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차라리 KT 차기 대표를 콕 찍어주세요"

황성완 기자 2023-03-23 16:47:47
[스마트에프엔=황성완 기자] KT 차기 CEO(최고경영자) 선임을 둘러싼 내홍이 점입가경이다. 오는 31일 열리는 KT 주주총회(주총)에서 차기 대표로 선임 예정이던 윤경림 KT트랜스포메이션 부문장(사장)이 돌연 사의를 표명했기 때문이다. KT대표이사후보심사위원회(이사회)는 앞서 윤 부문장을 차기 CEO 최종 후보로 선출하고 주총을 통해 공식 선임절차를 밟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정부와 정치권은 물론 KT 대주주인 국민연금 등의 윤 후보에 대한 사퇴 압박이 거세지면서 주총을 불과 일주일여 앞두고 결국 사임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KT는 경영권을 장악한 지배주주가 없는 자유로운 민간기업이다. 그럼에도 윤석열 새정부가 들어서면서 KT 수장에 '자기사람'을 심기 위한 작업이 점차 노골화하고 있다. 당초 후보심사위에서 연임이 확정된 구현모 현 대표를 갖은 압박과 회유를 통해 물러나게 한 것도 모자라 재공모를 통해 어렵게 내정된 윤 후보 마저 '구현모의 아바타'라고 몰아세우며 벼랑끝으로 내몰았다. 윤 후보는 결국 지난 22일 열린 KT 이사회 조찬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에게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이사들이 만류했지만 윤 후보는 사퇴 입장을 고수했다는 후문이다. 후보로 공식 내정된 지 보름만이다. 

이 자리에서 윤 후보자는 "더 이상 버티면 KT가 더 망가질 것 같다"고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지속된 여권내 반발 기류와 검찰 수사 압박 등에 결국 두 손을 들수 밖에 없었음을 짐작케하는 대목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주총에서 윤 후보가 CEO로 선출된다고 해도 현재 상황에서 정부 규제에 민감한 통신산업 특성을 감안할때 원활한 경영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고 사임 이유를 분석했다.

국민의힘 일부 의원들은 현 KT 사내이사를 맡고 있는 한 윤 후보가 주요 후보군으로 떠오를때부터 '내부 카르텔' ‘구현모의 아바타’ 라고 비난을 퍼부었으며, 지난 7일에는 국회에서 이례적으로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여기에다 검찰도 구현모 대표와 윤 후보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상황이 지속되자 KT 내외부에서는 정부와 정치권이 '해도 너무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쯤되면 정부에 물어보고 싶다. 어떤 인물을 KT 차기 대표로 선출하면 되겠냐고"라는 자조적인 한탄마저 나오고 있다. 권한도 없는 민간기업 CEO 선출을 둘러싼 명분없는 개입으로 기업 경쟁력을 훼손하느니 차라리 누구를 뽑으라고 콕 찍어주는게 낫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외국인 주주들과 소액주주들에게도 반감을 사고 있다. 지난 9일 1300명 이상 KT 주주들이 결집한 네이버 카페 'KT주주모임'에서는 다수 주주들이 "전자 투표를 통해 윤 후보 선임에 찬성 표를 던졌다"며 실시간 상황을 공유했다. 이후 320만주 이상의 찬성 주식 수가 모인 것으로 전해졌다.  

글래스루이스, ISS 등 글로벌 자문기관도 최근 KT 투자자에게 KT 정기 주총에서 윤 후보자를 차기 대표로 선임하는 안건에 대해 찬성할 것을 권고했고, 윤 후보자의 폭 넒은 경험을 높이 평가했다. ISS는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로 글래스루이스와 함께 의결권 자문시장을 장악한 곳이다.

KT는 국민연금(10.12%), 현대차그룹(7.79%), 신한은행(5.48%)이 주요 주주이지만 소액주주와 외국인 투자자 비중이 과반 이상을 차지한다. 이에 따라 글로벌 자산운용사 등 외국인 주주들이 이들의 권고를 참조해 실제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정부와 정치권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윤 후보가 사임의사를 철회한다면 차기 CEO 선임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란 분석이다. 이 때문인지 현재로선 KT 이사회도 윤 후보의 사임을 공식화하지 않고 있다. 윤 후보의 사임이 수용돼 31일 주총에서 차기 CEO 선임이 무산된다면 KT는 '수장 공백'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게 될 우려마저 커지고 있다.

정부와 여권은 이제라도 민간기업의 수장자리에 '입맛에 맞는 인사'를 앉혀야 한다는 구태에 연연해서는 안된다. '글로벌 IT 강국'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IT 업계의 현안과 과제는 지금도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정부와 정치권이 '소탐대실'의 우를 범하지 말고 KT CEO 선임은 이사회와 주주들에게 맡기는 현명한 결단을 내려주길 기대한다.

황성완 기자 skwsb@smartfn.co.kr

댓글

(0)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깨끗한 댓글 환경에 동참에 주세요. 0 / 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