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진의 재미있는 K-LCC 이야기] (8)해외 LCC와 국내 LCC는 많은 면에서 다르다

김효정 기자 2022-11-19 06:07:01
양성진 ‘세상을 바꾼 K-LCC’ 저자

LCC의 표본이었던 사우스웨스트항공의 비즈니스 모델을 우리나라 LCC들이 설립 초기에 그대로 적용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의 비즈니스 모델이 크고 작은 부분에서 우리나라 정서에 맞지 않았던 것이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이 미국에서는 FSC 방식의 기존항공사들을 모두 물리치고 탑승객 수 기준 미국 1위 항공사로 발돋움했지만 그 방식 그대로 우리나라에서 운항했을 경우에는 실패가 자명했을 것으로 예측된다.

가장 큰 차이점은 미국의 항공소비자와 우리나라 항공소비자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차이가 항공운임에 대한 인식구조이다. 미국의 항공소비자들은 항공운임이 싸다면 그 어떤 불편도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당위성의 태도가 있었다. 예들 들어 도심에서 가까운 공항이 아닌 자동차로 1~2시간 더 가야 탈 수 있는 대체공항을 이용하는 것도 기꺼이 감수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 항공소비자들은 도심에서 먼 공항을 이용하는 것을 꺼렸다. 운임은 개의치 않았다. 예를 들어 김포공항보다 청주공항에서 제주행 항공편을 이용하면 운임이 더 낮더라도 수도권 이용자들은 한사코 김포공항만을 이용하려 했다. 청주공항은 안중에도 없었다. 일부 지역 소비자들의 경우 교통혼잡도 등을 고려하면 김포공항과 청주공항 도착시간이 동일하거나 혹은 청주공항이 더 적은 시간이 소요되더라도 한사코 김포공항을 이용하려 했다. 수도권 항공소비자의 김포공항 이용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당연한 것이었다.

미국이나 유럽 LCC들의 설립 초기 경쟁 상대는 기존항공사라기보다는 고속열차나 고속버스였다. 그리고 이들 국가의 항공소비자에게 있어서 LCC는 고속열차나 고속버스를 대체하는 더 편리한 새로운 교통수단일 뿐이었다.

그런데 교통수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LCC가 우리나라 항공소비자들에게는 교통수단 이상의 감성이 존재했다. 즉 ‘비행기를 타는 것’이었다. 그리고 ‘비행기를 타는 것’은 공항을 가야 하고, 카운터에서 짐을 맡기고 항공권을 받아야 하고, 검색대를 통과해야 하고, 공항에서 쇼핑을 하는 등의 시간을 보내고, 항공기에 탑승해서는 객실승무원의 환한 미소와 극진한 대접을 받아야 하고, 기내식이나 음료서비스를 맛보는 모든 과정 전체가 환상적으로 어우러지는 일종의 문화체험이자 감성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래서 기차나 버스를 타는 것과는 절대 바꿀 수 없는 매력적인 경험이었다. 이 같은 우리나라 항공소비자의 감성에 굴복한 국내 LCC들은 이후 김포공항 출발편과 청주공항 출발편의 항공운임에서 큰 차이가 나지 않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사진=픽스히어 

제주항공이 취항 전이었던 2005년경 우리나라 소비자를 대상으로 항공운임 책정에 따른 사전 설문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다. 설문항목은 김포~제주 항공편에서 대한항공 대비 어느 수준의 항공운임을 책정하면 제주항공을 타겠는지를 묻는 질문이었다.

현재시점에서, 즉 LCC가 이미 자리잡은 시기에 동일한 설문조사를 한다면 무조건 싼 항공운임에 대다수가 응답할 것임은 자명하다. 하지만 당시 설문결과는 대단히 의외였다. 대한항공 대비 50% 이하의 운임을 받으면 제주항공을 안 탈 것이라는 응답률이 매우 높았다. 즉 기존항공사 대비 너무 많이 싸거나 반값 이하의 운임을 받으면 제주항공을 타지 않을 것이라는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즉 ‘싼 게 비지떡’이라는 속담이 그대로 적용되었다. 항공운임이 너무 싸면 뭔가 불안하고 꺼림칙하게 생각했다. 우리나라 항공소비자가 가장 원하는 운임수준은 놀랍게도 20~30% 할인된 가격이었다. 대한항공보다 20% 혹은 30% 정도 싸면 제주항공을 이용할 것 같다는 응답이 가장 많이 나왔다. 물론 20% 미만의 차이라면 그냥 대한항공을 이용하겠다는 설문결과가 나왔다.

