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업 패스트리테일링 야나이 회장 경영철학
"싸고 품질좋은 모두를 위한 옷"이 의류 민주화
김준하 기자2024-11-20 08:50:10
"우리는 모두를 위한 옷을 대량으로, 합리적인 가격으로 제공한다. 세계 어디에서나 사람들은 뛰어난 디자이너들이 설계한 특별한 옷을 접할 수 있다. 이것이 '의류의 민주화'다.”
유니클로의 모회사인 패스트리테일링의 회장이자 최대 주주인 야나이 타다시가 한 말이다. ‘의류 민주화’는 야나이 회장의 핵심적인 경영 철학이다.
야나이 회장은 일본에서 가장 부유한 인물이다. 블룸버그 억만장자 지수(Bloomberg Billionaires Index)에 따르면, 그의 순자산은 약 489억 달러(한화 약 68조2600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세계 27위의 자산가다.
패스트리테일링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올해 창립 40년 만에 처음으로 연간 매출액 3조 엔(약 27조380억원)을 넘었다. 전년 대비 12.2% 증가한 수치다. 순이익은 약 3719억 엔(약 3조3500억원)으로 전년 대비 25.6% 늘었다. 18일 기준으로 1년 전에 비해 주가가 약 37% 올랐다.
패스트리테일링의 성장 배경에도 역시 의류 민주화라는 야나이 회장의 경영 철학이 있었다. 유니클로의 의류 민주화는 어떻게 실현될 수 있었을까?
가격과 품질, 두 마리 토끼를 잡다
의류 민주화의 첫번째 요소는 저렴하고 품질이 좋은 옷을 만드는 것이다.
유니클로는 자체 공장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 대신 중국·인도·베트남·인도네시아 등에 있는 공장들에 많은 물량을 주문하고 구매하는 방식으로 원가를 낮춘다. 규모의 경제를 통해 비용을 절감하는 것이다. 제품은 일반적으로 100만개 단위로 생산된다. 또한, 상품 기획부터 생산·유통·판매의 모든 과정을 직접 담당하는 SPA(Specialty store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 방식을 채택해 중간 유통 비용을 줄인다.
품질 관리에도 공을 들인다. 타쿠미(Takumi) 팀이 공장에 배치돼 품질을 관리한다. 이들은 30년 이상의 섬유 산업 경력을 가진 전문가들이다. 공장에서 염색·봉제·공정관리 등에 관여한다.
유니클로는 첨단 소재 제조사인 도레이와 25년간 공동으로 소재를 개발해 왔다. 2006년에는 전략적 파트너십도 맺었다. 도레이와의 협업해 히트텍, 에어리즘, 울트라 라이트 다운과 같은 유니클로를 대표하는 상품을 개발했다.
과거에 유니클로는 저가의 저품질 의류를 생산했다. 의류를 도매로 가져와 파는 평범한 길거리 매장인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합리적 가격과 높은 품질을 모두 충족하는 브랜드가 되었다. 2004년 야나이 회장은 ‘글로벌 품질 선언’을 발표하면서 고품질의 옷을 생산한다는 비전을 밝혔다. 당시 야나이 회장은 “싸구려로 알려지는 것은 슬프다”라는 말을 남겼다.
메이드 포 올(Made for All)
의류 민주화의 두번째 요소는 ‘모두를 위한 옷’을 만드는 것이다.
유니클로의 옷은 남녀노소 누구나 입을 수 있는 옷을 제작한다. 자라, 무신사 스탠다드, H&M, 스파오 등의 다른 SPA 브랜드들이 주로 10~30대의 젊은 층을 공략하는 것과 다르다. 이것이 유니클로가 다른 브랜드들에 비해 독특한 점이다.
이는 유니클로의 제품이 뛰어난 기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유니클로는 특정 성별이나 연령층을 타깃으로 삼지 않고, 실용성을 추구하는 고객을 타깃으로 삼는다. 여름에는 에어리즘이나 드라이엑스 같이 땀을 잘 흡수하는 제품, 겨울에는 히트텍이나 플리스처럼 보온성이 뛰어난 제품을 내놓는다.
야나이 회장은 유니클로의 제품을 설명하기 위해 라이프웨어(LifeWear)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사람들의 삶을 좋게 만드는 의류를 제작한다는 의미다. ‘모두를 위한 옷’을 만든다는 원칙이 라이프웨어라는 말에 담겨 있다.
명실상부 글로벌 브랜드
의류 민주화의 세번째 요소는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는 것이다.
유니클로의 2024년 해외 매출은 약 1조7118억엔으로 일본 국내 매출 약 9322억 엔의 거의 2배다. 전 세계에 유니클로 매장은 2500여개다. 유니클로는 글로벌 브랜드다.
특히 북미 시장에서의 확장을 노리고 있다. 미국의 주간지 타임에 의하면 야나이 회장은 2027년까지 북미 매장을 3배로 늘릴 계획이다.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세계와 더 연결되지 않으면 일본인에게 미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는 것에 대한 절박함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작년 9월 야나이 회장은 유니클로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쓰카고시 다이스케를 유니클로 사장 겸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임명했다. 쓰카고시 사장은 일본·중국·북미 등지에서 일하며 경험을 쌓은 인물이다. 세계 시장에 익숙한 인물이 글로벌 사업을 총괄하게 했다는 점에서 유니클로가 글로벌 확장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야나이 회장은 ‘글로벌 원(Global One)’, 즉 글로벌 시장을 하나로 본다는 철학을 내세운다. 유니클로의 상품이 특정 지역이 아니라 전세계에서 통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전 세계에서 유니클로의 옷을 입도록 한다는 ‘의류 민주화’와 결이 같다.
“옷을 바꾸고, 상식을 바꾸고, 세상을 바꾼다”
미국의 사회학자 다이애나 크레인은 그의 저서 ‘패션과 사회적 의제들’에서 ‘패션의 민주화’라는 개념에 대해 설명한다.
19세기에 의복은 주로 사회적 신분과 계급을 나타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부터 의복은 개인의 성별, 나이, 성적 지향, 민족성 등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었다. 산업혁명 이후 직물 산업의 발전으로 저렴한 옷이 보급되면서 많은 이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패션을 추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날에 패션 기업들은 세계 시장에 의류를 공급한다. 크레인은 이것을 패션의 민주화라고 설명했다.
야나이 회장은 “옷을 바꾸고, 상식을 바꾸고, 세상을 바꾼다”는 비전으로 유니클로를 이끌어 왔다. 합리적인 가격과 높은 품질의 옷, 남녀노소가 입을 수 있는 옷, 세계인 모두가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어 의류 민주화에 기여했다. 어쩌면 유니클로는 크레인이 말한 패션의 민주화를 ‘확대 재생산’하는 기업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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