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항공은 운항중단 58일만인 2006년 2월15일 운항을 재개했다. 한성항공은 운항재개 사은행사로 2006년 2월15일부터 2월말까지 청주~제주 노선에서 특별 할인행사를 실시했다. 이 노선의 편도운임을 2월15일 첫날에는 1만원, 2월16일 1만5000원, 2월17일 2만원, 2월18∼21일 2만5000원, 2월22∼23일 3만원, 2월24∼28일 3만5000원을 받았다. 그리고 3월1일부터는 청주~제주 노선 편도운임을 종전대로 주중 4만5000원, 주말 5만2000원을 적용했다.
일회성 할인 이벤트이기는 했지만 제주 항공권 1만원 시대를 처음 연 것이었다. 한성항공은 운항재개 할인행사가 끝나고 3월 제주관광 성수기가 찾아와 정상적인 항공권 가격을 기대했지만 기존항공사의 견제가 다시 시작되면서 오히려 할인전쟁을 벌여야 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한성항공의 운항재개에 맞춰 국내선 요금을 최고 30%까지 인하했고, 이에 한성항공이 다시 60%나 요금을 내리는 등 가격경쟁에 불이 붙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청주~제주 노선에서 4만5080원까지 운임을 내려 받자, 한성항공은 2006년 3월9일부터 3월말까지 이 노선의 운임을 2만9900원으로 내렸다.
운항을 재개한 한성항공은 2006년 4월15일 해임된 한 대표가 제기한 이사진 불법 등기 무효소송이 법원에서 패소로 확정됐다. 2005년 12월2일 이사회에서 한우봉 대표가 해임되고 이승훈 이사가 새 대표이사로 선출됐지만, 한 대표 측의 무효소송으로 새로운 대표이사가 취임을 못하고 있었던 사태가 4개월여 지나 해소된 것이다. 이에 따라 한성항공은 2006년 4월19일 청주지방등기소에 허근 대표를 비롯한 경영진의 등기를 완료했다. 한성항공의 대표이사는 1대 한우봉 사장에서 비록 등기는 못했지만 2005년 12월 이승훈 이사가 2대 대표로 선임되었고, 2006년 4월에는 3대 대표로 허근 사장이 임명되는 등 불과 2년도 안된 기간 동안 3명의 대표가 선임되는 극심한 경영권 갈등을 겼었다.
전·현직 경영진 간의 갈등으로 파행 운영되었던 한성항공은 법원 결정으로 비로소 안정을 찾게 되었다. 한성항공은 2006년 9월6일 임원인사를 통해 허근 대표가 회장으로 승진하며, 신임 이지성 사장과 함께 공동대표이사 체제로 경영정상화를 이루었다.
한성항공은 2번째 국내선인 김포~제주 노선의 10월 취항을 앞둔 2006년 9월15일 새로운 CI(기업이미지 통합)를 선포했다. 2005년 2월 선보였던 한성항공의 최초 슬로건 '한국 지역항공사의 ★이 되겠습니다'에서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젊은 항공사'로 바뀌었다. 2006년 9월29일에는 청주공항에서 제2창업 선포식을 갖고 새로운 비전과 새로운 CI, 객실승무원과 운송직원의 새 유니폼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런데 한성항공에게는 어쩌면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사자성어가 참 잘 어울렸다. 제2창업을 선포한 직후, 2006년 10월2일의 역사적인 2번째 신규노선 취항이 틀어졌다. 청주공항을 벗어나 드디어 김포공항이라는 중앙무대로 데뷔하는 한성항공 최대행사가 하필 차질을 빚은 것이다. 한성항공은 추석맞이 첫 취항예정이던 2006년 10월2일의 김포~제주 간 신규취항을 10월5일로 3일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이 같은 사실을 밝힌 날짜는 취항당일인 10월2일이었다.
