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수. 대표적인 바둑 용어로 정수(正手)가 아닌 수를 의미한다. 상대가 잘못 대응할 것을 가정하고 두는 의도적인 수로, 정수인 것처럼 눈속임해 상대의 실수를 유발케 한다. 이런 의미에 빗대 일상에선 쩨쩨한 수단이나 방법을 의미하는 비유적 표현으로 자주 쓰인다.
그런데 최근 이 ‘꼼수’라는 단어가 생명보험업계에서도 자주 등장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단기납 종신보험 운용에 제동을 건 가운데, 생보업계가 당국이 제시한 가이드라인만 슬쩍 피한 보험 상품을 판매하면서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7월 생보업계에서 단기납 종신보험의 경쟁이 과열되자, 단기납 종신보험의 5년·7년(10년납 미만) 만기 해지 환급률이 100%를 넘기지 못하도록 제한했다. 생보사들이 단기 환급률을 강조하면서 종신보험을 저축성보험처럼 판매해 불완전판매로 인한 소비자 피해가 발생할 수 있으며, 보험금 납입종료 직후 해지가 급증할 경우 건전성 악화도 우려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험사들은 같은 해 12월 단기납 종신보험의 만기를 10년으로 하고, 해지 환급률을 120%까지 높여 판매하기 시작했다. 해를 넘겨 지난 1월엔 신한라이프가 최대 135%의 환급률까지 제시하며 경쟁 과열이 재점화됐다.
결국 금감원은 지난달 22일 교보생명과 신한라이프에 현장점검을, 다른 생명보험사엔 서면 점검을 진행했다. 점검을 통해 불완전판매 가능성이나 건전성을 살피고 출혈 경쟁을 유발하는 업계 내 경쟁 과열을 잠식시키겠단 의도였다.
그러자 주요 생보사들은 다시 환급률 상한선을 130%가 되지 않도록 120% 중·후반대로 조정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 한 생보업계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정한 가이드라인 안에서 움직였다”며 “거기에 맞추면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급기야 상품의 외형을 종신보험에서 정기보험으로 바꿔 환급률 제약을 빠져나간 보험사도 등장했다. KB라이프생명은 지난달 25일 ‘KB The큰 약속 정기보험’을 출시했다. 납입 10년 기준 131%의 환급률을 지급하는 상품이다. 그러나 출시 6일 만에 돌연 판매가 중지됐다.
KB라이프생명 관계자는 “(KB The큰 약속 정기보험)은 종신보험 성격의 정기보험이며, 정기적인 상품 개정에 따라 판매를 잠시 중단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업계는 KB라이프생명의 조치가 최근 금감원 측의 단기납 종신보험에 대한 제재 기조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거기엔 해당 상품이 당국의 환급률 제재를 피해가기 위해 정기보험의 탈을 쓴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해석도 섞여 있다.
KDB생명은 ‘꼼수’의 절정을 보여줬다. 이달 1일 ‘무심사 우리모두 버팀목 종신보험’을 출시했던 것. 고객의 병력‧나이 등을 따지지 않는 ‘무심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보험계약 건수를 늘리는 데 도움될 수 있을지라도 고위험 집단의 가입률이 높아져 건전성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낳았다. 금융당국의 단기납 종신보험 제재 취지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단기적 실적에 치중한 나머지 불합리한 상품을 무리하게 출시했다는 지적이다. 그 결과 KDB생명도 며칠 만에 해당 상품의 판매를 중단했다.
삼성생명도 출시부터 120%대로 설정한 ‘더행복종신보험’의 환급률을 최근 100%(7년), 123.9%(10년)로 상향했으나 지난 12일부터 상품 판매를 종료했다.
이 같은 상황은 생보사들이 금융당국의 제재 의도를 간파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해프닝은 아닐 것이다. 단순한 실수였다면 ‘꼼수’라고 불리지도 않았다. 이제라도 당국의 제재 가이드라인을 단순히 이행하는 것을 넘어서 불안정한 대내외 경영환경 속에서 건전성을 확보하려는 근본적인 취지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이제는 생보업계의 ‘꼼수’가 아닌 ‘정수’를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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