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진의 재미있는 K-LCC 이야기] (44) 제주항공 취항사 3

제주도의 지역항공사 설립 추진에 속도가 붙자 끝없이 오르기만 했던 국내선 항공운임은 더 이상 오르지 않았고 심지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에서 경쟁적으로 제주도민에 한해 항공운임 할인을 발표했다. 이로 말미암아 제주도의회에서는 지역항공사 설립 우려를 표명하는 등 제주도와 제주도의회 사이에 힘 겨루기가 벌어졌다. 우근민 제주도지사의 간곡한 당부에도 불구하고 2003년 12월4일 열린 제주도의회는 2004년도 예산안 계수조정에서 제주도가 심의 요청한 지역항공사 설립출자금 50억원을 전액 삭감했다.

제주도의회의 반대로 지역항공사 설립에 제동이 걸리자 제주시민단체협의회가 나섰다. 제주경실련 등 5개 단체로 구성된 협의회는 2003년 12월9일 "제주도의회가 이렇다 할 명분도 없이 지역항공사 설립에 발목을 잡고 있다"며 "제주지역항공사 설립출자금 50억원에 대한 승인은 정례회기 내에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제주도로부터 지역항공사 설립을 위한 경영컨설팅 용역을 맡은 한국능률협회컨설팅은 2004년 1월30일 최종보고서를 제출했다. 보고서에서는 제주지역항공사 설립 초창기에는 인지도 부족으로 충분한 탑승률을 확보하지 못해 운항 1∼2차년도에는 65∼67% 탑승률에 그쳐 적자운영이 예상되지만 운항 3차년도부터는 항공기와 노선을 늘릴 경우 당기순이익을 낼 수 있다고 전망했다. 또한 민관합작으로 자본금 400억원 규모의 지역항공사를 설립, 80인승 이하 터보프롭 항공기 5대를 도입해 제주를 기점으로 서울, 부산, 대구 노선 등에 부정기 항공운송사업을 벌일 경우 사업성이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또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운항 3차년도에 항공기 3대를 추가확보해 운항노선을 광주와 청주로 확대하고, 장기적으로 전국 및 인접국가까지 노선을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회사설립 방안은 1단계로 제주도 50억원, 민자 51억원(도민공모 26억원, 국내기업 25억원) 등 101억원으로 설립하고, 2단계로 국내외 민간자본 300억원을 유치해 400억원으로 증자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항공기를 구입할 경우 400억원이 소요돼 리스시 280억원보다 초기 자금부담은 높으나 연간 금융비용을 감안하면 유리하다고 분석했다.

한국능률협회컨설팅 최종보고를 받은 제주도는 지역항공사설립추진자문위원회를 열고 시행계획안을 마련했다. 2004년 상반기에 제주도 출자금 확보와 회사 설립 파트너 선정을 마치고, 8∼9월에 발기인 구성과 주식공모 및 창립총회 등 회사설립 절차를 거친 뒤 10월에 지역항공사 설립등기를 한다는 계획이었다. 이어 2004년 말까지 자본금을 증자하고 2005년 중에 관련시설을 확보해 항공운송사업 등록을 마치고 시범운항을 개시한다는 일정이었다.

이 같은 제주도의 지역항공사 설립 추진은 2001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국내선 운임 두자릿수 인상에서 촉발됐다. 제주도민들의 거센 반발여론을 등에 업고 제주도가 제주지역항공사 설립을 향해 구체적인 일정에 돌입하자 기존항공사는 더 이상 운임 인상카드를 들이밀지 못하고 오히려 제주도민에 대한 할인경쟁이라는 차별적인 당근책을 썼다.

하지만 제주도의회의 반대에 제동이 걸리면서 제주도의 지역항공사 설립 추진은 공전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제주지역항공사 설립 추진의 선장 격이었던 우근민 제주도지사에게 문제가 생겼다.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열린 TV토론회에서 했던 발언이 문제가 되어 허위사실공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불구속 기소됐고, 2004년 4월 대법원에서 300만원의 벌금형(당선무효형)을 선고받아 도지사직을 상실했다.

