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주의 문화인사이드] 변화무쌍했던 세계 잼버리, “지금 이 순간”
2023-08-10
하늘에 꽃이 핀다. 포물선의 궤적이 검은 창공 가득히 꽃으로 진저리 칠 때, ‘펑’ 하는 소리는 ‘와아~’ 하는 감탄에 묻힌다. 웅장한 음악이 화려한 불꽃을 꾸며주지만, 불꽃놀이에 가장 필요한 배경음악은 바로 보는 이들의 탄성이다. 아무도 봐주지 않는 불꽃놀이란 얼마나 허망한 일이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매년 10월 초 한강 시민공원에서 펼쳐지는 서울세계불꽃축제는 가장 행복한 불꽃놀이다.
한화그룹에서 2000년 시작한 이후, 이 행사는 여의도는 물론 신촌, 마포, 노량진 일대까지 100만에 가까운 인파를 모은다. 금년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팬데믹 기간의 답답함을 보상받으려는 듯 마포대교에서 한강대교까지, 주변의 한강공원과 둔치를 사람들로 가득 메웠다. 혼잡을 우려해 폐쇄된 여의나루역을 지나쳐 강물 같은 인파에 휩쓸려 걸어가면서도 마음은 즐거웠다. 화려한 불꽃이 내 눈앞에서 ‘팡팡’ 터지면 답답했던 일상도 ‘팡팡’하고 아름답게 펼쳐질 것 같은 기대로 가득했다. 지상은 이렇게 혼잡해도 창공은 저렇게 드넓지 않은가!
불꽃은 독보적인 화려함을 내뿜으면서도 말이 없어 매력적이다. 울타리 없는 드넓은 하늘을 독차지하며 제한없이 질주하는 불씨앗들의 모습도 자유롭다. 어떤 불꽃이 펼쳐질지 한껏 기대감을 안게 하고서도, 상상을 넘어서는 화려함을 펼쳐주는 것도 시원스럽다.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1분1초를 다투며 살아가는 ‘분초사회’에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볼 수 있게 해준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 딱 어울리는 축제다.
불꽃놀이를 사람들과 모여 구경할 때 가장 멋진 것은 모두가 한 점을 함께 바라본다는 사실이다. 한강 둔치 그 넓은 공간이 이렇게 좁아지도록 많은 사람이 자리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모두 시선을 모아 한 곳을 바라보고 감탄사를 연발할 때 만큼은 시간과 장소를 공유하고 추억을 담고 있는 ‘우리’라는 동질감이 느껴진다.
어쩌면 우리 인생살이가 그럴지도 모른다. 좁디 좁은 땅덩이에서 시샘하고 부러워하고 치열하게 경쟁하며 살지만 결국 우리 모두 ‘행복’이라는 한 지점을 바라보는 공동체의 구성원 아닌가 말이다. 그래서 올림픽과 월드컵에서 멋진 승부가 연출될 때나, 혹은 세월호나 이태원에서처럼 형언할 수 없는 참사가 일어났을 때, 우리는 모두 함께 웃고 울고 서로의 어깨를 붙들고 다독인다.
고은 시인은 시집 '순간의 꽃'에서 “나도 누구도 매순간의 엄연한 기운과 함께 존재하고 있고, 존재 자체가 변화 미분(微分)들의 순간을 이어가는 것” 이라고 '순간 속의 무궁'을 이야기 했다. 창공 가득히 펼쳐지는 저 불꽃이 모두의 시선을 하나로 모아내는 이 시간이야말로 바로 순간속의 무궁이 아닐까?
무궁의 원천이 된 불을 다시 생각한다. 불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했다. 불은 어둠을 밝히는 존재다. 그래서인지 파괴력과 생명력, 부숨과 창조함, 본능과 이성, 그리고 욕망과 열정 등 서로 이항대립적으로 상반되는 역설의 상징이 함께 공존해온 기호였다.
불의 구체화된 상징은 태양이었다. 그리스 신화에서 태양의 신 아폴론은 학문과 예술, 의술, 속죄와 보상 등을 주관하며 같은 신들도 두려워할 만큼의 막강한 영향력과 절대적인 권위가 있었다. 불의 힘은 그 기원부터 인간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의 불꽃처럼 말이다. 그래서 불꽃놀이는 화약이 발명되기 훨씬 이전부터 호모 사피엔스 무의식의 원형으로 자리잡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모두 힘겨운 시간들을 살고 있다. 코로나 사태만 끝나면 새로운 희망이 보이리라던 기대가 참담하게 무너지고 있다. 세계 각지에서 화약들이 불꽃놀이가 아니라 포탄이 되어 날아다니고 있다. 나라 안도 마찬가지다. 경제는 어렵고 공동체는 갈등한다. 가짜뉴스가 아닐까하며 진저리를 칠만큼 무섭고 끔찍한 일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들려온다. 하지만 한강 둔치에 모인 우리 모두는 색색의 다양한 불꽃이 화려하게 타올라 금방 사라지는 허무함에도 터지는 불꽃을 놓치지 않기 위해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눈에 담긴 불꽃이야 말로 우리가 더 소망하고 싶은 어떤 마음, 그런 우리 기대의 표상은 아닐까? 잠시나마 순간의 불꽃에 자신을 기대면서 말이다.
하늘을 저토록 아름답게 수놓던 불꽃들도 순간에 사라지고 결국 화려한 불꽃축제의 막은 내리겠지만, 우리 모두는 또다시 펼쳐질 내년을 기대하며 발걸음을 돌린다. 내년에도 불어오는 밤바람은 오늘처럼 시원하고, 각자의 소망도 하늘에서 '팡' 터지며 환한 웃음으로 빛나길 기대하며 말이다. 그토록 인간은 절망적으로 희망하는 존재다. 순간 속에서 무궁을 만들어내던 저 불꽃처럼.
글·조현주 박사(문화콘텐츠학)
댓글
(0) 로그아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