이 같은 우리나라 항공소비자들의 뜻(?)에 따라 국내 LCC 대부분은 취항 초기에 기존항공사 대비 20~30% 할인된 수준을 정상운임으로 정했다. 그 대신 우리나라 항공소비자들은 2000년대 후반까지도 LCC 방식을 인정하지 않고 FSC 방식을 원했다. 즉 기존항공사와 거의 동급의 고품격 서비스에 운임만 20~30% 싼 방식을 요구했다. 기내식을 제공하지 않는 것이 LCC의 대표적인 비즈니스 모델이었지만 우리나라 항공소비자의 LCC에 대한 몰이해로 말미암아 뭔가 기내식류의 음식물을 탑재해야 했다. 아직 초창기였기에 기내식을 유료로 판매한다는 전형적인 LCC 방식은 포기했다.

궁여지책으로 일본행 항공편에서는 삼각김밥 등 가벼운 요깃거리가 준비되었지만 문제는 동남아행 항공편이었다. 비행시간이 4~5시간씩 걸리는 노선인지라 기내식을 준비해야 했다. 초창기 우리나라 항공소비자들은 LCC에 탑승하면서 기내식을 기대하고 승객 스스로 전혀 준비하지 않았다. 국내 LCC에서 준비를 해주지 않으면 승객들은 4~5시간 동안 굶어야 할 참이었다.

기내식 이미지 / 사진=위키미디어커먼스

하지만 국내 LCC는 초창기 동남아노선 항공운임을 기존항공사 대비 절반까지 할인된 취항특가로 고객을 끌어들였다. 따라서 저운임정책에 따른 저비용 운송에 나서야 했다. 이에 따라 국내 LCC의 동남아노선 기내식은 기존항공사의 기내식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즉 식사라기보다는 요기 수준이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제주항공이 국내 LCC 가운데 처음으로 국제선을 취항했을 당시 승객들은 동남아노선에서 기내식이 부실하다고 불평과 항의를 일삼았고, 심지어 기내식을 항공기 복도 바닥에 내동댕이친 사례도 보고되었다.

또한 사우스웨스트항공 승객들은 미국 보잉사의 B737-800 기종의 180여석짜리 항공기에 구겨넣듯 채곡채곡 태워져도 큰 불만이 없었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의 피치(Seat Pitch)는 31~33인치로 알려져 있다. 피치는 항공기 기내의 앞뒤 좌석 간격을 의미하는 것으로 피치가 클수록 좌석의 편안함을 좌우한다. 일반적으로 항공사들은 좌석 간격을 31~33인치 정도의 피치를 유지하고 있으나 승객을 많이 태워 비용을 줄여야 하는 LCC들은 이 간격을 줄여 29~31인치 정도를 제공하는 곳이 많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은 미국 보잉사의 B737 기종만 700여대 보유하고 있다. B737-700 기종을 500대 가까이 보유하고 있으며, B737-800 기종도 200여대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B737-800 기종은 제주항공, 진에어, 티웨이항공 등이 주력기종으로 사용하고 있다. 즉 사우스웨스트항공의 항공기와 우리나라 LCC의 항공기 탑승 환경이 거의 비슷하다.

사우스웨스트항공 이용시 미국의 항공소비자들은 피치 31인치짜리 항공기에 탑승하고, 좌석 구조는 항공기 복도를 중심으로 3ⅹ3 배열이어서 가운데나 창가에 앉은 소심한 성향의 승객은 비행내내 화장실가는 것은 엄두도 못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항공소비자들은 좌석 간격에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가 없다. 그 이유는 좌석 간격이 넓은 기존항공사보다 항공운임이 더 싸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 항공소비자들은 LCC 좌석 간격에 매우 예민하게 반응했다.

<글 / 양성진 ‘세상을 바꾼 K-LCC’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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