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과 사기 사이'...테라·루나는 다단계 사기다

[데스크 칼럼] 코인·블록체인 시장에 찬물 끼얹은 '개인 기업가'
김효정 기자 2022-05-19 09:29:08
[스마트에프엔=김효정 기자] 최근 몇년 간 미래의 기축통화 대체 수단으로 떠오른 가상화폐(암호화폐). 그 대표 주자는 비트코인이다.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한 가상화폐는 탈중앙화를 실현함으로써, 각국 정부나 중앙은행 등 특정 세력이 관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혁신의 아이콘으로 거듭나고 있다. 다만 가상화폐 자체가 지닌 내재가치가 부족하기에 급등락을 반복해 왔지만, 최근까지는 주식을 대체하는 투자 수단으로 인정 받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세계 가상자산 시장에 찬물을 끼얹은 사건이 우리나라에서 발생했다. 국내에서 발행한 스테이블 코인 '테라USD(이하 테라)'와 '루나'의 가치가 폭락하면서 전세계 가상화폐 시장에 직격탄을 날렸다. 무려 99%가 급락한 것인데, 이러한 상황이 가상화폐의 불안정성을 그대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스테이블 코인이란 비트코인, 이더리움, 리플 등 가상화폐의 가격변동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것으로, 통화나 상품 등의 자산을 담보로 그 가치 유지하는 가상자산이다. 즉 기존의 가상화폐와 달리, 미국 달러화 처럼 중앙은행에서 발행한 통화와 같은 가격을 유지하도록 설계돼 있는데, 우리나라의 가상화폐 거래소인 테라폼랩스가 테라와 그 자매 코인인 루나를 연계하는 방식으로 가격 고정을 시도했다.

블룸버그와 화상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사진=블룸버그 홈페이지
블룸버그와 화상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사진=블룸버그 홈페이지


이러한 테라와 루나는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가 설계했으며, 테라는 가치 하락 시 1달러 상당의 루나를 받는 차익거래 형식으로 최대 20%의 이익을 돌려받도록 설계됐다. 언뜻 보면 그럴듯 한 상품(?)이다. 상품이라고 표현한 것은, 무려 연 20%의 이율을 지급하는 디파이(DeFi, 탈중앙화 금융) 상품처럼 포장했기 때문이다.

개인 투자자들에게 변동성이 큰 가상화폐나 주식에 투자하기 꺼려지거나, 이율이 낮은 은행에 저축하는 것 보다 낫다는 타협점을 제시한 것이다.

하지만 테라 시세가 급락하면서 루나의 동반 하락이 발생했다. 테라는 테라폼랩스의 스테이블 코인이고, 루나는 테라의 가치 고정을 지지해 주는 가상화폐다. 5월초에 테라의 가치 고정 시스템이 불안해 지면서 루나의 가격도 급락해 일주일 만에 시가총액이 모두 증발했다. 문제는 여기에 투자한 국내 투자자가 28만여명에 달하고, 시가총액만 50조원을 넘겼었다는 점이다.

이렇게 된 근본적인 문제는 뭐였을까. 1달러의 가치를 유지한다고 설계가 됐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내재가치도 없다는 것이 증명된 사기성 상품이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과 같이 활발하게 통용이 되거나, 특정 상품을 구입할 수 있는 내재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해외 전문가들이 이에 대해 통열하게 비판했다. 시가총액 2위의 가상화폐인 이더리움의 창시자 비탈릭 부테린은 테라와 루나를 두고 '폰지 사기'라고 강력하게 비난했다. 테라폼랩스는 테라를 예치하면 연 20% 수익률을 제공하겠다면서 투자자를 모았는데, 이것이 신규 투자자의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수익을 제공하는 다단계 금융사기(폰지사기)라는 것이다.

빌 애크먼 퍼싱스퀘어 캐피탈 대표도 테라와 루나 사태에 대해 "피라미드 버전 처럼 보인다. 투자자들에게 20%의 수익을 약속했지만 근본적인 사업모델이 없다"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테라와 루나의 사태를 보면 기본적인 사업 모델 없이 투자자의 돈을 돌려서 돈을 굴리는 폰지사기 그 자체다.


그럼에도 이번 사태의 핵심인 권도형 대표는 테라 가상화폐를 그대로 복사해서 새로운 가상화폐를 만들겠다고 나섰다. 기존의 테라와 루나는 각각 '테라 클래식'과 '토큰 루나 클래식'으로 바꾸고, 새로운 테라와 토큰 루나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권대표는 투자자들에게 투표에 부치겠다고 나섰고, 예상대로 투자자들 10명 중 9명은 반대 의견을 낸 상태다.

심지어 테라폼랩스가 설립한 루나 재단으니 4조원 가량의 적립금(비트코인 등)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또한 어디로 사라졌는지 행방이 모호하다. 루나 재단측은 테라의 폭락을 막기 위해 적립금을 테라·루나 매도에 사용했다고 하지만, 거래 내역과 가상자산 지갑 주소도 밝히지 않고있다. 300개의 비트코인만 남았다는 것이 루나 측 주장이다. 이렇게 미심쩍은 부분 탓에 내부거래 등이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도 나온다.

28만명이라는 투자자가 눈물을 쏟고 있고, 50조원의 시총이 증발했다. 그러나 책임을 지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테라폼랩스나 권도형 대표는 아무런 책임도 변제도 하지 않는다.

금융당국이 이를 제재할 근거나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의 가상자산 및 특정금융정보법은 '자금세탁방지' 부분에 치중해 있다. 투자자 보고 근거나 상폐 기준도 없다.

그러다 보니, 테라-루나 사태로 가상화폐 자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커졌고 향후 해당 시장의 성장을 막는 강력한 규제가 나올 수 밖에 없다. 악순환이 시작된 것이다.



김효정 기자 hjkim@smartf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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