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엘리엇에 1300억원 배상 판정…이재용 회장 4년째 재판

중재재판소, 엘리엇 1조원 청구 중 7%만 인정
일각, 후진적 지배구조 병폐 드러난 사건
이 회장, 재판 1심만 4년째 진행
신종모 기자 2023-06-22 11:35:57
[스마트에프엔=신종모 기자]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는 지난 20일(현지시간) 미국계 자산운용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우리나라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 해결절차에서 엘리엇이 청구한 손해배상금 7억 7000만달러(약 9917억원)의 7%인 5358만 6931달러(약 690억원)를 정부에서 배상해야 한다고 판정했다. 

사진=연합뉴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엘리엇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한 국제투자분쟁 해결절차에서 엘리엇의 일부 승소를 결정했다. 

배상원금에 붙는 이자와 법률비용을 포함하면 정부가 지급해야 하는 돈은 1300억원을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판정문이 아직 공개되지 않았기에 이번 판정의 타당성이나 우리 정부 대응을 평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번 판정을 통해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과 합병비율 등의 부당성이 다시금 재점화됐다. 

엘리엇은 “그해 삼성그룹 오너 일가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 과정에서 당시 청와대, 복지부가 국민연금에 찬성 투표를 하도록 압력을 행사해 손해를 봤다”며 지난 2018년 7월 국제투자분쟁 해결절차(ISDS)를 통해 국제중재를 제기한 바 있다. 

ISDS는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법령이나 정책 등으로 피해를 봤을 때 중재를 통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는 제도를 말한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 지분의 7.12%를 보유하고 있어서 삼성물산 1주당 제일모직 0.35주로 제시된 합병비율이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불합리하다며 합병을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엘리엇은 “박근혜 전 대통령은 주요 인사들과 직권을 남용해 국민연금이 절차를 뒤엎고 합병 찬성이라는 잘못된 결정을 내려 손실을 끼쳤다”며 “삼성의 뇌물과 대통령의 승계 계획 지원 사이에 명확한 대가성이 다분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한국 정부는 “정부가 개입하지 않았더라도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했을 수 있다”면서 “엘리엇이 삼성물산 주식을 매수하기 시작할 당시에 이미 합병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알았고 합병 승인 이후 투자손실을 입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득을 봤다”고 반박했다. 

중재판정부는 양측의 서면 자료를 충분히 검토했고 지난 3월 14일 최종적으로 절차 종료를 선언하면서 심리는 끝이 났다.

일각, 대기업집단 지배주주 전횡사건 평가 

일각에서는 ‘삼성그룹 총수일가’로 대표되는 국내 대기업집단 지배주주의 전횡과 후진적 지배구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경제개혁연대는 22일 논평을 통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그룹 지배권 승계 및 강화를 위해 대통령은 물론이고 당시 대다수 언론과 국민은 실체조차 알지 못했던 측근 실세까지 뇌물이 제공됐다”며 “ 뇌물 제공에 쓰인 자금은 회삿돈이었으며 나아가 국민연금의 주요 의사결정권자들은 직권을 남용해 기금에 막대한 손해가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합병안에 대해 국민연금이 찬성하도록 외압을 행사했다”고 설명했다.

연대는 이어 “국민 노후자금이 이재용 회장의 지배권 승계 및 강화에 쓰였다고 하는 것은 조금의 과장도 없는 정확한 평가”라면서 “재벌 대기업집단 총수일가를 위해 국민 노후자금까지 동원되는 국가의 자본시장이 기업가치나 잠재력을 바탕으로 공정하게 평가될 리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삼성물산 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해 이재용 회장에 대한 공소제기를 유지하는 검찰 역시 판정 결과를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이번 판정이 사건의 실체를 보다 명확히 드러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증거 제출이 필요하지는 않은지를 따져서 실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해 10월 13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회계부정·부당합병' 관련 1심 속행 공판 출석을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용 회장, 4년째 재판 진행 중 

이재용 회장은 그룹 지배력을 강화하고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승계하기 위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서 불법 행위를 한 혐의 등으로 지난 2020년 9월 기소된 바 있다. 

앞서 검찰은 지난 2015년 합병 당시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이 제일모직 주가를 높이고 삼성물산 주가는 낮추기 위해 정보를 거짓 유포하거나 은폐하고, 국민연금 의결권을 확보하기 위해 불법적으로 로비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 회장은 제일모직 자회사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 부정에 따른 분식회계 혐의로도 함께 기소됐다.

이 회장 측은 “당시 합병이 합리적 경영 판단”이라며 “합병 후 경영 실적이 개선됐다”고 말했다.  
 
현재 재판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에서 4년째 진행 중이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사건의 1심 재판은 아직 증인신문 절차에 머물러 있는 수준”이라며 “결론이 난다고 하더라도 2심과 3심을 거쳐야하기 때문에 최대 5년 이상 걸릴 수 있다”고 전했다.  

신종모 기자 jmshin@smartf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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