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진의 재미있는 K-LCC 이야기] (96) K-LCC의 설립 및 취항사(史)_2세대 항공사_에어부산 ③
2024-01-24 05:01:02
아시아나항공이 부산국제항공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K-LCC 시장에 손쉽게 진입한 것은 양측의 이해득실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지역항공사로 출범하는 부산국제항공은 10여개의 부산지역 기업들이 5억~20억원씩 나눠 투자함에 따라 1대주주가 없는 상황에서 아시아나항공이라는 확실한 운영 주체를 확보해 사업초기의 시행착오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
아시아나항공 입장에서는 적은 노력과 비용으로 K-LCC 시장에 이른 시기에 진출하는 이점을 챙겼다. 특히 대주주가 없이 구성된 부산국제항공을 적은 지분만으로도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컸다. 대한항공 등 타 항공사가 K-LCC를 설립해서 취항시키는데 통상 2~3년의 준비기간을 거친 반면 아시아나항공은 불과 10개월 만에 취항에 이르는 모든 작업을 마무리하는 일정을 설정할 수 있었던 셈이다.
아시아나항공의 전격적인 K-LCC 시장 참여는 항공업계에 반향을 불렀다. “K-LCC는 성공하기 어렵다”며 줄곧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오다가 돌연 입장을 바꾼 데에 따른 뒷말이 유독 많았다. 아시아나항공은 2007년 6월까지 공ㆍ사석을 통해 "전 세계에서 기존항공사가 LCC를 만들어 성공한 사례가 없다"며 "대한항공은 왜 굳이 LCC를 하려는 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내놨다. 또한 대한항공의 K-LCC 시장 참여에 대해 "K-LCC는 그들대로 먹고 살 것을 남겨 놔야 하는 게 아니냐"며 줄곧 비판적인 입장을 보여왔던 것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아시아나항공과 부산국제항공 간의 윈-윈 효과와 함께 영호남 화합 측면도 있었다. 당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창립이후 그 위세가 가장 드높던 시절이었다.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잇달아 인수하면서 재계 7위에 올랐고, 대한항공을 소유한 한진그룹보다 한 단계 높았다. 하지만 그 위상에 걸맞지 않게 영남에는 변변한 사업기반이 없었다. 아시아나항공은 대한항공에 밀렸고, 금호타이어 제품이 잘 팔리지 않았고, 금호렌트카도 고전하는 등 어려움이 많았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부산국제항공의 대주주로 참여한 것을 계기로 호남기업이라는 이미지를 벗고 명실공히 국민의 기업으로 자리잡는 기회라고 봤다. 업계에서도 금호아시아나의 '동진정책'이라는 시각이 많았다. 금호아시아나가 오래전부터 영남지역 공략을 준비해오던 차에 그동안 부산국제항공을 운영하기로 했던 대만 부흥항공이 갑자기 빠지는 바람에 어부지리로 차고 들어간 것으로 분석했다.
항공업계는 "겉으로는 부산국제항공이 위탁경영을 요청함에 따라 아시아나항공이 참여하는 모양을 갖추고 있지만 속내는 금호아시아나가 이를 통해 호남기업 색깔을 벗고 '전국구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더 큰 뜻이 숨겨져 있다"고 봤다. 에어부산 출범과 동시에 대한통운 인수로 부산항을 통한 항만사업에도 진출해 ‘지역 친화 기업’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금호아시아나그룹과 아시아나항공의 부산국제항공을 향한 행보는 유난히 빨라 보였다. 투자협약서 체결 13일만인 2008년 2월27일 오전에 주금 230억원의 납입절차를 완료하고 K-LCC 시장 진출에 시동을 걸었다. 이로써 자본금은 종전 245억4000만원에서 475억4000만원으로 늘어났다. 아시아나항공의 지분율은 46%로 1대주주에 올랐다. 이와 함께 향후 증자시 51%의 지분을 확보할 수 있는 권리도 함께 확보했다.
그리고 이날 오후 부산국제항공은 부산상공회의소에서 주주총회를 열고 아시아나항공의 경영참여에 따른 정관개정, 아시아나항공의 주금납입, 대표이사 등 이사 선임, 사명 변경 등을 일사천리로 의결했다. 2007년 8월부터 부산국제항공을 이끌어온 신정택 부산상공회의소 회장(세운철강 회장)은 초대 대표이사에서 물러났다. 에어부산으로 사명을 변경한 이날 주총에서 새로운 대표이사에 아시아나항공 여객영업부문 김수천 상무를 선임하는 등 이사회를 구성할 등기임원 7명을 선임했다. 아시아나항공은 등기임원의 과반수를 선임함으로써 위탁경영이 아닌 사실상의 직영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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