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주의 문화인사이드] 변화무쌍했던 세계 잼버리, “지금 이 순간”
2023-08-10
낯선 번호의 카카오톡 메시지.
“안녕하세요.” 잠시 소개가 이어졌고, “기억하세요?”
‘아 누구지? 혹시 그분?’, 확실하지 않아 “안녕하세요. 기억날 듯 합니다^^” 라고 답을 보냈다. 다시 잘 지내고 있느냐는 친근한 문안과 함께 연락처가 전달됐다. 이후 전화기 너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맞다’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지난 십여 년의 시간들을 거슬러 기억을 되살렸다. 생각했던 그녀였다.
그녀는 십여 년 전 축제 팀장으로 근무했던 나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열심히 일하는 모습에 언젠가 다시 연락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 기관의 본부장이 되어 연락을 한 것이다. 얼마나 감동적인가. 감격의 순간이었다.
진정 열심히 일하던 시기였다. 10만 명이 관람한다는 국내 유일의 국제 음악극 축제. 더 많은 시민들이 축제를 즐기기 바라는 마음으로 프로그램 하나하나에 아이디어를 모았고, 진정성을 담았다. 축제의 기획운영팀장으로 예산 수립-운용, 예술 교류, 음악극 어워드, 프린지, 집행위원회, 학술행사, 전시 등을 총괄했고 팀원 2명과 자원봉사자들을 교육하며 함께했다. 축제기간인 5월에는 18일 동안 전체 105개 프로그램이 315회 진행됐다. 정신과 신체가 피폐해질 만큼 힘들었고, 그야말로 헉헉거리는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당시 30개월이었던 어린 딸을 축제가 시작되고서야 축제 현장에서 볼 수 있었을 정도였으니. 나의 모든 시간과 열정은 모두 그 축제에 담겼었다.
축제가 진행되는 동안 좋은 일, 나쁜 일, 힘든 일, 어려운 일 등 셀 수 없이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의 연속이었지만 그건 당연히 풀어야할 일이었다. 축제를 무사히 끝내고서도 "잘했다", "고생했다"는 말은 커녕 "힘들었지"라는 위로의 말 조차 들어보지 못했다. 당연한 것이었으니까.
그런데 누군가 그 때의 나를 기억하고 있다? 왠지 인정받은 듯, 위로받는 듯 벅찬 기분이 들었다.
시간의 기억. 십여 년 세월이 흐르고도 잊지 않고 다시 연락을 주었다는 것은 또 다른 자극제였다. 나의 노력하는 모습을 누군가 보고 있다는 것. 그리고 말없이 응원해 왔다는 것. 생각만으로도 힘이 되는 일이다.
물론 누구에게 보여지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마음을 나누고 서로를 응원하고 인정하고 위로받는 일에 기분 좋은 건 나 뿐이겠는가!
그녀 덕분에 나의 옛 직장은 더욱 정겨워졌다. 얼마 전 프로젝트 평가자로 그 곳을 다시 찾았을 때 시간을 널뛰기 하듯 옛 기억을 떠올리게 되었다. 당시 응원해주던 직원들을 만날 때면 꼭 친정집에 온 듯 친근했다. 직급은 상향되어 본부장님, 부장님, 차장님이 되었지만 변함없는 모습들이 좋았다. 그동안 공연장으로 운영되던 전당은 문화재단으로 새롭게 출범해 지역의 문화거점 공간으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지역 특성이 부각된 문화전반의 사업들은 지역민들과 함께하며 폭넓게 진일보하고 있었지만, 그 때의 추억과 기억은 소중하게 그대로인 거다.
심사를 가던 날도 '컬쳐 마켓'이 펼쳐지고 있었다. 예술에 일상을 더한 문화 시장 '아르츠 마켓'이라는 이름으로 시민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선 프로그램. 5월부터 오는 10월까지 야외 광장에서 소규모 창작자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시민들에게 다양한 문화 활동 기회를 제공한다. 예술의 활성화 뿐 아니라 공공의 역할이 강조되는 뜻깊은 행사였다. 마켓은 작가들과 함께하는 ‘예술발견’과 식물로 함께 이웃들과 소통하는 ‘아르츠 포레스트’, 제주 전통주와 안주를 한 상에 담은 ‘로컬존’, 그리고 다양한 먹거리가 있는 ‘맛있는 충전소’ 등 4가지 코너로 전당 야외를 꽉 채우고 있으니 함께 어우러졌던 축제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매월 이 마켓을 기획하고 운영하고 있는 직원들의 노고도 언젠가 추억이 될 것이다. 지역의 축제를 위해 최선을 다했던 나를 기억한 것처럼 누군가도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직원들의 열정과 노력을 기억해 주기를.
지금 지역에서 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다면, 지역 예술가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면, 지역 문화예술의 거점공간이자 구심점인 지역문화재단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하고 있는 재단 직원들 덕분이다. 그들의 역할은 지역에서 문화예술의 꽃이 피어나는 밑거름이 된다.
환한 꽃길에 그들의 노력은 더욱 빛날 것이고, 빛나는 예술은 아름답다.
글·조현주 박사(문화콘텐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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