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리스 오블리주’ 이병철·이건희·이재용 3대가 이어온 문화 예술 사랑

호암미술관 ‘연꽃처럼’전(展) 관람객 6만 명 돌파
전세계 27개 컬렉션서 걸작 92건 전시…한국 처음 온 작품만 47건
이병철 창업회장, 30여년 수집한 미술품으로 호암미술관 개관
신종모 기자 2024-06-04 18:00:06
동아시아 불교미술을 조망하는 호암미술관의 대규모 기획전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이 일반 관객은 물론 전세계 전문가들의 관심과 호평 속 관람객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연꽃처럼 기획전은 지난 3월 27일 개막 후 지난달 말까지 총 6만 명이 관람해 하루 평균 관람객 수가 1000명이 넘었다. 

오는 16일 폐막을 앞둔 연꽃처럼 기획전은 한국 불교미술 전시에 새로운 획을 긋는, ‘다시 보기 힘든 기획전’이라는 평가 속에 미술 전문가는 물론 일반 관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호암미술관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기획전에 전시 중인 백제 <금동 관음보살 입상>. /사진=삼성


‘연꽃처럼’은 지난해 대대적인 리노베이션 이후 호암미술관의 첫 고미술 기획전이다. 한국과 일본, 중국 3개국의 불교미술을 '여성'이라는 키워드로 본격 조명한 세계 최초의 전시이기도 하다. 

특히 해외 개인 소장가로부터 대여해 온 ‘백제의 미소’ <금동 관음보살 입상>은 국내에서 일반인에 최초로 공개되는 작품이다. 고려시대 국보급 작품 <나전 국당초문 경함>은 전세계에 단 6점만이 남아있는 진귀한 명품이다. 

이건희 선대회장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불설대보부모은중경>, <궁중숭불도>, <자수 아미타여래도> 등도 함께 전시됐다. 

선대회장의 기증품이 창업회장이 만든 미술관에 다시 돌아와 세계적인 명품들과 나란히 ‘세계 최초의 기획’에 함께 전시되는 특별한 인연도 관객들의 관심을 불러 모았다. 

삼성문화재단이 소장하고 있는 <감지금니 묘법연화경 권1-7>, <아미타여래삼존도>, <아미타여래도>, <석가여래설법도> 등 4점도 이번 전시를 통해 일반에 최초로 공개됐다. 

호암미술관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기획전에서 '디지털 돋보기'를 시연하고 있는 관람객들. /사진=삼성


호암미술관, 기획·전시에 5년 시간 공들여 

전시에 포함된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 <수월관음보살도> 같은 고서화는 자국 소장처에서도 자주 전시하지 않고 한번 전시되면 상당 기간 작품 보존을 위해 의무적인 휴지기가 있음. 그만큼 전시되는 기회 자체가 드물다. 

해외에서 중요 작품 한두 점을 대여해 전시하는 경우는 있지만 한국과 일본, 미국, 유럽에 소재한 27개 컬렉션에서 불교미술 걸작품 92점(한국 48, 중국 19, 일본 25)을 한자리에 모은 전시는 극히 이례적임. 92건 중 한국에 처음 들어온 작품은 47건이다.  

기획전을 관람한 국내외 미술전문가들은 “세계 유수의 불교미술 명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어쩌면 우리 생에 한 번밖에 없을 특별한 기획전”이라고 평가했다. 

이재용 회장 5번이나 관람…한국 전통 문화 소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비즈니스 미팅 등을 위해 만난 주요 외빈들과 이번 전시를 5번이나 관람하며 한국 전통 문화를 소개하고 국내 문화·예술 발전에 대한 삼성의 노력과 기여를 설명했다. 

이재용 회장은 함께 방문한 일행들에게 <감지금니 묘법연화경>을 확대해 세밀하게 감상할 수 있는 ‘디지털 돋보기’를 직접 시연하기도 했다. 

이솔 뉴욕주립대 스토니브룩 미술학과 교수는 “불교미술 전시에서 볼 수 없었던 공간 연출이 매우 인상적”이라며 “곡선으로 연출한 관음보살도 공간에 이어 직선으로 구획된 백자 불상(백자 백의관음보살 입상) 공간이 이어지는 연출이 현대미술 전시장을 보는 것 같이 신선했다”고 극찬했다. 

김영나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한 곳에서 보기 힘든 불교미술의 명품들”이라고 말했다.

이데 세이노스케(井手誠之輔) 일본 규슈대 교수는 “귀중한 작품들이 한국에서 처음으로 재회해 한 자리에 늘어선 모습이 장관이었다”며 “연구자들의 염원을 이뤄준 전시회”라고 평가했다. 

정병모 전 경주대 교수는 “백제 불상의 미소가 그리워 여러 번 전시를 관람했다”고 전했다. 

전통정원 희원 <황금연꽃> 전경. /사진=삼성


3대가 이어진 미술 사랑과 노블리스 오블리주

이병철 창업회장, 이건희 선대회장, 그리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으로 이어지는 3대에 걸친 미술 사랑과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국민들에게 명작의 힘과 작품의 매력을 느끼게 해주고 있다. 국내 미술문화 부흥과 국민들의 ‘문화 향유권’ 향상에도 기여했다.

호암미술관은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이 30여 년에 걸쳐 수집한 미술품을 기반으로 지난 1982년 4월 22일 개관했다. 

호암미술관 설립은 해외에 유출되고 산지사방으로 흩어져 소멸될 위기에 놓인 귀중한 민족문화의 유산들을 수집·보호하기 위해 미술관뿐만 아니라 문화전반에 걸친 교육과 향유의 장을 구상하고자 하는 의지로 시작됐다. 

이 창업회장은 특히 개인적으로 모아 왔던 문화재 1,167점(국보·보물 10여점 포함)을 지난 1978년 삼성문화재단에 기증했다. 

이건희 회장은 기업가이면서 동시에 예술애호가이자 사회사업가이기도 했다. 

지난 2004년 리움미술관 개관식에서 이 선대회장은 “비록 문화유산을 모으고 보존하는 일에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들어갈지라도 이는 인류 문화의 미래를 위한 것으로서 우리 모두의 시대적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런 철학을 토대로 ‘이건희 컬렉션’에는 국보급 문화재를 포함해 국내 유명 작가의 작품들이 대거 포함됐다. 

선대회장은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가 국내외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며 이를 모아 국립박물관의 위상을 높이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다. 

지난 2021년 이재용 회장을 비롯한 유족들은 이 선대회장이 문화유산 보존을 위해 평생 모은 개인 소장품 중 2만3000여점을 국립현대미술관, 국립중앙박물관 등에 기증했다. 

유족들은 ‘국립박물관의 위상을 높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이 선대회장의 말씀을 이행하는 것이 고인의 뜻을 기리는 진정한 의미의 상속이라는 데 뜻을 함께했다. 

이후 이건희 컬렉션은 전국 미술관에 전시되며 미술에 대한 국민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신종모 기자 jmshin@smartf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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