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시, 농악보존회 ‘감싸기 행정’···어디까지?
2023-09-01
[스마트에프엔=배민구 기자] 평택농악보존회(회장 조한숙)가 지난 6월 29일 발생한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의 가해자에게 가벼운 징계에 그쳐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관련기사: 평택농악보존회 ‘직장 내 괴롭힘’···고용노동부, 개선지도 내려-10월 7일자).
지난 8월 8일 이 단체는 인사위원회를 개최하고 가해자에게 ‘견책’ 징계를 내렸다. 괴롭힘 사건이 발생한지 40일이 지나서 내린 결정이다.
가해자에게 잘못을 꾸짖는 수준인 ‘견책’ 결정이 내려지자 괴롭힘 사건에 대한 이 단체의 개선 의지에 의구심마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신속히 실시해야 할 진상조사마저 사전에 피해자를 회유하고 협박한 정황이 드러나는가 하면 부실하게 진행됐다는 지적이 보존회 안팎에서 일고 있어 객관성마저 상실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 진상조사 실시 전, 피해자 회유·협박 정황 드러나
지난 7월 6일 이 단체 신입회원 Y씨는 이사인 K씨(사건 발생 후 이사직 사임)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협박과 욕설 등 가혹행위를 했다며 고용노동부평택지청에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했다.
스마트에프엔 취재에 따르면 K씨는 지난 6월 29일, ‘1년 밖에 안 된 것들이 내부 분란을 일으킨다’며 Y씨에게 폭언과 욕설을 했고, ‘내가 보존회에 있는 한 당신의 모든 것을 제재할 것’이라는 협박성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피해자 Y씨는 보존회 사무국장과 회장을 만나 괴롭힘 사실을 알리고 구제 요청을 했다. 하지만 이 단체 회장 조한숙씨는 “두 사람이 알아서 해결하라. 문제가 되면 둘 다 징계위원회에 회부하겠다”며 강압적 태도를 보였다. 보존회가 괴롭힘 피해자에게 협박성 발언을 하며 구제 요청을 묵살한 정황이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접수하거나 발생 사실을 인지한 경우, 지체 없이 당사자 등을 대상으로 사실 확인을 위해 객관적으로 조사를 실시해야 하지만 피해자에게 징계까지 거론하며 회유를 시도한 것이다.
또 조 회장은 Y씨가 신고를 취하하는 조건으로 K씨가 공개사과 하도록 합의를 유도하기도 했다. 이 단체가 신고 철회를 종용하며 사건을 덮으려 했던 시도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 뒤늦은 진상조사···부실 조사 의혹도 제기
보존회는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이 발생한지 28일, 고용노동부로부터 개선지도 공문을 접수한지 하루만인 지난 7월 27일, 보존회 이사 2인과 감사 1인으로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7월 31일과 8월 1일 이틀동안 조사를 실시했다.
하지만 보존회가 신속히 실시해야 할 진상조사에 늑장대응을 했다는 비난과 함께 이마저도 부실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진상조사는 객관성이 요구되는 사안인데도 보존회는 외부위원 없이 내부 임원으로만 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가해자가 이번 사건으로 이사직을 사임한 임원이었음을 감안할 때 불편부당한 조사가 이뤄질 수 있었겠냐는 의구심을 들게 하는 대목이다.
이런 의혹을 뒷받침이라도 하듯이 보존회는 피해자인 신입단원 3명으로부터 경위서를 제출받았으나 정작 가해자인 K씨의 경위서는 받지 못해 조사위원회가 구두 진술만으로 조사하는가 하면, 피해자들이 작성한 경위서가 조사위원회의 공식 자료로 채택되지 않아 한 조사위원은 경위서 내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참석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보존회 측은 한 언론 보도를 통해 “경위서는 조사위원회와 관련 없이 보존회장이 개인적인 지시에 의해 작성된 것이었다. K씨가 이를 거부한 것”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익명의 보존회 관계자는 “조사위원회가 피해자와 참고인들 조사 과정에서 ‘묻는 질문에만 답변하라’는 식의 조사를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사실관계를 축소하거나 왜곡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보존회 내에서도 제기됐다”고 말했다.
이어 “가해자는 조사과정에서 ‘신입단원들에게 혼자말로 욕설은 했으나 Y씨에게는 욕을 하지 않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안다”면서 “Y회원을 끝까지 제재하겠다는 발언에 대해서는 간과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조사위원회가 진상을 파악하는데 주력하기보다 가해자의 욕설 발언 여부에 국한해 조사한 것은 징계 수위를 조절하기 위한 의도가 있었던 게 아닌가”라며 반문했다.
◆ 솜방망이 징계 논란···‘직장 내 괴롭힘’에 ‘품위 유지 위반’ 적용
보존회는 지난 8월 8일 인사위원회를 개최해 K씨에게 견책과 공연 3회 출연 제한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때까지도 피해자와 가해자는 분리조치 없이 함께 공연에 참석했다.
K씨에게 적용한 징계사유는 ‘품위 유지 위반’이며 해당 사유의 징계기준에 따라 견책 결정을 내린 것이다. 게다가 징계양정규정에는 비위의 경중에 따라 징계 수위를 가감할 수 있는데도 인사위원회는 이를 감안하지 않고 가해자의 잘못을 꾸짖는 정도에 그쳤다.
더구나 이 단체 회장은 징계조치에 대해 피해자의 의견을 들어야함에도 K씨에 대한 징계결정시 이를 문의한 Y씨에게 ‘알려줄 수 없다’고 해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정황도 드러났다.
이를 두고 시민사회 일각에서는 보존회가 이 사건의 심각함을 인지하지 못하고 오히려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인권단체 대표는 “인사위원회가 품위 유지 위반을 적용한 것은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을 가벼이 여기고 욕설에만 주안을 둔 반쪽짜리 징계”라며 “가해자 K씨가 공개한 짧은 사과문을 그대로 반영한 징계수준”이라고 꼬집었다.
가해자는 지난 7월 30일 회원 전체 대화방에 “○○○회원에게 본의 아니게 ‘아 X팔’이란 혼자말과 언성을 높이게 돼 진심어린 사과드립니다. 마음의 상처를 받은 ○○○회원이 공개사과를 요청함에 따라 이글을 전체 회원님께 올립니다. 추후 다시는 재발되지 않게 노력하겠습니다. 보존회에 심려를 끼쳐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라는 사과문을 남긴 바 있다.
이에 대해 보존회 측은 “인사위원회가 징계에 관한 양정규정에 따라 ‘회원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하지 못한 경우’를 들어 견책을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평택농악보존회의 발전위원 A씨는 “엄연히 발생한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을 오래된 관행처럼 취급하는 보존회 내부의 구태한 의식이 이같은 결론에 이르게 했다”며 “보존회는 폐쇄적 문화와 적폐를 스스로 개선할 의지도 능력도 없어 보인다”고 일갈했다.
이어 “성범죄와 직장 내 갑질 범죄는 피해자의 인생을 송두리째 파괴할 뿐아니라 극단적 선택까지 이르게 하는 중대 범죄이며 심각한 사회적 문제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면서 “보존회가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을 경미하게 처리해 놓고 인사위원회의 결정이라며 변명을 늘어놓는 것은 이 단체의 문제가 구조적인 것임을 스스로 자인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본지는 진상조사 실시와 인사위원회 결정에 대해 보존회 측의 입장을 듣고자 조한숙 회장에게 수차례 연락을 취했으나 답변을 듣지 못했다.
배민구 기자 news@smartf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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