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인증 배터리에 불이 난다면?…'배터리 인증제' 괜찮나

정부, 내년 2월 '배터리 인증제' 시행… 15일 시범사업 착수
김동하 기자 2024-10-22 11:01:29
5일 오후 인천 서구 청라동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 현장에서 합동 감식을 마친 경찰이 화재가 발생한 전기차를 옮기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지난 8월 인천 지하주차장 전기차 화재사고 이후 국민들의 '전기차 포비아'를 해소하기 위한 대책을 내놨다. 향후 국내에 출시되는 전기차에 대해 배터리 인증제를 통해 안전성을 직접 시험한다고 밝힌 것이 그 일환이다. 

그러나 정부 인증을 받은 전기차에서 화재가 발생할 경우 정부의 책임 소지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또한 팩 단위로 안전성을 검증하면 배터리 제조사에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점도 제기되고 있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지난 15일부터 전기차 배터리 안전성 인증제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인증제 시범사업에는 승용차 배터리 부문에서 현대차, 기아, 이륜차 배터리 부문에서 그린모빌리티, 대동모빌리티, LG엔솔 등 총 5개 업체가 참여했다.

배터리 인증제는 전기차에 장착되는 배터리의 안전성을 정부가 사전에 직접 시험해 인증하는 제도로, 지난해 8월 개정된 '자동차관리법'에 따라 내년 2월 시행되며 1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26년부터 본격 의무화된다. 

정부가 전기차 배터리 안전성 검증에 직접 뛰어든 것은 지난 8월 인천 지하주차장 전기차 화재사고에서 촉발된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발생했던 전기차 화재는 사고나 충전시에 발생했지만, 당시 사고는 지하주차장에 주차돼있던 전기차에 화재가 발생해 전기차 안전에 대한 우려감이 커졌다.

그동안 제조사들이 '자기인증제도'로 안전성을 확인해왔지만 정부가 직접 인증 절차를 추가하면서 불안감을 줄이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인천 전기차 화재 이후 배터리 제조사 공개 의무 등 국민들에게 공개하는 정보가 늘어난 만큼 배터리 인증제 도입은 소비자들에게 전기차 불안감을 줄여줄 수 있다. 제조사들도 '자기인증' 뿐만 아니라 정부 인증까지 받아야되는 상황에서 전기차 배터리 관련 안전 기준을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 

백원국 국토부 제2차관은 "배터리 인증제는 전기차 안전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이번 시범사업을 통해 배터리 인증제가 조기에 안착해 국민들이 보다 안심하고 전기차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인증 받은 전기차에서 화재 발생하면 누구 책임?...'혼란' 예상

다만 인증받은 전기차에서 화재가 발생할 경우 책임 소지는 누구에게 있는 것이냐는 우려도 존재한다. 제조사의 '자가인증'이 아닌 정부의 인증을 받은 차량이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완성차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안에 들어가는 부품과 배터리 등이 다른 회사의 것이더라도 완성된 상태로 브랜드 이름으로 판매되기 때문에 화재가 발생하면 브랜드 이미지에 손상이 간다"며, "인증제도가 더 생겨서 차량의 문제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겠지만, 인증 후 배터리에 문제가 생기면 책임 소재는 어디로 가느냐"고 말했다.

한 커뮤니티 유저는 배터리 인증제와 관련해 "한 번 시험으로 끝내는 것이 아닌 불시 검사로 테스트에 통과된 배터리 스펙 그대로 적용됐는지 반복 확인하는 절차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15일 한국도로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에서 진행된 배터리 안전성 시험 중 배터리 연소 시험./사진=연합뉴스


안전성 시험 대상이 조립된 '팩' 단위의 배터리라는 점도 화재사고 이후 시비를 가려내기 어려운 부분이다. 배터리의 구조상 낱개 단위인 셀, 모듈, 팩의 단위로 만들어진다. 만약 제조사에서 셀을 만든 이후 배터리가 팩으로 조립되는 과정에서 부주의 등으로 손상이 생길 수 있다는 점 등이 문제가 된다. 이에 팩 단위로 검증을 하게 되면 팩으로 조립된 과정에서 일어난 문제인지 제조사가 최초 만들었던 셀의 문제인지 알 수 없다. 

이호근 대덕대학교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팩 단위 인증에 대해 "현재 정책으로는 판매되는 전기차에 어떤 배터리가 탑재돼는지 정도만 공개된 상황에서 배터리 회사의 협조 없이 배터리에 대한 정보 수집 및 분석 결과를 도출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배터리 회사들도 자동차 제조사 못지 않게 사회적 책임을 질 수 있는 대기업들인 만큼 배터리 제조사도 책임을 져야 한다. 전기차용 배터리의 안전에 대해 적극 대응하려면 배터리 사전인증제를 셀단위로 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전기차 제조사만 특정해 안전성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경우 인증받은 전기차에서 화재가 발생해도 배터리 제조사는 완성차 업체 뒤에 가려질 구조라는 뜻이다.

이 교수는 "단순히 전기차의 부품 하나가 아니라, 배터리 제조사도 같이 책임을 지고 배터리를 감싸는 포장지를 무엇으로 할 지부터 다시 연구를 시작해야한다"며 "국토부가 관리하는 범위가 전기차 제조사에서 배터리 제조사까지 넓어져야 정상적으로 인증이 가능해진다. 배터리 제조사가 배터리를 제조할 때 어떤 문제가 있었고, 어떤 결과가 있었는 지를 국토부에서 요구할 수 있어야한다"고 했다.

이에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원리적인 부분에서 팩 단위로 검증을 받는 것이 맞고 화재는 어떤 부분에서 발생할지 모른다"며 "책임 소재를 가리는 것보다 화재가 발생했을 때 후속 조치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더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하 기자 rlaehdgk@smartfn.co.kr

댓글

(0)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깨끗한 댓글 환경에 동참에 주세요. 0 / 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