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공방으로 번진 한성항공 내분은 결국 사고로 귀결되고 말았다. 2005년 10월28일 승객 64명을 태운 한성항공 303편 청주발 항공기가 제주공항에 착륙한 뒤 뒤쪽 왼쪽 타이어 2개가 한꺼번에 펑크가 났다. 한성항공은 "항공기가 착륙한 뒤 계류장으로 이동하던 중 펑크가 났으나 승객 피해는 없다"고 발표했다. 사실, 항공기의 타이어는 여러가지 이유로 펑크가 날 수 있다. 그리고 항공사고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자 사고 분류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인명피해는 없었다. 때문에 사고가 아닌 소동이라고도 볼 수 있는 사안이었다. 그런데 한성항공에게는 그게 아니었다. 재난 수준의 엄청난 대형사건으로 비화되었다.
기존항공사는 타이어에 펑크가 나면 각 공항마다 준비된 예비타이어로 재빨리 교체하거나 그게 여의치 않으면 다른 항공기로 교체한다. 그로 인해 승객들은 큰 불편을 느끼지 못하고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이었다. 그런데 당시 한성항공은 항공기가 1대였다. 교체할 수 있는 항공기가 없었다. 부득불 타이어를 교체하고 정상화시켜야만 운항이 가능한 형편이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한성항공은 제주공항에 예비타이어가 없었다. 설사 예비타이어가 있었다 하더라도 타이어를 교체하는데 필수적인 각종 장비조차 제주공항에는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이 비행기로 다시 청주로 갈 예정이던 연결편 304편이 결항돼 예약승객들이 제주공항에 발이 묶였다.
초유의 사태를 재빨리 수습하는 지혜가 필요했던 한성항공은 계속 난제에 빠졌다. 하필 타이어 2개가 한꺼번에 펑크가 나는 바람에 2개의 예비타이어가 필요했지만, 아쉽게도 한성항공이 청주공항 본사에 보유한 예비타이어는 1개뿐이었다. 게다가 한성항공의 비행기는 우리나라에서 딱 1대만 운항 중인 기종이어서 다른 항공사로부터 타이어를 빌려 쓸 수도 없는 처지였다. 한성항공은 항공기 제작사인 ATR사의 아시아지역 정비공장이 있는 싱가포르에서 타이어를 긴급공수해 수리해야 했고, 이 바람에 결항사태는 약 48시간 후인 10월30일 오후에나 운항이 재개될 것으로 전망됐다.
그리고 온나라가 난리가 났다. 그간 한성항공이 보여준 혁신과 신규수요 창출, 지방공항 활성화, 항공대중화 등에 대한 긍정적 여론은 한순간에 사라지고 싸늘한 시선으로 가득 찼다. 또한 한성항공이라는 회사 이름보다는 ‘저가항공사’라는 부정적인 대명사가 순식간에 회자됐다. 한성항공의 타이어가 펑크 난 게 아니라 저가항공사가 펑크 난 것으로 변이되었다.
당시 아래와 같은 문장이 온나라를 뒤덮었다.
-. 한성항공 위기일발 ‘펑크’
-. 저가항공 ‘펑크 난 안전’
-. ‘타이어 펑크’ 아찔…저가항공 안전주의보!
-. 저가항공 ‘싼게 비지떡’인가
-. 저가항공사의 ‘안전불감증’이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 펑크난 저가항공기…위협받는 승객안전
신생항공사인 한성항공의 타이어 펑크가 K-LCC 전체를 비하하는 데 활용되고, 절대 타면 안되는 위험한 교통수단으로 각인되었다. 운임은 다소 비싸더라도 역시 기존항공사를 그대로 이용하는 게 안전하다는 논리가 힘을 받았다. 우리나라에서 저가항공사라는 용어가 ‘위험한 항공사’라는 의미를 담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후발 K-LCC들이 한사코 저가항공사라는 용어를 기피하게 된 단초가 되었다. 역설적으로 기존항공사들이 K-LCC를 싸잡아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뒤집어 씌우는 용어로 저가항공사가 활용되는 계기이기도 했다. 아무튼 이날 이후로 우리나라에서 저가항공사는 비방형 지시대명사가 되었다.
한성항공의 타이어 펑크 다음날부터 우리나라 언론에서 다룬 기사는 이랬다.
-. 저가항공사에 대한 안전성 문제가 논란이 될 전망이다.
