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스웨스트항공 항공권에는 좌석번호가 없다. 선착순 탑승이다. 다른 항공사를 이용하는 승객들은 여유 있게 라운지에 있거나 터미널 의자에 앉아 기다리다가 느긋하게 항공기에 탑승하지만, 사우스웨스트항공 승객들은 공항에 더 일찍 도착해서 앉지도 못하고 긴 줄을 늘어서서 탑승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자칫 공항에 늦게 도착하거나 식사를 하느라고 줄을 늦게 서면 일행과 떨어져 앉거나 가운데자리에 나홀로 끼어 앉는 등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승객일행이 부부이거나 어린아이를 동반한 가족여행일 경우에는 각각 떨어져 앉아 항공여행을 할 수 있으므로 더 서둘러서 공항에 도착한 후 줄을 서거나 아니면 추가운임을 내고 좌석번호를 받아야 한다.
더 큰 불편은 기상사정이나 연결편 등의 이유로 항공편이 지연되거나 결항될 경우 호텔을 제공받거나 식사쿠폰 등 항공사에서 제공되는 서비스를 기대하면 안 된다. 다음날 항공편 예약을 잡아주는 수준의 최소한의 사후처리에 감지덕지해야 한다. 때문에 사우스웨스트항공 이용객들은 공항터미널에서 노숙도 불사한다. 무사히 탑승했다 하더라도 항공여행의 별미인 기내식은 없다. 대신에 땅콩 한 봉지로 대체되고, 음료서비스와 심지어 물 한 모금도 돈을 주고 사 먹어야 한다.
이 같은 사우스웨스트항공이 그 모델 그대로 우리나라에서 운항을 하였다면 우리 항공소비자들은 어땠을까. 아마도 공항마다 농성장으로 변했을 성 싶다. 소비자를 우롱하는 나쁜 항공사의 대명사가 되었을 게다. 아무리 저렴한 항공운임이라도 사우스웨스트항공 방식의 항공편은 우리나라 항공소비자에게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다. 왜냐하면, 우리 국민에게는 ‘비행기를 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항공소비자들에게는 항공여행이 단순한 교통수단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문화와 감성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사우스웨스트항공의 비즈니스 모델은 우리나라 항공소비자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이었다. 우리나라 항공소비자들은 LCC가 도입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전 세계 모든 항공사 가운데 최고수준의 풀서비스를 받아온 경험으로 똘똘 무장되어 있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대고객 서비스는 전 세계에서 수위를 차지하는 고품격이다. 단순히 교통수단의 하나였던 선진국 항공편과 달리 우리나라 기존항공사의 경쟁적인 서비스 경쟁에 익숙해 있었다.
따라서 우리나라 초기 LCC를 탑승한 소비자들은 엄청난 문화 차이를 겪어야 했다. 이건 항공서비스가 절대 아니었다. 내가 비행기를 탔는데 이런 대접을 받는다는 것을 결코 용서할 수 없었다. 우리나라 항공소비자들은 본인이 FSC의 기존항공사보다 더 저렴한 항공료를 지불했다는 사실을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 까맣게 잊어버렸다. 풀서비스를 제공받는 기존항공사든 LCC든 비행기를 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비행기를 타면 기본적으로 어떤 서비스를 받게 된다는 학습효과가 탄탄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수많은 항공사가 LCC를 시도했지만 성공적으로 자리잡은 항공사는 사우스웨스트항공이다. 따라서 LCC의 효시격인 사우스웨스트항공이 성공적인 최초의 LCC인 것이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은 이후 유럽의 각 LCC들에게 벤치마킹 대상이 되었다. 유럽의 많은 LCC가 사우스웨스트항공을 모델로 삼았고, 그 가운데 성공한 LCC로는 라이언에어와 이지젯이 꼽힌다. 말레이시아 사람으로 영국에서 유학생활을 했던 한 남자가 이지젯의 성공을 보고 본국으로 돌아가 성공시킨 항공사가 다름아닌 에어아시아이다. 즉, 미국에서 시작되어 유럽으로 그리고 다시 동남아시아로 LCC의 전이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이 이루어진 이후 대한민국에서 LCC가 태동되었고,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이를 벤치마킹하면서 동북아시아에도 LCC 세상이 펼쳐졌다.
2005년 무렵 우리나라에서 LCC 설립을 주도한 관계자들은 거의 맹목적으로 사우스웨스트항공을 벤치마킹해서 그 방식 그대로 도입하려 했다. 하지만 당시의 크게 다른 문화적 정서로 인해 항공소비자들로부터 엄청난 저항을 받아야 했다. 따라서 사우스웨스트항공 방식의 LCC는 큰 틀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적용되지 못했다. 우리나라 항공소비자들의 요구에 맞춰 새로운 방식으로 수정 적용한 것이었다. 때문에 해외 LCC와는 다르게 적용된 이들의 명칭은 △대한민국 LCC △우리나라 LCC △국내 LCC △한국형 LCC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어졌다.
