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CC는 ‘Low Cost Carrier’의 약어(略語)이다. ‘Low Cost Carrier’를 우리나라에서는 ‘저가항공사’와 ‘저비용항공사’로 해석한다. 수년 전부터 K-LCC 가운데 제주항공, 티웨이항공, 이스타항공 등 이른바 독립형 LCC들은 자신들을 ‘저가항공사’로 분류해서 호칭하는 데에 거부감이 있었다. 그래서 이들은 2000년대 중후반 취항 초기에 ‘저비용항공사’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데에만 동의했다.
이에 따라 K-LCC를 ‘저비용항공사’라 부르는 이가 많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저가항공사’로 호칭하는 사례가 더 많다. 심지어 ‘저비용항공사’를 줄여서 ‘저가항공사’로 부르는 경우도 있다. 마치 ‘저비용항공사’의 줄임말이 ‘저가항공사’인 것으로 인식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언론뉴스에서 기사 본문에는 ‘저비용항공사’로 되어 있는데 기사 제목에는 버젓이 ‘저가항공사’로 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기사제목은 글자수를 한 글자라도 줄여야 하다 보니 6자의 ‘저비용항공사’를 5자의 ‘저가항공사’라는 명칭으로 사용한 것이다. 이는 ‘저비용항공사’와 ‘저가항공사’가 동의어(同義語)로 잘못 인식된 데 따른 것이다.
K-LCC들은 LCC가 ‘Low Cost Carrier’인 것은 예외 없이 인정하지만, ‘Low Cost Carrier’를 우리말로 해석되는 데에 대해서는 대부분 LCC가 인정하지 않는다. ‘Low Cost Carrier’를 ‘저가항공사’로 해석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저가항공사로 해석되려면 ‘Low Cost Carrier’가 아니라 ‘Low Price Carrier’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K-LCC들은 ‘Low Price Carrier’를 도입한 것이 아닌 ‘Low Cost Carrier’를 들여온 것이기 때문이다.
‘Low Price Carrier’와 ‘Low Cost Carrier’는 명백히 다른 비즈니스 모델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모든 LCC는 자신들의 항공사를 ‘저가항공사’로 해석하여 부르는 것을 꽤 강한 어조로 거부한다. 이에 따라 국내 LCC들은 실용성과 지역색 등 차별화된 정체성을 부각하는 슬로건 경쟁에 적극 나서기도 했다. '저가' 이미지를 벗고 특화된 타깃고객을 잡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제주항공 초대 대표이사에 취임한 주상길 사장은 2007년 5월31일 김포공항에서 취항 1주년을 기념해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제주항공은 제3항공사로 도약하겠다. 저가항공사로 취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2006년 6월5일 취항한 제주항공이 부정기항공사였던 한성항공과 설립준비중인 전북항공 등과 함께 저가항공사로 불리고 있는 당시 상황을 에둘러 비판한 것이다. 이날 주 사장은 "한성항공, 전북항공 등은 전세기를 운항하는 부정기운송사업자이고, 제주항공은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에 이어 세 번째로 정기운송사업 허가를 받은 정기항공사"라며 "분명한 차이가 있는데 저가항공으로 함께 취급되는 것은 억울하다"고 말했다.
주 사장은 또 제주항공은 국제선 확대를 통해 ‘아시아지역 전문 항공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저가항공사보다는 아시아지역 항공사로 포지셔닝하는 게 목표라며 아시아지역 항공사들과 제휴를 통해 동북아와 동남아 등지를 운항하는 ‘제3항공사’로 성장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제주항공은 취항 초기부터 저가항공으로 분류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제3의 정기항공사’, ‘제3항공’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이후에는 국내 LCC업계 1위의 위치를 활용해 ‘국내 최대 LCC'란 수식어를 주로 썼다. K-LCC업계 맏형으로서 기존항공사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에 이어 3대 항공사로서의 입지를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진에어는 '실용항공사'로 스스로를 규정했다. 비용절감을 통해 합리적인 항공운임과 실용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진에어는 "합리적인 소비자가 선택하는 대표적인 LCC라는 의미에서 '실용항공사'라는 슬로건을 알리고 있다"고 했다. 진에어 객실승무원의 유니폼이 청바지인 것도 '실용항공사'란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해서였다.
