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항공사 설립을 두고 제주사회에서 미묘한 신경전이 펼쳐지고 있던 2004년 6월29일 오전 대한항공은 "국내선 항공요금 인상으로 갈등을 빚었던 제주도민에 한해 2004년 7월16일부터 국내선 항공요금을 10% 할인해주겠다"는 발표가 나왔다. 대한항공의 이 같은 당근책이 나오자마자 제주시민단체협의회는 "대한항공은 제주도민을 두 번 우롱하지 말라"는 규탄성명을 득달같이 냈다. 협의회는 "제주도민 항공료 10% 할인정책은 이미 아시아나항공이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서 전혀 새로운 내용이 아니며, 대한항공이 언급했던 요금인상 재검토 약속을 뒤집는 제주도민 기만행위"라면서 "대한항공의 요금인상 재검토는 립서비스에 지나지 않았음이 확인돼 제주도민만 우롱당했다"고 주장했다.
협의회는 이와 관련, 제주도와 제주도의회에 지역항공사 설립을 촉구했다. 협의회는 "노선 자체가 축소될 수 있다고 제주도민을 협박하고 제주도지사를 면전에서 우롱한 대한항공에게 더이상 기댈 것이 없다"면서 "그동안 제주도민들은 정부와 항공사를 상대로 끊임없이 요금인상을 자제해달라고 호소밖에 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협의회는 이어 "대한항공이 항공료를 갖고 제주도민을 두 번 죽이는 동안 지역항공사 설립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면서 "항공요금 인상에 대해 항구적인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주체적으로 지역항공사 설립을 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협의회는 “김태환 도지사의 지역항공사 설립 공약 이행을 거듭 촉구한다"고 밝혔다.
아시아나항공에 이은 대한항공의 제주도민 국내선 항공요금 할인 발표는 결과적으로 악재가 되고 말았다. 2004년 6월29일 오전의 대한항공 발표에 여론이 급격하게 나빠진 가운데 오후에 열린 제주도의회 행정자치위원회 상임위에서 지역항공사 설립자본금 50억원 출자 건이 조건부 승인됐다. 제주도의회 행자위는 이날 ‘지역항공사 설립을 위한 자본금 중 제주도의 출자총액은 증자를 포함, 50억원으로 제한한다’는 부대조건을 걸어 가결했다. 행자위는 또 ‘요금책정과 노선의 증설, 폐쇄, 감축 등으로 제주도민의 불편 및 지역발전에 지장을 초래하는 사항에 대해서는 주식회사 설립시 협약사항에 포함시킨다’는 내용을 조건으로 함께 달았다.
제주지역항공사 설립 추진은 2001년 2월 국내에서는 가장 빠른 시기에 시작됐지만 제주도의회의 ‘채산성과 안전성’ 문턱을 넘는데 꽤 오랜 시간을 허비하고 말았다. 그리고 2004년 6월29일 마침내 자본금 50억원을 확보함으로써 지역항공사 설립을 위한 단초를 마련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날 제주도의회가 원안대로 가결하면서 내걸은 부대조건은 두고두고 제주도와 제주항공의 갈등을 낳고 사사건건 발목을 잡으리라는 것을 당시에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한 예로, 제주항공은 취항이후 3년여 동안 제자리를 찾는 과정에서 엄청난 경영적자를 감수해야 했다. 그때마다 증자를 통해 회사를 유지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제주도의회가 내걸었던 부대조건 항목 때문에 제주항공의 간곡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제주도는 번번히 증자에 참여하지 못했다.
이는 제주도가 민관합작으로 설립한 제주항공으로부터 신뢰를 잃게 되는 중요한 이유가 됐다. 어려울 때 단 한번도 증자에 참여하지 않은 제주도에게 섭섭함과 함께 주요 비난사유가 되어버렸다. 또한 제주항공의 2대주주로서 제 역할을 다하지 않은 제주도 입장에서는 약 10년 후 제주항공이 성공가도를 달리면서 대주주에서 소액주주로 전락하리라는 것을 짐작하지 못했다. 제주항공의 계속된 증자이후 제주도 지분은 최초 25%에서 10% 미만으로 떨어지면서 2대주주에서 밀려나 소액주주가 되었다. 그리고 제주항공이 상장(上場)을 한 이후에는 주주가치가 10배이상 뛰자 제주도의회에서 도리어 “그간 제주항공 증자에 왜 참여하지 않았느냐”는 비판이 나오자 제주도가 어이없어 하기도 했다.
