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천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를 계기로 전기차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와 자동차업계가 방지 대책을 통해 소비자 불안감 해소에 나서고 있다.
정부는 12일 오전 환경부 차관 주관으로 국토교통부, 산업통상자원부, 소방청 등 관계부처가 참여하는 전기차 화재 관련 긴급회의를 가졌다. 또 13일에는 국무조정실 주관으로 각 부처 차관이 참석하는 회의가 진행될 예정이다.
전기차 보급이 급격히 늘어난 가운데 이로 인한 화재 또한 잇따르자 정부도 대책 마련에 속도를 내는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홈페이지에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한 데 이어 배터리 이상 징후 모니터링 시스템을 통해 화재 위험에 더욱 적극적으로 대처할 방침이다.
KG모빌리티(KGM)와 수입차 업체들도 국토교통부 등과의 협의 아래 대책을 강구 중이다.
'전기차 안전 강화 방안' 무색...벤츠 EQE 發 전기차 '포비아'앞서 정부는 지난해 6월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에서 '전기차 충전 기반시설 확충 및 안전 강화 방안'을 확정했다.
여기에는 ▲안전성이 우수한 전기차 보조금 추가 지원 ▲전기차 화재 진압장비 확충 ▲화재예방 기능이 강화된 충전기 확충 등의 방안이 포함됐다.
이에 따라 올해부터 충전기가 설치된 지하 주차장에는 폐쇄회로(CC)TV 설치를 의무화하고, 지하 주차장 3층까지만 충전기를 설치할 수 있게 했다.
충전설비의 방진·방수 보호 성능도 강화하고, 비상 전원장치 설치를 의무화했다.
그러나 이런 조치가 무색하게 지난 1일 인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있던 벤츠 EQE 차량에서 화재가 발생해 전기차에 대한 우려가 급격히 커졌다.
정부는 이날 회의에서 전기차 안전을 강화할 다양한 방안을 두루 살펴볼 것으로 보인다.
먼저 지하 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시설에 대한 불안감이 있는 만큼 지상 전기차 충전시설 설치를 유도하는 방안이 검토될 수 있다.
다만 현행 규정상 지상 전기차 충전시설 설치를 강제할 수 없기 때문에 설치 비용을 일부 지원하는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을 고려할 수 있다.
이미 몇몇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관용 전기차 충전기를 지상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전기차 화재의 원인 중 하나로 '과충전'이 지목되는 만큼 이를 방지할 수 있는 장치 보급을 확대하는 방안도 논의될 전망이다.
현재 전기차 충전기의 98% 이상을 차지하는 완속충전기는 급속충전기와 달리 충전기 자체에서 과충전을 막을 수 있는 전력선통신(PLC) 모뎀이 장착돼 있지 않다.
환경부는 올해부터 PLC 모뎀을 단 '화재예방형 완속충전기'에 모뎀 가격에 상응하는 40만원을 '전기차 배터리 정보 수집 등을 위한 장치비' 명목으로 추가 지원하고 있다.
이에 연초 PLC 모뎀 장착 완속충전기가 출시돼 이제 막 보급되기 시작했다.
정부는 신규 설치는 물론, 기존의 완속충전기를 PLC 모뎀 장착 제품으로 바꿀 수 있게 지원하는 식으로 보급을 늘리는 방안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제조사 공개 등…국토부 회의서 대책 논의지난 1일 화재가 발생했던 벤츠 EQE에 중국 파라시스의 배터리가 탑재된 것으로 조사되면서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현재는 차량의 크기와 무게, 최대 출력, 전비, 배터리 용량 등만 안내하고 있다.
앞서 유럽은 2026년부터 전기차 제조업체들이 소비자에게 배터리 제조사 정보를 공개하도록 했다.
우리 정부도 자동차 제조사가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를 차량 제원 안내에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배터리 정보 공개 여부에 따라 구매보조금을 차등 지급하는 등 모든 방안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검토할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완성차 제조사와 수입차 업체 간 이견이 있는 만큼, 13일 국내 완성차 제조사 및 수입사와 함께 전기차 안전 점검 회의를 열어 이에 대한 입장도 듣기로 했다.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지난 9일 현대차 10종과 제네시스 3종 등 총 전기차 13종에 탑재된 배터리 제조사를 밝혔다.
코나 일렉트릭을 제외한 현대차 전기차에는 모두 국내 업체인 LG에너지솔루션 또는 SK온 제품이 장착됐다. 코나 일렉트릭은 중국산 CATL 배터리가 탑재됐다고 공개했다.
현대차는 전기차 출시 당시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하고, 소비자 문의에도 제조사를 밝히고 있다. 다만 최근 벤츠 전기차 화재 이후 선제적으로 정보를 공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기아도 조만간 전기차 배터리 정보를 홈페이지 등을 통해 밝힐 계획이다.
현대차·기아는 고객 우려 불식 차원에서 지자체 등과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배터리 과충전을 화재 원인으로 보고 있는 만큼 배터리 이상 징후 모니터링 시스템과 과전압 진단 등의 기능을 통해 과충전에 따른 화재 위험을 원천 차단한다는 계획이다.
수입차를 비롯한 다른 자동차업체들도 대책 마련에 고심 중이다.
이들은 오는 13일 국토부 주관 전기차 안전 점검회의에서 배터리 정보 공개에 대한 입장과 각자 대책을 공유할 예정이다.
앞서 국토부는 인천 벤츠 화재 이후 현대차·기아를 비롯한 국내 완성차 제조·수입차 업체에 배터리 제조사 공개에 대한 입장을 사전 타진했다. 이번 회의는 업체들의 입장을 밝히는 자리로 마련됐다.
다만 수입차 업체들은 판매 자회사이기 때문에 본사와의 협의사 필수적이다. 때문에 현대차·기아처럼 빠른 대응은 기대하기 어려운 전망이다.
지하 충전 제한 검토…'소방설비 강화 필요'정부도 대책을 내놓고 있다.
먼저 행동에 나선 것은 서울시로, 서울시는 다음달 말까지 '공동주택 관리규약 준칙'을 개정해 공동주택 지하 주차장에 90% 이하로 충전된 전기차만 출입할 수 있도록 권고하기로 했다.
행정안전부 산하 정부청사관리본부도 '2024년 정부청사 전기차 충전기 확충사업' 내용을 변경해 지하에 설치 예정됐던 전기차 충전기 일부를 지상으로 옮기기도 했다.
다민 전문가들은 완충이나 지하 주차장 충전을 제한하는 것은 기술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키웠다.
기존 차량 소프트웨어에 위성항법시스템(GPS)으로 실내 여부를 파악하고, 실내 충전 목표량을 90%로 제한하는 기능을 추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지하 주차장 소방설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소방청에 따르면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전기차 화재는 139건이었다. 지난해 기준 1만대당 화재 건수는 1.3건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내연기관차는 1만933건으로 1만대당 화재 건수 1.9건을 기록했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전기차 화재를 막기 위해 소비자가 할 수 있는 대처는 85% 미만 충전"이라며 "충전률을 85% 미만으로 관리하면 전기차 화재는 사전에 99% 방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배터리 실명제를 도입하면 소비자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화재 예방의 직접 효과를 따지기 전에 소비자 선택권 측면에서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동하 기자 rlaehdgk@smartf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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