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연말결산) 불황 속 석화업계, 정부 지원책에 봄바람 맞나

석유화학 업황 부진 속 구조조정 본격화…자산 매각 릴레이
에틸렌, 수년째 손익분기점 300달러 이하…공장 가동하면 손해
김동하 기자 2024-12-27 09:38:16
2024년에도 석유화학 업계의 불황이 이어졌다. 중국 및 중동의 증설 등으로 공급 과잉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에 주요 수익원인 에틸렌 수익성이 개선되지 않으면서 공장을 가동하면 손해인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석화업계는 위기 돌파를 위해 자산경량화(에셋라이트)전략 등에 나섰고 정부도 지원책을 발표했지만 실질적인 효과를 볼 수 있을지 주목된다.

롯데케미칼 대산공장 전경 /사진=롯데케미칼


빅4 합산 누적 영업손실 5000억원 넘어…공장 가동하면 손해

27일 업계에 따르면 석유화학 '빅4'인 LG화학 석유화학 부문·롯데케미칼·한화솔루션 케미칼 부문·금호석유화학 등의 지난 3분기까지 누적 영업손실 총합이 5012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석유화학 빅4는 2021년 모두 수조원에 달하는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호황을 맞았지만 2022년부터 적자 국면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업계 불황의 가장 큰 배경으로 꼽히는 것은 중국발 공급과잉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다.

과거 국내 석유화학 업계의 최대 수요처였던 중국은 2020년부터 2023년까지 대규모 생산시설 증설을 통해 범용 제품을 중심 자급률을 높였다. 그러나 중국 내수 경기마저 침체에 들면서 중국 내 소비되지 못한 저가 중국산 화학 제품이 글로벌 시장에 쏟아졌다.

이는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의 수요 부진과 가격 경쟁력 하락을 불러왔고 실적 부진으로 이어졌다.

석유화학 업계가 어려움을 겪는 가장 큰 이유는 에틸렌 가격이 회복세를 보이지 않아서다. 수익 지표인 에틸렌 스프레드(에틸렌에서 나프타를 뺀 가격)는 2022년 이후 손익분기점인 1톤 당 300달러를 넘지 못하고 있다. 올해 3분기 기준 에틸렌 스프레드는 186.47달러 수준이다.

이로 인해 석유화학 기업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2021년 13.4%에서 지난해 0.6%까지 급락했다.

불황이 이어지면서 업계의 생산시설 가동률마저 줄었다. LG화학·롯데케미칼·여천NCC의 에틸렌을 만드는 나프타크래커 공장 가동률은 올해 3분기까지 평균 80%를 넘지 못하고 있다.

국내 석유화학 업계가 직면한 불황의 영향은 해당 기업에 그치지 않고 모회사의 위기까지 불러오기도 했다. 롯데그룹의 경우 핵심 계열사 중 하나인 롯데케미칼의 타격으로 그룹 전체가 유동성 위기론에 휩싸이기도 했다.

롯데케미칼의 수익성 악화로 회사채 발행 당시 맺었던 재무특약 조건의 불이행으로 2조원대 회사채를 즉각 갚아야 할 위기에 놓였던 것이다.

롯데케미칼은 회사채 발행 당시 EBITDA(이자·세금·감가상각 차감 전 이익·기업이 영업 활동으로 벌어들이는 현금 창출 능력을 보여주는 수익성 지표)를 이자비용으로 나눴을 때 5배 이상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지만 석유화학 업황 부진으로 영업손실이 발생해 이 수치가 지난 9월 기준 4.3배 밖에 되지 않았다.

특히 롯데케미칼 회사채는 교차 부도 조항이 있어 한 회사채에서 채무불이행이 발생하면 나머지 회사채까지 연쇄적으로 EOD(기한이익상실) 상태가 된다. 롯데케미칼의 유동성 위기가 롯데그룹 전체 위기론으로 번진 배경이라 볼 수 있다.

금호석유화학 여수고무제2공장 /사진=금호석유화학


불황 속 허리띠 졸라맨 석화업계…정부, 석화업계 지원책 발표

이미 석유화학 업체들은 고강도 재무개선과 투자 축소, 비핵심 자산 매각 등 방어적 경영을 시작했고 당분간 이어갈 방침이다.

LG화학은 지난해 편광판과 편광판 생산에 필요한 소재 사업을 1조982억원에 매각했다. 아울러 올해 초 여수 스티렌모노머(SM) 공장 가동을 중단했고, 여수 NCC 2공장 매각을 검토 중이다. 

롯데케미칼은 말레이시아 합성고무 생산법인 LUSR 청산을 결정했고, 해외 법인 지분 매각을 통해 총 1조4000억원의 자금을 확보할 계획이다. 더불어 기초화학 사업 비중을 오는 2030년까지 30%이하로 줄이는 동시에 '스페셜티' 제품 비중을 확대할 방침이다.

이렇듯 불황에 허덕이는 국내 석유화학업계를 살리기 위해 정부도 나섰다.

정부는 23일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를 통해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중국 등의 대규모 설비 증설로 인한 공급과잉이 석유화학 업계 불황의 원인으로 보고 ▲설비 폐쇄 ▲사업 매각 ▲합작법인 설립 ▲설비 운영 효율화 ▲신사업 M&A 등 기업의 자발적 사업재편을 유인하기 위해 다양한 법제 정비, 금융·세제 지원책을 시행하기로 했다.

사업재편 기업의 경우 지주회사 지분 100% 매입을 위한 규제 유예기간을 현행 3년에서 5년으로 확대한다. 매수자가 수익이 발생한 이후 지분 규제를 이행할 수 있게 시간적 여유를 보장하는 차원이다.

또한 사업재편에 나설 때 운영자금 지원 등 총 3조원 규모의 정책금융을 공급하고 1조원 규모의 사업구조 전환지원자금을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더불어 현재 범용 석화 제품 생산 체계를 고부가가치 '스페셜티' 제품 중심으로 전환하도록 R&D(연구개발) 지원에도 나선다. 

정부는 내년 상반기 '2025~2030년 R&D 투자 로드맵'을 수립해 발표하고 고부가·친환경 화학소재 기술개발에 대해서는 예비타당성조사(예타) 신청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매년 지금이 가장 어렵고 힘들다고 얘기하지만 올해는 생존에 대한 위기감까지 느껴질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며 "정부 지원책이 발표됐지만 실질적으로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지켜봐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고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동하 기자 rlaehdgk@smartf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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