-. 저가항공의 안전관리에 대한 우려가 나왔다.
-. 저가항공사의 경우 비용을 최소화해 가격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정비에 필요한 부품도 최소한으로 갖추려는 경향이 있다.
-. 안전에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냈다.
-.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아찔한 순간이었다. 만약 착륙도중 사고가 났다면 대형사고로 비화될 뻔했다.
-. 안전이 중요한 만큼 정부가 무분별하게 저가항공사를 허가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 저가항공사에 대한 안전기준이 대폭 강화돼야 한다.
-. 저가항공사들이 가격경쟁에만 몰두한 나머지 안전은 소홀하지 않은 지 각별히 살펴야 할 것이다.
싸늘하게 돌아선 K-LCC에 대한 여론은 “2005년 8월31일 뜨거운 관심속에 출범한 한성항공이 취항 두 달도 안돼 안전에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냈다”는 것으로 요약되었다. 제주공항에 발이 묶인 한성항공은 다음날도 전편 결항사태가 이어졌고, 다급해진 한성항공은 10월29일 오후 싱가포르에서 타이어 1개를 들여오는데 성공했다. 단 하루 만에 공수한 것이었다. 그리고 10월30일 오전 제주공항으로 긴급 이송하려 했다. 그러나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모두 한성항공의 타이어 1개를 제주공항으로 운송하는 데 협조를 거부했다. 때문에 한성항공은 10월30일 오후 4시40분이 되어서야 운항을 재개할 수 있었다.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한성항공에게 대한항공은 타이어 내의 질소가 위험물질이기 때문에 통관허가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아시아나항공은 한성항공 타이어가 너무 커 검색대를 통과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두 항공사 모두 한성항공을 돕고 싶지 않았다.
객관적으로, 한성항공의 타이어 펑크가 ‘아찔한 사고’는 아니었다. 한성항공은 “착륙을 마친 항공기가 승강장으로 이동하면서 발생한 돌발사고로, 심각한 문제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건설교통부 항공안전본부도 처음에는 “착륙과정 마찰로 인한 사고로 종종 발생하는 일”이라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불길처럼 번진 K-LCC에 대한 안전기준이 대폭 강화돼야 한다는 여론에 정부조차 당황했다. 결국 서울지방항공청 청주공항출장소는 한성항공의 항공기 바퀴 고장에 대해 10월31일부터 본격 조사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청주공항출장소는 "현재까지는 브레이크 과열로 질소를 주입하는 부분이 녹아내리면서 타이어의 바람이 빠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지만 정확한 원인은 정밀검사를 통해 정비과실 등도 확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와중에 추가악재가 나왔다. 경영권 분쟁과정에서 법정공방으로 번진 내분 상황에서 최근 퇴직한 한성항공 전 부사장이 "비행기 도입 당시부터 타이어 마모가 심해 정비사들이 여러 차례 교체를 요구했고 잦은 결함도 보고했지만 회사측이 무시했다"고 폭로했다. 그는 “정식 취항 전 주주들을 대상으로 시승식을 가졌을 때 타이어가 너무 닳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많아 정비사들이 여러 번 교체를 요구하는 기안을 올렸지만 묵살됐다”고 주장했다.
한성항공은 이 같은 내분과 이에 따른 경영난에 이어 타이어 펑크 이후 악화된 국민감정으로 승객이 급속하게 줄었다. 한성항공은 그동안 청주~제주 노선을 하루 2회 왕복운항했으나 2005년 12월7일과 12월8일 이틀간 탑승객 부족으로 제주발 오전편과 청주발 오후편 항공기 운항을 취소했다. 2005년 8월31일 취항이후 평균탑승률이 80%대를 웃돌았으나 타이어 펑크 이후 승객이 급감하여 편당 예약승객이 10명을 밑돌면서 운항취소 항공편이 발생한 것이다. 결국 한성항공은 정부에 2005년 12월19일부터 2006년 1월31일까지 운항중단을 신청했다. 이후 한성항공은 준비부족을 이유로 2월14일까지 추가로 운항중단 연장 신청을 했다.
한성항공이 운항을 중단하자 기존항공사들은 슬그머니 항공료 할인폭을 조정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2006년 1월 들어 청주~제주 노선의 할인폭을 2005년 12월까지 유지했던 25∼30%보다 크게 낮아진 15%를 적용했다. 한성항공의 운항중단으로 인해 해당노선에 대한 할인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댓글
(0) 로그아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