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진의 재미있는 K-LCC 이야기] (59)전 세계 LCC 공통분모 ⑤ 신생 LCC에게만 엄격했던 국제선 취항 흑역사 4

김효정 기자 2023-05-17 06:13:01
양성진 '세상을 바꾼 K-LCC' 저자


대한항공 자회사 에어코리아의 국내선은 운항하지 않고 곧바로 국제선을 취항하겠다는 다소 막무가내식 추진이 오히려 제주항공에게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에어코리아의 국제선 노선면허 취득과정이 제주항공의 국제선 조기 운항이라는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당시 제주항공은 국제선과 국내선 항공면허를 모두 취득한 상태였다. 다만 국제선 '운항허가'를 받지 못한 상황이었다. 에어코리아가 대한항공의 예정된 수순대로 국제선에 취항하게 될 경우 제주항공과 형평성 논란에 휩싸이게 될 공산이 커졌고, 이는 제주항공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한편으로는 에어코리아가 신규 취항하겠다고 발표한 중국, 일본, 동남아 노선은 모두 아시아나항공의 주력 노선이었다. 마치 대한항공이 자회사를 앞세워 아시아나항공의 텃밭을 공략하겠다고 한 것이나 진배없었다.

이 같은 미묘한 분위기 속에서 이틀 후인 2007년 11월28일 대한항공의 에어코리아 국제선 취항계획은 좌절됐다. 건설교통부는 이날 ‘신규 항공사 국제선 취항기준`을 확정 발표했다. 새 기준에 따르면 신규 항공사는 국내선에서 2년 이상, 2만 편 이상을 운항하면서 사망사고가 없어야 국제선 부정기 운항을 할 수 있으며, 국제선 부정기 운항을 1년 이상 하면서 사망사고가 없어야 국제선 정기 운항을 허용한다는 것이 골자였다. 국내선 3년 이상에서 2년 이상으로 1년 줄었고, 그 대신 2만 편 이상이라는 운항횟수가 추가됐다. 또한 항공사끼리 합병하는 경우에는 합병 후 존속하는 항공사가 기존항공사의 운항경험을 승계하며, 항공사가 분할되는 경우에는 기존항공사의 자산과 인력을 50% 넘게 승계하는 항공사가 운항경험을 승계할 수 있도록 했다. 또 가장 첨예하게 대립했던 기존항공사가 출자해서 항공사를 새로 설립하는 경우에는 신규 항공사와 동일한 기준을 적용키로 했다. 이는 신생항공사와 마찬가지로 기존항공사가 출자한 항공사의 경우도 형평성 차원에서 국내선을 일정 기간 취항해야 국제선을 운항할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대한항공이 불과 이틀 전 에어코리아를 국내선이 아닌 국제선 전용으로 2008년 5월 취항하겠다고 발표한 것에 대해 이를 승인하지 않겠다는 건교부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이에 따라 에어코리아는 궤도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건교부 지침에 따른다면 2008년 5월 국내선으로 취항한 뒤 2010년 5월 이후에나 국제선 부정기 노선부터 운항이 가능하게 됐다. 대한항공은 건교부 발표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대한항공은 “에어코리아가 대한항공의 정비, 운항경험 등을 그대로 이어받기 때문에 안전에 관한 국제기준을 모두 충족하고 있는데도 다른 항공사들과 똑같은 잣대를 적용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반발했다. 또한 "국제선 취항기준은 안전성 여부를 바탕으로 해야지 일률적으로 국내선을 2년 뛰게 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면서 "정부가 안전기준을 만들어 이에 적합한 항공사에 국제선 면허를 내주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건교부의 새 ‘국제선 취항기준`과 대한항공의 에어코리아 국제선 취항 무산 등이 뒤엉킨 2007년 11월 말 국내 항공업계는 각 사별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후폭풍이 일었다. 국내선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국제선에 취항하겠다는 대한항공의 방침에 정부가 제동을 걸자 대한항공이 반발하고 나선 반면 아시아나항공은 당연한 결과라며 내심 반색했다. 이런 와중에 제주항공은 국제선 취항이란 ‘과실’을 얻는 등 3사 간의 분위기가 극명하게 갈렸다. 건교부는 “에어코리아가 곧바로 국제선을 뛰겠다고 나선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며 “에어코리아라는 신생항공사가 아닌 대한항공 사업부로 항공사업을 추가하겠다고 하면 곧바로 국제선 취항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대한항공의 LCC 설립계획을 비판했던 아시아나항공은 “에어코리아가 신생항공사인데 대한항공 출자만으로 대한항공의 운항경험을 그대로 이어받을 수 있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라며 “국내선 운항경험을 거쳐 검증된 신규 항공사에게만 국제선 운항을 허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찌 되었든지 제주항공은 2008년 6월5일 이후 국제선 부정기 운항이 가능해졌다. 제주항공은 “국내선 2만 편 운항은 2008년 3월 안에 달성하며, 2008년 6월5일이 취항 2년째를 맞는다”며 “2008년 6월 국제선 운항허가를 신청하고 중국과 일본에 전세기를 띄우겠다"고 말했다.


대한항공을 제외한 다른 국적항공사들은 신생항공사의 국제선 취항기준이 이처럼 정리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2008년 초부터 항공업계에는 ‘대한항공이 이 기준을 바꾸기 위해 뛰고 있다’는 얘기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계기는 2007년 12월19일 실시된 제17대 대통령 선거였다. 노무현 대통령에 이어 기업인 출신이며 민선 3기 서울시장 출신의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었고 10년만에 보수정권으로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이끈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헌정사상 최초의 대기업 CEO 출신 답게 규제철폐를 내세웠다. 그리고 당시 언론에 ‘하늘 위의 전봇대’라는 상징적인 헤드라인이 자주 나타났다. ‘전봇대’는 이명박 정부가 내세운 규제철폐의 상징적인 용어였고, ‘하늘 위의 전봇대’는 ‘하늘 위에도 규제가 있다’는 것으로 항공업계 주무부처인 국토해양부의 국제선 취항기준이 어느새 대표적인 항공업계 규제로 떠올라 있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두 달이 채 못된 2008년 4월22일 총리실 산하 규제개혁위원회는 항공법 시행규칙 개정안에 대한 규제심사에서 국제선 면허조항의 신설을 철회토록 결정했다. 항공법 시행규칙 개정안은 항공운송사업자가 국내선에서 2년 이상, 2만 편 이상 무사망사고를 충족해야 국제선 면허를 발급받을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규제개혁위는 이 같은 조치가 기업활동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지적함에 따라 국토부는 국제선 면허기준 완화방안을 추진, 국내선에서 1년에 1만 편 무사망사고로 운항하면 국제선 면허를 내주는 방향으로 재검토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2008년 7월 국내선 취항 예정인 에어코리아는 1년, 1만 편 조건을 채우는 2009년 7월부터 국제선 취항이 가능해지게 됐고, 그 새 아시아나항공 역시 참여를 선언한 새로운 K-LCC 에어부산도 조기에 국제선을 띄울 수 있게 되었다.

<글 / 양성진 ‘세상을 바꾼 K-LCC’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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