했다. 지속적으로 인상해 왔던 기존항공사들이 국내선 운임동결을 거의 8년 동안 시행했다. 운항원가는 계속 상승했지만 절대 국내선 운임을 올리지 않고 버텼다. K-LCC들의 국내선 운임기준이 기존항공사 대비 20~30% 저렴하게 책정된다는 것이 가장 큰 요인이었다. 기존항공사가 국내선 운임을 현실화하면 자동으로 K-LCC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또 그 같은 함수 안에 숨은 이유가 더 있었다. 기존항공사 전체매출에서 차지하는 국내선 매출비중은 한자리 숫자였지만 K-LCC 전체매출에서 차지하는 국내선 매출은 100%였다. 구체적으로는, 2007년 상반기 기준 당시 기존항공사 전체매출 가운데 국내여객이 차지하는 비중은 7%였고, 나머지는 국제여객 53%, 화물 28% 등이었다. 따라서 기존항공사의 국내선 운임 인상이 자신들에게 작은 이익인 반면 K-LCC들에게는 절대이익이 되는 애매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이 때문에 기존항공사의 8년에 걸친 국내선 운임동결은 K-LCC들의 숨통을 조이는 확실한 효과가 있었다. 대한항공의 뜻(?)으로 국내선 운임 인상이 동결되어 있던 8년 동안 K-LCC들은 죽어 나가는 실정이었다. K-LCC 업계의 운임 기준은 취항 초기에는 대한항공의 70%였고 이후 80%로 조정됐다.
이 같은 상황은 K-LCC의 국제선 취항 이후 달라졌다. K-LCC 선두주자들이 전체매출에서 차지하는 국내선 비중이 급격히 떨어져 국내선 운임동결이 더 이상 K-LCC의 경영압박에 효과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기존항공사들은 다시 국내선 운임을 인상하기 시작했다. 제주항공은 8년간의 국내선 운임 동결 현상을 ‘제주항공 효과’라고 말한다. 국내선 운임은 2004년 인상 이후 동결되어 있었다.
대한항공이 K-LCC 출범 이후 K-LCC에 대한 경영 압박 목적으로 국내선 운임을 동결하자 사실상 두 기존항공사는 국내선에서 적자 상태였고, K-LCC들은 회사 전체 수익에서 적자였다. 때문에 K-LCC들은 기를 쓰고 국제선 취항에 도전했고, 기존항공사들은 기를 쓰고 K-LCC들의 국제선 취항을 방해하거나 지연시키기 위해 온갖 방법을 쓰곤 했다.
지금도 국내 항공업계는 국내선 운임 인상의 첫 단추는 늘 대한항공의 몫이다. 어느 K-LCC도 국내선 운임 인상을 독단적으로 결정해서 치고 나가는 경우를 볼 수 없다. 여러가지 인상 요인이 누적되면 대한항공이 국내선 운임 인상을 발표하고, 나머지 모든 국적항공사들은 속속 인상 대열에 동참하는 눈치게임이 여전하다. 때문에 이 같은 현상을 두고 간혹 국내 항공업계의 담합으로 의심되어 공정위 조사가 벌어지기도 하지만 이는 담합이라기보다는 항공업계의 생태계에 따른 현상이다.
댓글
(0) 로그아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