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진의 재미있는 K-LCC 이야기] (20)LCC와 K-LCC는 어떻게 다른가⑨K-LCC의 사뭇 다른 광고홍보 전략, 세번째 이야기
김효정 기자2022-12-31 07:01:02
제주항공이 취항 직후 안고 있던 또 하나의 어려움은 당시 운용 중이었던 Q400 기종의 항공기에 대한 우리나라 국민의 막연한 불안심리였다. 제주항공은 취항 당시 항공당국의 규제 및 기존항공사의 견제 등 복합적인 이유로 도입항공기 좌석수에 대해 제한을 받았다. 지금이야 신생항공사가 대형기를 들여오든 소형기를 들여오든 항공사 형편에 따라 알아서 하는 것이지만 당시만 해도 항공사 설립 및 운용은 하나부터 열까지 사사건건 항공당국의 지시성(?) 간섭이 절대적이었다.
게다가 정기항공사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두 항공사만 존재하던 당시에 또 하나의 새로운 정기항공사 사업자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항공당국의 지시를 무조건 따라야 했다. 제주항공은 항공당국의 권고에 따라 80석 미만의 항공기를 들여왔고, 그래서 선택된 게 캐나다 봄바디어 에어로스페이스(Bombardier Aerospace)사가 제작한 Q400 기종이었다. 이 기종은 당시 운용중인 전 세계 항공기 가운데 무사고 기록을 가지고 있을 정도의 안정성을 자랑하던 74∼78인승의 중형기로 프로펠러가 달린 터보엔진을 사용했다. 승객과 짐을 최대한 실었을 때 비행기 무게는 29t으로 최대항속거리가 1855∼2522㎞, 순항속도는 시속 666㎞였다. 봄바디어사의 Q시리즈는 엔진이 2개이고, '조용하다'(quiet)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Q시리즈 항공기는 1000대 이상이 제작되었다.
제주항공이 2006년 6월5일 취항하고 한 달쯤 지난 7월초, 일본 항공당국과 언론이 캐나다 봄바디어사의 Q400 여객기에 대한 안전문제를 거론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제주항공 여객기에 대한 안전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2006년 6월11일자로 국토교통성이 2003년 2월 Q400기 도입이후 발생한 기체고장 52건을 분석한 결과, 조종사 조작 실수 3건을 제외한 49건이 컴퓨터 고장이나 배선 불량 등 제조사의 제조 및 설계 단계의 문제로 파악됐다고 보도했다. 고장사례 52건 중 랜딩기어 수납 불능이 19건으로 가장 많았고, 자동조종장치와 승강타 고장 등 조종계통 고장이 11건, 엔진계열 고장도 5건을 차지했다는 것이었다.
일본 항공당국은 이와 관련한 개선을 캐나다 정부에 요청했다고 일본언론이 전했다. 일본정부는 Q400기의 잦은 고장원인이 정비불량이나 조종사의 오작동 때문이 아니라 Q400기 자체의 제작불량 때문이라는 입장이었다. 실제 Q400기의 고장은 제주항공에서도 자주 발생하여 예약 및 탑승객의 불안이 커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후 2007년 11월경 Q400 항공기에 대한 안전성 논란이 다시 점화됐다. 스칸디나비아항공(Scandinavian Airlines System, SAS)의 공항 착륙과정에서의 사고가 발단이었다. 2007년 11월 미국 항공전문지 'ATW 데일리뉴스'는 스칸디나비아항공이 안전상의 이유로 자사가 보유 중인 27대의 Q400 여객기를 더 이상 운항하지 않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마트 얀손 SAS그룹 사장은 "이 기종으로 비행하는 것에 대한 고객의 불안감이 급증하고 있으며, Q400에 대한 자신감이 현저히 줄었다"면서 "Q400 기종의 운항을 중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Q400은 이외에도 2007년 3월 일본 고치(高知)공항에서 앞바퀴가 나오지 않아 동체착륙하는 사고를 낸 이래 같은 해 9월 Q400이 착륙장치 이상으로 리투아니아의 빌니우스공항에서 동체착륙을 시도한 사고가 있었다. Q400 제작사인 캐나다 봄바디어사는 "전 세계 21개 항공사 가운데 어떤 항공사로부터도 SAS의 경우와 유사한 문제점에 대해 들은 바 없다"면서 "Q400 항공기 퇴출 결정에 매우 실망스럽다"고 밝혔다.
