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동나비엔 vs 귀뚜라미 '특허 소송전'...법원, 경동 손 들어줘
2024-11-04
보일러 명가 귀뚜라미가 최근 경동나비엔이 제기한 특허 침해 가처분 신청 소송에서 패소했다. 귀뚜라미는 패소 충격의 여운이 아물기도 전에 하청업체인 중소기업의 기술을 중국 업체에 빼돌리다 적발돼 국가적 망신을 당했다. 귀뚜라미는 현재 특허침해와 기술유출 등으로 이중고를 겪고 있어 향후 대응이 주목된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 4일 귀뚜라미에 ‘거꾸로 에코(ECO) 콘덴싱 L11’ ‘S11’ ‘E11’ 등 제품 판매금지 가처분결정서를 송달했다.
처분 효력은 송달문을 받은 당일부터 발생하는데 귀뚜라미는 '거꾸로 에코 콘덴싱' L11 모델 계열 판로가 막히면서 보일러 판매 성수기인 겨울을 앞두고 비상이 걸렸다.
귀뚜라미는 향후 주력 제품인 거꾸로 ECO 콘덴싱 일부 제품을 판매 및 전시도 할 수 없게 됐다.
앞서 경동나비엔은 지난해 12월 19일 귀뚜라미를 상대로 자사 특허 기술 4건을 침해한 열교환기를 생산·판매하고 있다고 판단해 ‘특허권침해금지 가처분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후 서울중앙지방법 민사합의 60부는 지난달 30일 경동나비엔이 귀뚜라미를 상대로 한 특허 침해 가처분 신청 소송에서 경동나비엔의 가처분 신청을 일부 인용했다.
해당 기술이 적용된 귀뚜라미 제품의 제조 및 판매 금지 등의 조치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이후 본안 소송이 진행될 경우 기존에 시장에 판매된 귀뚜라미 제품에 대한 손해배상도 청구될 수 있다.
경동나비엔은 아울러 가처분 신청에 앞서 지난 2022년 말, 자사의 제품 개발 연구원 등 직원들이 귀뚜라미로 이직한 것에 대해서도 영업비밀 유출 우려로 경찰에 고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귀뚜라미는 그동안 보일러에 온수를 저장하는 탱크를 탑재한 저탕식 보일러를 주력으로 생산해 왔다. 하지만 정부의 친환경 보일러 의무화 방침에 따라 고효율 순간식 보일러를 적용했다. 이 과정에서 귀뚜라미가 정부 방침에 따른 거꾸로 에코 콘덴싱 제품 출시를 위해 경동나비엔의 특허권을 침해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양사 간 분쟁은 지난 2021년 귀뚜라미가 ‘거꾸로 에코 콘덴싱’ 제품을 출시하면서 시작됐다.
경동나비엔이 지난 2018년 해당 기술을 최적의 열효율을 내는 구조로 개발한 것을 귀뚜라미 측이 표절했다고 주장하면서다. 특히 1번 특허인 열교환기 유닛의 경우 내부의 열을 흡수해 난방수를 데우는 핵심 기술로 알려졌다.
경동나비엔은 “귀뚜라미가 침해한 해당 기술 일부는 경동나비엔이 특허를 획득한 지난 2019년 5월보다 앞선 2012년부터 자사가 적용하고 있어서 가처분신청을 낼 수밖에 없었다”며 “열교환기 유닛에 관한 특허와 연소실 포밍부 보일러 제품에 대한 특허를 포함해 총 4개 항목에 대해서 귀뚜라미가 특허를 침해했다”고 설명했다.
귀뚜라미 "경동나비엔 특허 무효 인정 받을 것"
귀뚜라미는 현재 심결 취소 소송을 청구해 2심을 진행하고 있다. 동시에 모든 특허에 대해 무효를 인정받겠다는 계획이다.