에어부산은 아시아나항공 계열이다. 하지만 지분구조상 최대주주 못지 않은 지분을 부산지역 기업주주와 부산시가 나눠 갖고 있다. 에어부산은 처음에는 '지역항공사'란 점을 애써 강조하지는 않았다. 지역거점 항공사의 한계가 노선 확대와 사업 확장에 일정 부분 걸림돌로 작용해온 때문이었다. 그러던 것이 2015년 아시아나항공이 '제2 LCC'인 에어서울을 설립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에어부산은 2016년 들어 '지역항공사'라는 점을 부쩍 강조했으며, 항공사 소개 문구도 '저비용항공사 에어부산'에서 '지역항공사 에어부산'으로 바뀌었다. 에어서울 설립으로 국내 허브(hub)공항인 인천과 부산을 양대 축으로 한 LCC 계열화가 완성되면서 생긴 변화였다.
2009년 1월7일 취항한 이스타항공 이상직 회장은 한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저가항공사'와 '저비용항공사'는 개념이 다르다. 저비용항공사는 무슨 싸구려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거품을 빼는 경영전략을 갖춘 항공사를 말한다. 우리 항공사를 똑같이 취급하지 말아 달라. 우린 제4의 저가항공사가 아니다. 거품을 뺀 제1의 국민항공사다"라고 말했다.
이스타항공은 '짜릿한 가격으로 추억을 파는 국민항공사'란 슬로건을 사용했다. 줄여 말하면 '국민항공사'다. 이스타항공은 "저렴한 가격으로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해 온 국민에게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주는 '국민항공사'가 목표"라고 말했다.
티웨이항공은 2016년경 '지역항공사'로의 변신을 꾀했다. 거점은 대구·경북 지역이었다. 대구~제주 노선을 처음 취항한 것도 티웨이항공이었다. 당시 신규 노선과 추가 도입 항공기 대부분을 거점인 대구에 투입했다. 2015년엔 국적항공사 최초로 대구 거주자를 대상으로 객실승무원을 채용하기도 했다. 티웨이항공의 지역항공사 변신은 최대주주인 오너일가와 깊은 관련이 있어 보였다. 대구는 티웨이항공 최대주주인 나춘호 예림당 회장의 고향이었다.
이 같은 ‘저가항공사가 아니다’는 업계내부의 기피현상은 K-LCC에 입사를 희망하는 지원자들에게 불똥이 튀었다. 특히 제주항공, 티웨이항공, 이스타항공 등 독립형 LCC 지원자들이 면접시나 자기소개서에서 ‘저가항공사’라는 용어를 사용하면 이 지원자는 탈락될 확률이 매우 높다.
K-LCC 고위 인사책임자들이 신입사원을 뽑을 때 공통적으로 “항공사 직원을 뽑는 게 아니라 우리회사 직원을 뽑는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항공사 직원’이란 기존항공사와 LCC를 가리지 않고 아무 데나 들어가겠다는 보통의 사람을 말하는 것이고, ‘우리회사 직원’이란 K-LCC 입사를 희망하고 미리 LCC에 대한 기본개념을 파악한 상태에서 LCC의 비즈니스 모델까지 이해하고 있는 지원자를 말한다. 왜냐하면 LCC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기존항공사든 LCC든 무조건 항공사 취업만을 꿈꾼 지원자를 채용할 경우 조기퇴사율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이 두 부류를 가려내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저가항공사라는 명칭을 사용하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
사태가 이런 데도 많은 지원자가 저가항공사라는 귀에 익은 명칭을 꽤 오랜 기간 사용했다. 이 같은 현상은 K-LCC 지원자 가운데 상당수가 대학에서 관련학과를 다녔거나 항공관련 취업학원에서 공부한 데 따른 것이었다.
우리나라 많은 대학의 항공관련 학과 교수들이 LCC의 우리말 해석에 대해 특별한 고민 없이 그저 편하게 ‘저가항공사’라는 보편적인 용어를 사용해왔고, 학생들은 귀에 익은 용어를 쓴 것뿐인데 해당 K-LCC에서는 우리회사에 대한 기본지식이 안되어 있다고 판단했다. 우리회사에 입사를 희망하는 지원자가 우리회사를 비하한다고 오해하며 심지어 불쾌하게 생각했다.
이 같은 오해의 이유는 우리나라 대학의 항공관련 학과 교수 가운데 LCC에서 근무를 해본 경험자가 드물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항공관련 학과 교수 중에는 항공사에서 근무한 산업체 경력자가 많은데, 이들 교수진의 상당수가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등 기존항공사 출신이다. 간혹 LCC 경력이 있는 교수진도 있지만, 이들은 항공사 전체경력 중 80~90%를 FSC 방식의 기존항공사에서 근무하고 LCC로 이직해서 3년 이내의 비교적 짧은 근무경력인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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