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강훈식 의원에 고함

신수정 기자 2023-11-20 17:52:55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하여 노력하며, 국가이익을 우선으로 하여 국회의원의 직무를 양심에 따라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대한민국 국회를 거치는 모든 국회의원은 총선 이후 개원식에서 이 같은 선서를 한다. 이는 헌법 제7조1항의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국민에 대한 책임을 다할 것에 대한 맹세다. 이 맹세를 간절히 믿고 싶은 이들이 있다. 바로 현대해상으로부터 보험금 지급을 거절받은 발달지연아동 실손보험 계약자들이 모인 ‘발달지연아동 권리보호 가족연대’ 회원들이다. 

이곳 대표자인 송수림씨는 지난달 25일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현대해상의 발달지연아동 실손보험금 지급 거절 사태를 고발했다. 현대해상이 국가자격 외 민간치료사를 통한 발달지연아동 치료행위를 ‘무자격 치료행위’로 간주해 보험금 지급을 거절한 것이 사태의 골자다.

송씨의 호소를 계기로 정무위원회 종합감사에 이성재 현대해상 대표가 증인으로 채택돼 소환될 예정이었다. 이때만 하더라도 송씨를 비롯한 발달지연아동 권리보호 가족연대 회원들은 이 대표를 증인으로 신청한 강훈식 의원이 종합감사를 통해 발달지연아동 양육자들을 위한 목소리를 내줄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이들의 기대는 종합감사 하루 전날 무너졌다. 당시 강 의원은 이 대표와 좌담회를 갖고 민간치료사의 국가자격화 제도개선 시까지 보험금을 우선 지급하기로 합의했다는 자료를 냈다. 동시에 이를 근거로 이 대표의 증인 채택을 철회시켰다. 

이제 해결되나 싶었다. 아마 언론을 통해 소식을 접한 다수 국민들은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이번 사태를 직접 취재한 기자도 그렇게 믿었다. 발달지연아동 권리보호 가족연대는 "강훈식 의원-현대해상 좌담회를 자세히 살펴보면 말장난일 뿐,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실효성이 없다"고 비판했으나, 설마 했다. 국회의원이 보증한 약속인데 지켜질 것으로 믿었다. 

믿음은 곧 산산조각이 났다. 비판은 현실이 됐다. 

좌담회 이후, 현대해상은 발달지연아동 치료비에 대한 실손보험금을 청구한 보험계약자들에게 민간치료사의 자격증 정보(이름‧종목‧자격번호)를 요구하며 보험금 지급을 대부분 거절한 것으로 확인됐다. 계약자들에 따르면 현대해상이 계약자들에게 민간치료사의 자격증 정보를 요구한 것은 지난 5월 민간치료사가 행한 치료에 대한 실손보험금 지급을 거절한 시점부터 시작됐다. 민간치료사 자격증 정보 요구가 사실상 보험금 지급 거절의 ‘치트키(cheat key)’처럼 활용됐다는 게 계약자들의 지적이다.

민간치료사의 자격증 정보는 치료사의 개인정보로, 의료법상 공개할 의무가 없다. 금융감독원 보험감독국은 지난 7월 '계약자에게 치료사의 자격증 정보 등 입증토록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유권해석을 내놓았다. 이와 관련 현대해상은 '향후 발달지연 관련 실손보험금 청구시 치료행위자 면허증의 제출을 계약자 측에 요구하지 않겠다'고 금감원에 밝혔으나, 실제로는 지켜지지 않았다. 

금감원과의 약속, 강 의원과의 좌담회 합의 이후 현대해상은 변한 게 없다.
결국 사태는 해결되지 않았다. 

도대체 좌담회의 실체는 무엇이었는지 묻고 싶다. 정말 실효성 없는 말장난에 불과했나. '국감에서 대표 빼내기'에 성공한 현대해상과 이에 협조한 국회의원에게 국민이 농락당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강 의원실은 민간치료사 자격증 정보가 논란이 되자 “(현대해상과) 보험금 우선지급에 대해서만 약속했고, 자격증 정보 등에 대해선 의원실과 합의한 바 없다”면서 “(민간치료사 자격증 정보) 요구 자체는 합의 사항을 깼다고 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또 “우리가 (민간치료사 자격증 정보 요구를) 금지하는 건 월권”이라고 했다.

그럴 수 있다. 사태의 면면을 속속들이 몰랐을 수 있다. 그래서 합의 사항에 올리지 않은, 민간치료사 자격증 정보 요구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을 수 있다. 그러나 민간치료사 자격증 정보 요구가 '보험금 우선지급'이란 합의를 원천적으로 깨고 있다면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강 의원은 합의를 이끈 주체로서 적극적인 중재에 나서야 한다. 이건 월권이 아니다. 국회의원의 직무를 양심에 따라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선서한 자의 책무다. 


신수정 기자 newcrystal@smartfn.co.kr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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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윤석
    손윤석 2023-11-25 23:58:06
    강의원님. 저희가 의원님믿었다가 발등이 찍힌건가요..? 명쾌한해결을 바랍니다. 대기업에 밀린 힘없는 발달지연아동들의 엄마들을 이렇게 져버리실건가요
  • 남태리
    남태리 2023-11-20 23:09:28
    빼낸다, 놀아났다는 표현보다는요, 말장난도 아니었을테고, 서로가 당연히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만난게 맞을거예요. 사람의 건강과 맞닿는 일이니까요. 어쨌든 대변자가 나섰고, 이해와 의견이 맞아 합의가 되고 결론이 나왔을텐데, 서로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중재가 필요해보이는것 같아요:)
  • 박미선
    박미선 2023-11-20 20:19:03
    하루하루 아이들의 골든타임이 지나가고있습니다
    우리아이들이 대한민국의 미래입니다
    발달지연 아이들이 정상발달로 올라설수있도록 도와주세요
    코로나베이비들의 어려움을 국가가 외면하지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블링블링♡
    블링블링♡ 2023-11-20 19:30:24
    아이들의 권리를 뺏지 말아주세요 이 아이들도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이 아이들도 미래를 꿈꿀수 있습니다 아이들을 상대로 장난질하는 현대해상과 정부는 반성해야합니다
  • 김지혜
    김지혜 2023-11-20 18:47:36
    발달 지연 아동의 치료권리를 빼앗는 현대해상,
    과연 어린이보험 점유율 1위인게 의미가 있을까요?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가입한 보험인데,
    발달지연에 관련된 치료만 꾸준히 하면 좋아지는데,
    왜? 아이들의 치료를 막는거죠??
    그게 어린이 보험을 대표하는 보험사의 자랑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