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진의 재미있는 K-LCC 이야기] (4)우리나라 LCC의 민감한 용어선택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김효정 기자 2022-11-05 04:56:20
양성진 ‘세상을 바꾼 K-LCC’ 저자

우리나라 LCC의 이처럼 민감한 용어선택은 도대체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2005년 이전에 우리나라의 항공사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2개사만 있었다. 그래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항공사의 유일한 모델이자 전부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LCC가 우리나라에 도입되기 시작하면서 이에 대한 명칭을 선택해야 했다. FSC 기존항공사만 있을 때는 아무 문제 없던 항공시장에 LCC가 들어오면서 많은 이가 불편해지고 곤란해진 것이다.

이처럼 없던 업종(業種)이나 업태(業態)가 세상에 첫선을 보이면 이를 어떻게 부를지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언론뉴스나 정부기관 혹은 소비자들이 정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 같은 신규사업을 펼치는 해당회사에서도 명칭을 내놔야 한다. 즉 공급자와 수요자 간의 합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LCC의 경우에는 취항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명칭을 자신들이 정하기 전에 이미 해외 LCC로 인한 우리말 명칭이 존재한 이유가 컸다.

이 같은 항공시장 사례와 꼭 빼 닮은 사례가 있다. 2000년대 초중반의 항공시장 사례보다 약 10년 전쯤인 1990년대 초중반에 유통업이 그랬다. 백화점이 전통적인 유일한 대형유통업체였는데 할인점이 등장했다. 우리나라에서 할인점 도입과 백화점과의 경쟁 그리고 발전과정 및 소비자 인식변화 등은 항공시장 사례와 매우 흡사하다.

우리나라 할인점 역시 미국 월마트(Wal-Mart)와 프랑스 까르푸(Carrefour)의 비즈니스 모델을 도입한 것이었다. 특히 월마트를 벤치마킹한 것이었는데, 월마트는 미국에서 태동한 디스카운트 스토어(discount store)였다. 이 ‘디스카운트 스토어’라는 오늘날의 할인점이 우리나라에는 1993년 처음 등장했다.
이마트 / 사진=플리커

할인점의 출발과 성장과정이 우리나라 LCC의 취항 및 발전과정과 똑같다. 국내 최초의 할인점으로 기록된 이마트 창동점은 1993년 11월12일 문을 열었다. 종업원 27명으로 출발한 이마트의 첫해 전체매출은 450억원이었다. 20년 후인 2013년 10월말과 비교하면 이마트의 직접 고용인원은 2만8000명으로 1037배 늘었다. 매출은 20년 새에 333배 불어난 15조원에 달했다.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을 합한 대형할인점 3사의 2012년 연간매출은 38조원 규모였다. 국내 백화점 전체 연간매출 28조원을 넘어서버렸다.

이마트가 첫 선을 보이기 이전인 1990년대 초에는 백화점이 전부였다. 그 외에는 대리점, 전통시장 정도뿐이었다. 1993년 한 개뿐이던 할인점 점포 수는 20년 만인 2013년 10월 말을 기준으로 이마트(146개), 홈플러스(138개), 롯데마트(106개)를 합쳐 390개로 늘었다. 고용인원은 2012년 6만9000명에 달했다.

우리나라에 할인점이 처음 생겼을 당시 대형유통업체는 백화점이 유일했다. 따라서 소비자들은 가격이 좀 비싸더라도 많은 물건이 있는 백화점에서 별 고민 없이 쇼핑할 수 있었다. 품격은 덤이었다.

그리고 1993년 할인점이 처음 생겼을 때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기존의 백화점을 버리고 쇼핑장소를 할인점으로 곧장 바꾼 것은 아니었다. 수십년에 걸친 쇼핑의 경험을 새로운 업체가 값이 싸다고 해서 바꾸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리고 할인점에 가서 백화점의 고품격 서비스를 요구하기 일쑤였다. 백화점과 비교해서 서비스의 질이 낮다는 점에 거부감이 심했다. 품격과 서비스 대신 물건값이 싸다는 점을 애써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가격은 가격이고, 대형유통업체에 걸맞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즉, 기존에 백화점에서 받아오던 최상의 서비스는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같은 탓에 우리나라 할인점은 이마트 창동점이 1호점으로 개점한 이래 한참동안 정체기간을 보냈다. 할인점 도입 초기에 우물쭈물하는 사이 외국계 초대형 디스카운트 스토어가 한국시장에 속속 밀려들어 왔다.