2004년 6월29일 제주도의회의 지역항공사 설립자본금 50억원 출자 승인으로 제주지역항공사는 본격 추진되었다. 적지 않은 논란과 우여곡절 끝에 ‘본격추진’으로 정리가 된 지역항공사 설립은 2004년 말까지 마무리하고 2006년 상반기에 취항한다는 새로운 로드맵이 설정됐다.
제주도와 기존항공사 간의 숨바꼭질 같은 항공운임 인상과 할인은 하나의 게임처럼 작동해 왔다. 기존항공사들은 제주기점을 중심으로 국내선 항공운임을 연거푸 큰 폭으로 인상하면서 제주도민들의 격한 반발에도 전혀 개의치 않고 강행했다. 하지만 제주도에서 아예 자신들이 항공사를 차리겠다고 나서면 굳이 지역항공사를 만들 필요가 없도록 제주노선 운임에 대한 특별할인 조치를 내놓으며 달랬다. 그러다가 지역항공사 설립이 지지부진하거나 내부반발로 차질이 빚어지는 것을 목격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운임을 올렸다. 이 같은 반복된 인상과 할인은 마치 ‘여론 떠보기용’으로 비쳐졌다.
2004년 7월이후 제주지역항공사 설립에 속도가 붙자 이번에는 아시아나항공에서 제주도민에 대한 항공료 할인혜택을 대폭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제주도민 할인혜택은 아시아나항공에서 2003년 10월26일 처음으로 10% 할인율을 적용했고, 이어 대한항공에서 2004년 7월16일부터 아시아나항공과 동일하게 10% 할인을 시행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시아나항공이 2004년 9월1일부터 김포∼제주, 부산∼제주 노선의 일부 시간대에 한해 시행하고 있는 제주도민 20% 특별할인운임제를 제주기점 전 노선으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제주도를 달래기에는 이미 늦은 듯했다. 제주도는 2004년 9월18일 지역항공사 설립을 위한 사업파트너를 모집한다고 공고했다. 최초 51억원 이상의 출자와 경영참여가 가능한 해외 및 개인을 제외한 모든 법인 및 기관(컨소시엄 가능)을 대상으로 사업제안을 받았다. 항공사 운영은 사업파트너가 자율경영하고, 제주도는 행정지원을 하는 방식이었다. 사업제안서는 2004년 10월30일까지 제주도 지역항공사설립추진행정지원단에서 받았다.
사업파트너 공모에는 최종 2개 업체가 응모했다. 제주도는 사업파트너 선정에서 탈락할 경우 관련 기업의 이미지가 훼손될 우려가 있다는 등의 이유로 응모기업의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 사업제안서를 제출한 2개 업체는 그룹내 5개 계열사로 컨소시엄을 구성해 참여한 ㅇ그룹과 2004년 7월 설립된 ㅅ기업 등이었다.
하지만 사업설명회에 참석한 상당수 기업이 관심을 보였던 것과는 달리 달랑 2개 업체만 제안서를 제출해 제주도는 대기업들의 투자 외면에 당황해 했다. 제주도는 사업참여를 희망했던 삼성과 LG 등 대기업은 출자총액제한 등의 규제와 함께 영역 침범에 대한 기존항공사 견제 등 사업확장에 따른 그룹 이미지가 나빠질 것을 우려해 포기한 것으로 나름대로의 분석을 내놓았다.
제주도는 2004년 11월10일 항공, 경영, 회계, 법률 전문가 등 10여명으로 심사위원회를 구성해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한 뒤 개별협상을 통해 11월말 사업파트너를 최종 선정하겠다고 공지했다. 제주도는 우선협상대상업체에게 △항공요금 및 운항노선 변경시 제주도와 사전협의 의무화 △제주도 내에 주사무소 설치 △제주도 출자지분율 12.5%를 2배 정도 상향조정 △사업 안정화 시기에 도민주 액면가 증자 등 기업 입장에서는 자율경영을 침해하는 수준의 상당히 불합리한 족쇄들을 요구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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