한성항공은 2006년 9월30일 도착예정이던 2호기 도입이 지연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성항공 2호기는 영국에서 출발해 청주공항에 9월30일 도착예정이었으나, 중간기착지인 인도 첸나이공항으로 향하던 중 항공기제작사와 인도항공청의 커뮤니케이션 착오로 이·착륙 허가가 나지 않아 기수를 돌려 오만의 루스카트공항에 대기하며 인도의 착륙 허가를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갑작스런 취항 지연 소식에, “한성항공이 취항 첫날부터 항공기 운항을 제대로 못하는 등 삐걱거리고 있다”, “비행기가 배달이 안돼 운항을 취소했다”는 등 비아냥거리는 여론이 비등했다. 2호기 도입이 차질을 빚음에 따라 당초 10월2일 김포∼제주 노선 예약승객이 큰 불편을 겪었다. 한성항공은 10월2일 청주∼제주 간 항공편을 1편 증편하고, 이른 귀향길에 나섰던 김포공항 예약승객 100여명 중 일부를 대체편이 있는 청주공항으로 이동시켜 제주로 출발시키는 한편, 타 항공사의 전세기를 이날 오후 9시 김포∼제주 노선에 투입했지만 고객들의 항의가 거셌다. 게다가 이 같은 혼란은 10월3일과 4일에도 계속됐다.
이 같은 우여곡절을 겪고 나서야 한성항공의 김포∼제주 노선은 2006년 10월5일 취항했다. 이 노선은 하루 4회 왕복 운항했다. 2006년 10월4일 도입된 한성항공 2호기는 ATR-72 동일기종이며, 좌석수는 1호기에 비해 4석 많은 70석 규모였다. 또한 2호기는 한성항공 CI를 비롯한 어떤 디자인도 하지 않았다. 한성항공은 “항공기를 이용하는 고객들이 동체 외벽에 직접 사인할 수 있도록 해 고객의 사인으로 디자인된 세계 최초의 항공기를 만든다는 다소 파격적인 계획”이라고 설명했지만, 업계에서는 항공기 동체 페인팅 비용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니었는지 의심했다.
2006년 11월28일 한성항공에게 호사다마(好事多魔) 제2탄이 터졌다. 그리고 이는 한성항공이 좌초하는 중요한 발단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이 사건은 2005년 10월28일 타이어 펑크와 너무 흡사했다. 먼저, 앞사건이 2005년 10월28일, 뒷사건은 정확히 1년 1개월 후 날짜도 똑같은 2006년 11월28일 일어났다. 장소는 두 사건 모두 제주공항으로 같았다. 그리고 두 사건 모두 타이어 펑크였다. 다만 앞사건이 타이어 2개가 동시에 터졌다면, 이번에는 타이어 2개가 동시에 떨어져 나갔다. 그 바람에 항공기 동체가 활주로에 닿은 채로 미끄러졌다.
‘28일의 제주공항 타이어 2개’ 사건의 개요는 다음과 같았다. 2006년 11월28일 오후 4시15분께 한성항공 205편이 제주공항 활주로에 착륙하는 순간 앞바퀴 다리(nose landing gear)가 파손되면서 앞바퀴의 타이어 2개가 떨어져 나갔다. 바퀴가 모두 없어진 항공기는 활주로 바닥에 세 번 튕기고 나서 동체 일부가 바닥에 닿은 채로 활주로를 따라 300여m를 미끄러진 뒤 기수부분이 오른쪽으로 돌아가면서 멈췄으며, 동체 앞부분에서 하얀 연기가 났으나 다행히 화재로 이어지지는 않아 대형참사를 모면했다. 이 사고로 승객과 객실승무원 등 6명이 긴급출동한 119에 의해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부상정도는 경미했다. 사고 항공기에 탑승한 승객들은 "항공기가 활주로에 착지하자마자 ‘쿵’ 하는 소리가 세 번 나고 계속 미끄러지다가 멈췄다"며 "기장석 쪽에서 연기가 났고 승객들은 열린 앞문으로 뛰어내려 탈출했다"고 말했다.
한성항공은 "착륙하는 시점에 갑자기 돌풍이 불어 승객안전을 위해 앞바퀴부터 착륙하는 하드랜딩을 시도해 앞바퀴에 무리가 가서 파손된 것 같다"고 말했다. 한성항공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제주공항 기상대는 "오늘 하루 윈드시어(wind shear) 등 돌풍현상은 전혀 관측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고 직후 여론은 다시 K-LCC 전반의 안전문제로 비화됐다. 2005년 10월 사건과 연결지어 터보프롭 항공기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로 확대됐다. 한성항공은 싱가포르에서 ATR사의 정비팀이 입국해 사고가 발생한 항공기에 대한 긴급정비에 들어갔고 정비 종료까지 15일 정도가 소요돼 이 기간동안 김포~제주 노선 운항편수를 1일 왕복 1편으로 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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