제주도지사의 유고(有故) 상태가 되자 2004년 5월27일 대한항공은 여름철 성수기를 앞두고 유가급등에 따른 운송원가 상승을 이유로 7월16일부터 국내선 항공료를 성수기에는 13%, 주말에는 8%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2004년 7월16일부터 주말(금∼일요일)에는 제주~김포 노선은 7만8400원에서 8만4400원으로, 제주~부산 노선은 6만500원에서 6만5400원으로 올랐다. 여름휴가철과 명절, 연휴 등 성수기에는 제주~김포 노선은 8만2400원에서 9만2900원으로, 제주~부산 노선은 6만3400원에서 7만1900원으로 각각 인상됐다.

대한항공의 기습 인상 발표에 대혼란에 빠진 제주도는 운임인상을 재고하거나 인상시기를 재검토해 줄 것을 대한항공과 건설교통부에 요청했다. 제주지역항공사 설립도 차질을 빚었다. 2003년 12월 제주도의회에서 전액 삭감한 지역항공사 출자금 50억원을 예산에 재반영하기 위해 제주도는 2004년 1차 추경예산안에 이를 반영, 제주도의회에 제출할 계획이었으나 갑작스런 도지사의 궐위(闕位)로 인해 추경예산 편성은 엄두를 못 냈고 새 지사가 부임하기만을 기다렸다. 이 때문에 2005년 운항계획은 물론 지역항공사 설립계획 자체가 사실상 중단됐다.

대한항공의 국내선 항공료 인상이 임박하자 제주도민들의 항공요금 인상 철회투쟁이 재연됐다. 하지만 제주도민들의 이 같은 항공요금 인상 철회투쟁은 이미 2001년에도 제주도민궐기대회를 비롯해 16만8000여명이 서명한 요금인상 철회요구서를 청와대, 중앙부처, 정당, 두 항공사에 전달했으나 아무런 소득을 거두지 못했던 전례가 있어 실효성에 의문이 들 뿐이었다. 제주사회의 반발에 대해 대한항공은 유가인상 등을 이유로 항공료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건설교통부 역시 요금억제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2004년 6월6일 제34대 제주도지사에 취임한 김태환 지사는 취임식을 마치자마자 제주도의 시장.군수, 제주도의회 의원 등 34명으로 꾸려진 매머드급 방문단과 함께 6월7일 상경, 건설교통부와 대한항공을 방문해 항공료 인상방침 철회를 요구했다. 김태환 신임 제주도지사 등과 면담한 건설교통부장관은 “항공요금을 신고제나 인가제로 환원하더라도 정부가 개입하기 어렵고, 오히려 요금인상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며 “제도개선 사항 등은 재경부, 기획예산처 등과 협의할 사안이어서 성의를 갖고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제주도가 요청하는 국내선 항공요금 인상방침 재고와 항공요금 신고제 전환 등의 법 개정이 어렵다는 정부입장을 에둘러 표현하는 차원이었다.

이에 앞서 제주방문단은 대한항공을 찾아 “침체된 제주지역 경제를 감안해 공익적 차원에서 항공요금 인상방침을 철회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대한항공은 “유가상승으로 인해 국내선 적자가 너무 많이 발생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인상할 수밖에 없다”며 인상 철회의 뜻이 없음을 밝혔다.

신임 제주도지사 등 34명이 건교부와 대한항공에 항의성 집단방문을 했음에도 아무런 소득을 얻지 못하자 제주도는 지역항공사 설립을 다시 서두르기로 했다. 특히 대한항공의 항공요금 인상에 반발하며 지역항공을 조속히 설립해야 한다는 제주도내의 목소리가 커져 제주도의회의 출자금 삭감으로 주춤했던 지역항공사 설립에 탄력을 받았다. YMCA, YWCA, 흥사단, 경실련 등 제주도내 5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제주시민단체협의회는 2004년 6월7일 성명을 내고 "제주도의회는 지역항공사 설립 출자금을 승인하라"고 압박했다.

더욱이 아시아나항공마저 대한항공이 국내선 요금을 올린 지 정확히 한달 만인 2004년 8월16일부터 국내선 주말(금∼일)운임을 평균 8.5%, 성수기운임을 평균 12.6% 각각 인상했다.

<글 / 양성진 ‘세상을 바꾼 K-LCC’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