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진의 재미있는 K-LCC 이야기] (106) K-LCC의 설립 및 취항사(史) 2세대 항공사_대양항공~코스타항공

2024-05-01 04:51:03
양성진 '세상을 바꾼 K-LCC' 저자


K-LCC 2세대 항공사 시대에 많은 신생항공사가 출범했지만 취항조차 하지 못하고 좌초되는 사례가 유난히 많았다. 그 가운데 항공기까지 도입하고 울산공항을 기반으로 취항을 준비했던 ‘대양항공’ 혹은 ‘코스타항공’이란 항공사가 있었다.

대양항공 설립자 이성래 대표는 한양대 공대를 나와 대우에서 수출업무를 담당하다가 1989년 회사를 나온 뒤 무역업에 뛰어들었고, 2002년 러시아 무역사업을 계기로 항공사업을 시작했다. 이 대표는 2002년 국내 민간기업으로는 최초로 러시아에서 헬리콥터를 수입했다. 이후 2005년 대양항공이라는 이름으로 부정기 운송사업 면허를 취득한 뒤 30인승 대형 헬리콥터를 도입해 제주도에서 여객헬리콥터 사업을 했다.

이후 각 지역에서 K-LCC 설립붐이 일었고, 2008년 초 이 대표는 한성항공 설립자 출신의 이덕형 씨와 손을 잡고 기보유중이던 부정기 항공운송사업자 면허를 여객운송용으로 갱신해 2008년 6월부터 국내선 전세기를 띄우고, 2009년말까지 정기 항공운송 면허를 따 K-LCC로 전환한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대양항공 이덕형 부사장은 "지난 6년여간 헬기운송사업을 하면서 부정기 면허를 받은 상황이라 건교부의 별도허가없이 여객기 사업만 추가하면 전세기를 띄울 수 있다"면서 "조만간 임차로 여객기를 도입해 6월에 국내선 운항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양항공은 기존항공사와 경쟁하지 않고, K-LCC들과도 서로 돕는 체계를 만들어 차별화된 ‘제3세대 항공사’로 인정받겠다고 했다. 대양항공은 "제주항공과 한성항공의 사업을 지켜봤는데 국내 항공시장에서 성공하려면 남들이 뛰는 노선에 취항해서는 본전도 건지기 어렵다"면서 "남들이 하지 않는 틈새시장을 효율적으로 챙기는 게 성공의 관건"이라고 주장했다. 즉 수익성이 높다고 평가되는 김포~제주 노선에 기존항공사를 비롯해 모든 K-LCC들이 뛰어들고 있지만 결국 공급과잉으로 적정 항공요금이 붕괴되면서 자멸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대양항공은 2008년 3월20일 제주도에 있던 본사를 울산공항으로 이전하고, 회사이름을 코스타항공(Kostar Airlines)으로 바꿨다. 코스타항공의 의미는 Korea+Star(코리아스타)였으며, ‘한국의 별(星)’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당시 코스타항공 관계자들은 까맣게 몰랐겠지만 한성항공 설립자 출신인 이덕형 부사장의 한성항공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코스타항공에서 이루려는 의도가 엿보였다. ‘코리아스타’와 ‘한국의 별’은 결국 한성항공의 ‘한성(韓星)’과 맞닿아 있었다. 코스타항공의 로고는 ‘하늘의 기운’을 상징하는 청푸른색 별과 ‘풍요’의 상징인 레드와인 색상을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코스타항공은 2008년 5월30일 국토해양부로부터 부정기 항공운송사업 면허를 교부받았고, ‘울산1호기’로 명명된 포커100(좌석수 108석) 항공기가 8월26일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울산시는 2008년 9월22일 울산∼김포, 울산~제주 노선 취항을 준비중인 코스타항공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코스타항공의 취항은 운항증명(AOC)을 받지 못해 계속 지연됐다. 당시 국토해양부는 심각해지고 있는 K-LCC업계의 경영난을 우려해 운항증명 발급에 매우 까다로운 조건을 요구했다. 운항 안정성 외에 자금확보 방안 등 경영개선 조건을 강화하는 바람에 코스타항공이 해당 조건을 충족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코스타항공은 AOC 발급이 차일피일 늦춰지면서 2009년 1월 결국 날개를 펴보지도 못하고 취항을 포기했다. 그런데 코스타항공이 도입한 항공기의 등록번호가 HL7777이었다. 행운을 상징하는 7이라는 숫자가 네 번이나 겹친 특별한 등록번호의 항공기가 상업비행을 하지 못하고 날개를 접자 당시 항공마니아들 사이에서 두고두고 아쉬움이 회자되었다.

<글 / 양성진 ‘세상을 바꾼 K-LCC’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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