전 세계 다른 나라의 LCC와 우리나라 LCC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다.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설립되기 시작한 우리나라 LCC는 초기에는 해외 LCC와 유사하게 시작되었지만 결국 ‘닮은꼴’에서 ‘다른꼴’로 변화해 나갔다.
아시아 최대 LCC인 에어아시아(Air Asia)의 설립자 토니 페르난데스(Anthony Francis Fernandes)는 2012년 7월30일 부산에서 우리나라 언론을 대상으로 기자회견을 하면서 “한국에는 진정한 LCC가 없다”고 말했다. 토니 페르난데스 회장의 말처럼 우리나라에는 진정한 LCC가 없다. 이는 다시 말해서 ‘외국형 LCC’가 없다는 말이다. 해외 오리지널 LCC의 눈으로 보면 우리나라 LCC는 LCC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LCC는 해외 LCC의 변형인 ‘다른 LCC’이자 ‘한국형 LCC’이다. 우리 항공소비자의 요구에 따라 변형된 LCC만 존재할 뿐이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LCC, 국내 LCC, 한국형 LCC 등으로 다양하게 부르고 있는 이 같은 비즈니스 모델은 ‘다른 LCC’이다.
이 ‘다른 LCC’를 해외 LCC와 엄격하게 구별하는 새로운 명칭을 부여해야 알맞다. 우리나라에 도입된 지 20년이 다 되어가는 대한민국의 Low Cost Carrier를 ‘저가항공사’나 ‘저비용항공사’라는 우리말의 어색한 단어를 들이밀기보다는 더 알맞고 더 적절한 명칭을 찾아주어야 한다.
해외의 다른 나라 LCC와 우리나라 LCC가 그처럼 확연하게 다른 모습이라면 더 이상 대한민국 LCC들 스스로가 거부하는 ‘저가항공사’라거나 어색한 우리말 표현인 ‘저비용항공사’ 등 갈등을 부추기는 이름으로 부르기보다는 중립적인 다른 명칭으로 불러주어야 할 명분이 충분하다. 또한 우리나라 LCC, 국내 LCC, 한국형 LCC 등으로 부르고 있던 데에는 해외 LCC의 비즈니스 모델과는 다르다는 나름의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해외 LCC와 엄격하게 구별되는 ‘대한민국 LCC’를 우리말로 바꾸기가 애매하다면 글로벌시대에 맞게 원문 그대로 ‘LCC’를 사용하는 게 그나마 가장 적절하다. 그리고 LCC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게 아닌 전 세계에 다 있는 것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대한민국 LCC’이자 ‘한국형 LCC’이니까 이를 줄여서 ‘K-LCC’로 불러주는 게 가장 합리적이다. 이미 K-drama도 있고, K-pop도 있고, K-food도 있지 않은가. Drama, pop, food를 굳이 우리말로 해석하지 않고 영문 그대로 불러주었듯이 LCC 역시 우리말이 아닌 영문 그대로 불러주면 된다. 대한민국의 Low Cost Carrier를 어색한 우리말 단어로 들이밀기보다는 그냥 그대로를 100% 인정해주는 ‘대한민국 LCC’, 즉 ‘K-LCC’라는 명칭이 가장 알맞고 적절하다.
K-LCC의 정착과정이 국내 유통업계 사례와 매우 흡사하게 진행된 것도 특이하다. 미국의 월마트, 유럽의 까르푸가 한국시장에서 실패하고, ‘한국형 할인점’을 표방한 우리나라 할인점이 성공신화를 쓴 경우와 너무 유사하다. 우리나라 항공사업에서도 미국의 사우스웨스트항공, 유럽의 라이언에어와 이지젯, 동남아시아의 에어아시아가 추구한 LCC와 K-LCC는 많이 다르다. 즉, K-LCC가 탄생한 것이다.
우리나라 LCC들도 설립 초기에는 사우스웨스트 항공을 따라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우리나라 소비자 특성을 고려해서 수많은 실패경험을 통해 우리나라 항공소비자에게 적응된 전혀 새로운 형식의 K-LCC가 탄생된 것이다. 따라서 ‘LCC’는 사우스웨스트항공, 라이언에어, 이지젯, 에어아시아 등의 성공한 해외 LCC를 말하고, ‘K-LCC’는 우리나라에서 자리잡은 또 다른 형태의 LCC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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