우리나라 소비자의 큰 관심을 이끌어 내지 못했던 도입 초기의 할인점은 외국계 디스카운트 스토어 출점과 1990년대 후반 IMF 체제가 맞물리면서 공격적인 확장전략으로 바뀌었다. 또한 품격 보다는 실속으로 쇼핑의식이 급속하게 바뀐 소비자 인식전환도 큰 몫을 했다.
월마트 / 사진=플리커

백화점과 할인점의 업태를 명쾌하게 구분하지 않으려 했던 것은 10여년 후 항공업에서 LCC가 등장했을 때와 똑같았다. 항공업계에서 미국의 사우스웨스트항공과 유럽의 라이언에어가 LCC로 성공을 거둔 사례와 동일하게 할인점의 태동도 미국에서 시작됐다. 미국의 월마트가 EDLP(Everyday Low Price, 상시 저가 판매) 전략으로 디스카운트 스토어를 처음 개점해 성공시켰다. 그리고 LCC의 대륙간 이동방향과 마찬가지로 할인점 역시 월마트의 성공은 유럽으로 넘어가 까르푸를 탄생시켰다. 월마트와 까르푸는 미국과 유럽의 대표적인 성공한 할인점이었다.

이들 월마트와 까르푸는 IMF 이후 급속하게 할인점에 열광하기 시작한 우리나라 소비자를 겨냥해 한국시장에 속속 진출했으나 10년을 넘기지 못하고 한국시장에서 실패하고 떠나갔다.

항공업에서든 유통업에서든 우리나라 소비자는 독특하고 특이했다. 미국과 유럽에서 대성공을 거둔 할인점이 우리나라에 와서 소비자를 설득하는 데는 실패했다. 그 이유는 ‘한국형’으로 변신하지 못한 것이 가장 컸다. 이들은 미국과 유럽에서 성공한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하려 했다. 전 세계 소비자를 매혹시킨 경험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똑같은 마케팅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그야말로 선진마케팅의 전형을 선보인 셈이다. 그러나 이는 우리나라 정부와 지자체, 언론을 비롯해서 결국은 소비자에게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이들 외국계 초대형 할인점과 치열하게 싸운 우리나라 할인점이 결국 대승리를 거뒀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우리나라 할인점의 성공요인은 ‘한국형’을 내세운 점이었다. 심지어 소비자들이 들어오는 입구의 건물 외관에 대형 태극기를 붙인 점포가 있을 정도였다.

우리나라 시장에서 할인점의 진입과정은 우리나라 항공시장에서 LCC의 진입과정과 유난히 닮은꼴이다. 그런데 할인점이라는 업태가 우리나라 시장에 처음 진출할 당시 소비자와 소통할 명칭이 필요했다. 월마트가 디스카운트 스토어(Discount Store)라는 명칭을 사용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 단어를 우리말로 표기하면서 ‘저가점포’나 ‘저가백화점’ 혹은 ‘저가슈퍼마켓’으로 부르지 않았다. 곧바로 ‘할인점’이나 ‘대형마트’라 해석하여 이름 붙였다. 지금이야 ‘할인점’이라는 명칭이 꽤 익숙하지만, 당시로서는 그리 품격 있는 명칭은 아니었다. ‘깎아주는 점포’라는 의미로 꽤 촌스러웠다.

‘할인점’의 사전적 의미 역시 LCC와 매우 유사하다. ‘할인점(割引店)’의 사전적 의미는 셀프서비스(self-service)에 의한 대량 판매 방식을 이용하여 시중가격보다 20~30% 낮은 가격으로 판매하는 유통업체이다. ‘백화점’이라는 멋진 이름을 포기한 것이다. 백화점(百貨店)은 여러가지 상품을 부문별로 나누어 진열ㆍ판매하는 대규모의 현대식 종합소매점이란 의미이다. 할인점 역시 백화점의 이 같은 사전적 의미와 동일하다. 가격이 더 싸다는 부가적 의미가 있을 따름이다. 즉, 백화점이란 많은 물건을 판다는 의미를 담고 있을 뿐 할인점과 대비되는 어떤 ‘멋짐’이나 ‘명품’을 담고 있는 단어는 아니다. 따라서 백화점 보다는 가격이 더 싸다는 특징의 대형유통업체가 새롭게 한국시장에 진입하면서 ‘할인점’이라는 명칭으로 소비자에게 다가선 것이다.

항공업계의 사례와 대비해 본다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이른바 ‘백화점’이고 LCC는 ‘할인점’인 셈이다. 우리가 할인점을 ‘저가백화점’이라고 부르지 않듯이 LCC를 ‘저가항공사’로 부르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런데 항공업계에서는 LCC를 기존의 두 항공사와 비교해서 ‘할인항공사’라 부르지 않고 ‘저가의 항공사’라고 굳이 이름 붙인 꼴이다.

 <글 / 양성진 ‘세상을 바꾼 K-LCC’ 저자>

댓글

(0)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깨끗한 댓글 환경에 동참에 주세요. 0 / 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