다만 사고가 난 이들 항공기는 모두 2000∼2001년 초기에 개발된 항공기였으며, 제주항공이 도입한 항공기는 모두 2006년 이후 제작된 최신기종이었다. 제주항공은 우리나라에서 3번째 정기항공사로 등록되는 과정에서 항공당국과 기존항공사의 눈에 보이지 않는 행정지도와 견제에 의해 취항 초 기존항공사들이 사용하지 않는 그래서 우리나라 국민에게 생소한 기종을 들여와 소비자를 설득하는 데 많은 시간과 수업료를 들여야 했다. 신생항공사의 도입항공기에 대한 좌석수 제한은 대한항공이 LCC 사업에 진입하면서 사라졌다. 대한항공의 자회사형 LCC인 진에어가 K-LCC 시장에 들어오면서부터 좌석수 제한이 풀리자 제주항공 역시 즉각 B737-800 기종으로 변환을 시도했다. 처음에는 B737-800 기종과 Q400 기종을 같이 사용하다가 B737-800 기종으로 단일화하면서 2010년 3월28일 하계 운항기간부터 국내선 정규스케줄에서 보조기종으로 사용하던 Q400을 완전 제외시켰다.
제주항공의 ‘기종 단일화 계획’에 따라 Q400 항공기는 2010년 6월16일 고별비행을 끝으로 해외에 전량 매각됐다. 제주항공이 매각한 4대의 Q400 항공기는 콜롬비아 국적의 ‘아이레스항공’이 현금 구매했다. 제주항공은 Q400 항공기 매각으로 인한 매각대금을 전액 차입금을 갚는 데 사용했고, 2010년 하반기부터는 이익 실현과 더불어 획기적으로 재무구조가 개선돼 우량기업으로 거듭나는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되기도 됐다.
그런데 여기에서 제주항공의 전략이 빛을 발했다. 제주항공은 그동안 Q400 항공기에 대해 적극적으로 안전성 홍보를 펼쳐왔으나 이젠 “Q400이 없다”는 사실을 소비자에게 다시 알려야 했다. 의외로 일반 소비자들은 특정 항공사가 정확히 어떤 기종을 운항하는지 별 관심이 없다. 다만 어디선가 얼핏 들은 ‘위험하다더라’는 정도의 정보만 습득한다. 따라서 제주항공은 이제 Q400은 운항을 안하고 B737-800 기종의 항공기만 운항한다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알려야 했다.
제주항공은 ‘아듀 Q400’ 행사를 기획해냈다. 인터넷을 통해 신청을 받은 Q400 항공기 마니아들과 각 언론사의 항공담당 기자 및 카메라기자들을 2010년 6월16일 Q400 항공기 한 대에 모두 태워 고별비행을 했다. 고별비행에 나선 Q400 항공기는 이날 오전 10시 김포공항을 출발해 광주와 부산 상공을 거쳐 다시 김포로 돌아오는 약 2시간의 마지막 비행을 했다. 우리나라를 한바퀴 돌고 김포공항에 돌아온 Q400 항공기에는 조종사와 객실승무원들이 활주로에 나가 항공기 앞부분에 약 2m짜리 대형 꽃다발을 걸어주고 뽀뽀와 함께 안아주는 등 곧 해외로 팔려갈 항공기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표시했다.
이처럼 특정 항공기에 대한 고별비행과 고별행사는 전 세계 항공역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매우 기념비적인 행사였다. 이날 행사는 항공마니아들 사이에서 사료적 가치로 받아들여졌으며, 나중에는 제주항공 Q400 모형항공기가 희귀템으로 인식되어 높은 가격에 거래되었다. 물론 이날 제주항공의 ‘아듀 Q400’ 행사는 거의 모든 언론에 사진과 영상으로 보도되면서, 소비자들은 ‘이제 제주항공에는 프로펠러의 Q400 기종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에 따라 끊임없이 따라다니던 K-LCC의 안정성 논란을 불식시키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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