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진의 재미있는 K-LCC 이야기] (11)10여년 만에 국내선 시장 대부분을 K-LCC가 차지해 버렸다
김효정 기자2022-11-30 09:34:39
K-LCC 취항 초기만 해도 기존항공사 만을 이용하는 소비자를 설득시키기 위해 “제주도 가는 데 굳이 기존항공사 탈 필요 있나”라는 여론을 만들어내는 데 여념이 없었던 당시와 비교해 보면 10여년 만에 국내선 시장 대부분을 K-LCC가 차지해 버렸다. 국내선 항공여행은 K-LCC가 기존항공사 보다 2.5배 더 태우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 같은 여파로 2021년 탑승객수는 국적항공사 가운데 기존항공사들을 제치고 K-LCC 2개사가 1, 2위를 차지하는 이변을 낳았다. 제주항공이 첫 운항을 시작한 2006년 이후 처음으로 2021년 탑승객수 순위에서 국적항공사 1위를 차지했다. 코로나19 여파로 국제선 운항이 대부분 중단된 상황에서 국내선 탑승객이 급증하면서 제주항공이 국제선을 포함한 2021년 전체 탑승객수에서 대한항공을 제친 것이다.
K-LCC들은 “제주도 가는 데 굳이 기존항공사 탈 필요 있나”라는 식의 여론 설득에서 성공을 거두자 곧바로 “일본 가는 데 굳이 기존항공사 탈 필요 있나”라는 새로운 방식을 사용했다. 그리고 수년 만에 일본노선 역시 기존항공사들의 자리를 위협했고, K-LCC들이 주력했던 한일노선 대부분에서 기존항공사 대비 우위를 차지해 버렸다.
그리고 이 같은 여론작업은 얼마 안 가 “홍콩 가는데 굳이 기존항공사 탈 필요 있나”, “괌, 사이판 가는데 굳이 기존항공사 탈 필요 있나”, “동남아 가는데 굳이 기존항공사 탈 필요 있나” 등등으로 계속 확대되었고, 상당수 해외노선에서 이 같은 여론형성 전략은 연거푸 K-LCC의 승리였다.
2000년대 후반에 닥친 금융위기 이후 기존의 과시형 해외여행을 실속형 해외여행으로 바꿔 놓은 것에 따른 결과였다. 심지어 K-LCC들은 휴가철도 바꿔버렸다. 201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휴가철 성수기는 맹목적으로 7말8초였다. 7월말부터 8월초까지 불과 보름 남짓이 휴가철 성수기였다. 하지만 성수기요금 대비 반값 이상 할인하는 K-LCC 탓에 휴가철은 1년내내 어느 때고 비수기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알뜰족이 급속히 늘었다. 바야흐로 실속형 여행시대가 열린 것이다. 코로나19가 시작되기 직전까지만 해도 5~6월처럼 비교적 한산한 비수기에 여름휴가를 미리 떠나려는 사람이 많았다. 저렴한 비용으로 일찍 휴가를 즐기기 위해서였다.
7월과 8월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여름휴가가 집중되는 성수기여서 항공사나 호텔은 성수기요금을 별도로 책정해서 수익성이 가장 높다. 그런데 이 같은 성수기를 한달이나 아예 두세달까지 미리 서두르거나 미뤄서 휴가를 떠나면 성수기 대비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일정을 짤 수 있고, 공항도 덜 복잡해서 입·출국시간도 줄일 수 있다는 여러가지 장점이 있다.
여행업계에서는 비수기 출국자가 급속하게 늘어나는 배경으로 K-LCC를 꼽았다. 단 두 항공사만 운항하던 기존항공사 체제에서 K-LCC의 등장으로 인한 다수의 항공사가 경쟁하는 체제로 바뀌며 가격과 서비스 경쟁이 치열해진 것이다. 물론 경기불황 탓에 소비자들이 실속형 소비를 선호하는 트렌드로 바뀐 것도 큰 몫을 했다. K-LCC들도 비수기 선호에 대응하기 위해 항공권을 저렴하게 팔아 탑승률을 높이는 등 승객의 요구에 적극 부응하는 마케팅을 펼쳤다. 비수기처럼 좌석이 남을 때 이를 채우기 위해 K-LCC들이 특가항공권을 내놓는 경우가 많아졌다. K-LCC들이 마치 유통업체의 정기세일처럼 정기적으로 항공권을 할인판매하는 이벤트를 늘리면서 이를 이용하려는 사람도 함께 늘었다.
20~30대 알뜰족들은 각 K-LCC들이 정기적으로 내놓는 특가항공권 판매시기에 따라 자신의 휴가시기를 정하는가 하면, 특가항공권을 판매하는 해외노선에 따라 휴가지역을 정해버리는 사례 또한 많아졌다. 예를 들어, 어느 K-LCC에서 신규 노선을 홍보하는 차원에서 기존항공사 대비 50~90%까지 저렴한 특가항공권을 내놓으면 그에 맞춰 휴가지를 선택하는 식이었다.
휴가를 언제 어디로 갈 것인지를 여행자가 정하는 게 아니라 K-LCC들이 내놓는 특가항공권이 정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금융위기 이후 2010년대 중반에는 이 같은 사례가 완전히 자리를 잡으면서 우리나라 직장인들의 새로운 풍속도가 연출되기도 했다.
어느 회사든 20~30대 직원이 휴가철도 아닌데 갑자기 휴가를 가겠다고 연차를 신청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연차 소진을 위해 회사마다 직원들의 연중 연차휴가를 독려하는 세태와 맞아떨어진 셈이다. 팀원의 갑작스런 휴가 신청에 팀장급 상사는 무슨 일이 있는지 물었고, 후배 직원은 “운 좋게 특가항공권을 득템했다. 이 티켓을 사용하지 못하면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되므로 무조건 지금 당장 연차를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팀장급 상사는 운 좋게 특가항공권을 손에 쥐었다는 후배 직원의 해외여행 기회를 날려버리기에는 자신이 보기에도 아까웠으므로 회사 사정은 뒤로 미루고 승인을 해주었다. 이 같은 일화는 당시 많은 회사에서 벌어진 이른바 ‘K-LCC 현상’이었다. 그만큼 K-LCC의 특가항공권은 파격적이었고, 취소할 수 없는 여행일정이었다.
이처럼 해외여행을 계획하는 알뜰여행족에게는 항공권 비중이 가장 큰 필수 체크포인트였다. K-LCC의 특가항공권은 탑승시기를 특정했기 때문에 여행객이 여행시기를 정한 게 아니라 항공사가 정한 시기에 여행을 떠나야 하는 특징이 있었다.
금융위기가 끝나자 우리 사회에서는 항공여행이 대유행을 했다. 금융위기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돈 좀 있는 사람만 누리던 호사에서 누구나 국내든 해외든 비행기를 타고 자유롭게 여행을 다니는 시대로 빠르게 탈바꿈한 것이다. 물가가 싼 중국, 동남아 등으로 향하는 여행이 늘면서 이들 국가의 해외노선이 증가한 데다 K-LCC들이 해외노선을 공격적으로 늘리면서 저렴한 항공노선이 증가했다.
이처럼 국내 항공산업이 빠르게 변한 이유는 K-LCC였다. 2000년대 중반 K-LCC가 운항을 시작하면서 2010년대 이후 폭풍성장하여 기존항공사와의 경계가 모호해진 것이다. 치열한 가격경쟁에 따른 항공 대중화가 시작되면서 항공시장에 변화의 바람이 불어 가격대는 더욱 다양해지고 항공스케줄 역시 폭발적으로 확대되면서 항공소비자 선택의 폭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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