귀뚜라미 관계자는 “특허전쟁에서 경동나비엔 승소가 아니다”라며 “경동나비엔의 특허가 무효 판결이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가처분이 일부 인용된 것 뿐”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특허 침해 본안 소송은 진행되지도 않았기 때문에 특허 침해는 다퉈 본 적도 없다”면서 “지난 9월 19일 특허심판원에서 경동나비엔의 특허 4개 중 3개가 무효로 인정됐으며 1개는 불인정 됐지만 2심이 진행 중에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본안소송 1심 판결 전까지만 효력을 발휘하는 가처분과 달리 특허심판원의 심결은 본안소송의 성격을 갖는데 현행 행정소송법상 특허 무효 사건은 법원 심리에 앞서 특허심판원을 반드시 경유해야 한다”며 “특허 침해가 확실하다면 본안 소송을 하면 되는데 가처분 신청을 하고 10개월이 넘었는데도 본안을 하지도 않았다”고 덧붙였다.
양사 간 소송이 장기화되면 될 수록 귀뚜라미 측의 손해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일각에서는 최근 특허권 침해 금지 가처분 승소로 경동나비엔의 시장 내 입지가 더욱 강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면, 귀뚜라미는 특허 침해 판결이 기업 신뢰도와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겨울 성수기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일부 주력 제품의 판매 제동으로 인해 보일러 시장에서의 점유율 또한 하락할 가능성도 있다.
특히 본안 소송이 진행될 경우 이미 시장에 판매된 귀뚜라미 제품에 대한 손해배상 등 추가적인 법적 조치가 이어질 수 있다. 이미 출고된 해당 제품의 A/S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설상가상’ 귀뚜라미, 하청인 중소기업 기술 中 업체에 빼돌려
한편, 최근 귀뚜라미는 단가를 절감하기 위해 하청인 중소기업의 기술을 중국 업체에 빼돌리다 적발돼 거액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18일 하도급법 위반 혐의로 귀뚜라미에 시정명령과 과징금 9억5400만원을 부과하고, 법인을 검찰에 고발하기로 결정했다. 귀뚜라미그룹의 지주회사인 귀뚜라미홀딩스 법인도 검찰에 고발한다.
귀뚜라미는 수급사업자에게 납품받고 있던 부품의 구매 단가를 절감하기 위해 수급사업자의 기술자료를 제3자에게 부당하게 제공하고, 이와 동일한 제품을 개발할 것을 의뢰하는 방식으로 수급사업자의 기술자료(승인원)를 유용한 혐의를 받는다.
앞서 귀뚜라미는 지난 2020년 7월부터 2021년 3월까지 보일러의 온도 등을 감지하는 센서를 더 싸게 납품받고자 기존 수급사업자의 기술자료 32건을 중국 경쟁업체에 전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에 유출된 기술자료에는 보일러 난방수·배기가스의 온도, 연소 불꽃의 파장, 난방수의 수위 등을 감지하는 부품 등이 포함됐다.
귀뚜라미는 지난 2022년 5월에 전동기를 납품하던 수급사업자의 기술자료(승인원) 2건도 해당 수급사업자의 국내 경쟁업체에 제공했다. 그 결과 해당 경쟁업체는 전동기 개발에 성공했다.
공정위는 귀뚜라미가 수급사업자들에게 기술자료 46건을 요구하면서 요구목적 등이 기재된 기술자료 요구 서면을 교부하지 않은 행위도 적발해 함께 조치했다.
귀뚜라미 vs 경동나비엔 실적서 ‘희비’
이런 사정으로 최근 양사간 실적도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경동나비엔은 해외 시장에서의 성과가 두드러지면서 실적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는 반면 귀뚜라미는 최근 몇 년간 성장세가 정체되고 있다.
이날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경동나비엔은 지난해 매출 9951억원으로 전년 대비 1.5%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563억원을 기록했다.
지난 2019년 6554억원이었던 매출이 4년 사이 크게 늘어나며 올해는 1조원 클럽 가입을 눈앞에 둘 만큼 가파른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귀뚜라미는 지난해 매출 340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3% 줄었다. 영업손실은 22억원으로 지난 2019년 이후 4년 만의 적자 전환했다.
당시 지주사 체제로 전환한 귀뚜라미홀딩스는 4년 연속 최대 매출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했으나 난방 사업 부문을 담당하는 핵심 계열사 귀뚜라미는 영업 손실을 기록한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양사 간 소송이 장기화될수록 귀뚜라미에는 득보다 실이 클 것으로 보인다”며 “겨울 성수기를 맞아 주력 제품의 판매가 제한되면서 귀뚜라미는 실적에서도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신종모 기자 jmshin@smartf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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