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초의 초창기 충청항공의 운영계획은 다음과 같은 13가지로 나타나는데,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정보량이 부족했던 해외 저비용항공사(LCC)에 대한 선행학습이 상당히 이뤄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①수요가 있는 곳에만 비행기를 띄운다. 예를 들어 수학여행을 가는 학생들이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전세버스처럼 항공기를 띄운다. ②전세편은 조종사, 객실승무원 등 최소한의 인력만으로 운영한다. ③정비와 승무원 등의 교육은 모두 외부에 위탁한다. ④정비와 기내 물품 등 모든 장비는 대여한다. ⑤항공권은 인터넷으로만 판다. ⑥기내식을 없애고, 간단한 음료수와 스낵만 제공한다. ⑦좌석시트, 객실승무원 유니폼, 화장실용품 등 가능한 모든 물품을 기업 협찬으로 한다. ⑧항공기 외부를 광고판으로 활용한다. ⑨항공기는 좌석수 80석 규모의 프로펠러 기종 1대를 우선 들여온다. ⑩우선 들여온 항공기 1대로 국내노선에서 전세기를 운항한다. ⑪일본, 중국, 동남아 등 근거리 국제선에는 2대의 항공기를 추가로 들여와 운항한다. 국제선은 기존항공사가 취항하지 않은 틈새노선을 찾아 전세기를 띄운다. ⑫‘펀 에어(Fun Air)’ 개념을 도입한다. ⑬운임은 고속철도와 같거나 싸게 하며, 기존항공사 대비 30~40% 저렴하게 한다.
충청항공이 초기에 발표한 이 같은 계획 가운데 불과 한 달 새에 도입기종이 포커 100에서 프로펠러 기종으로 조용히 바뀌었다. 당시 국내법상 부정기운송사업자에게 요구하는 최소자본금 50억원을 확보하고, 홍콩과 싱가포르 등에서 추가로 50억원의 외국자본을 유치하고 있다는 계획도 공개했다.
청주시의 지원으로 탄력이 붙은 충청항공은 2004년 5월25일 본사를 청주시 상당구 내덕동 청주문화산업지원센터로 이전했다. 충청항공은 부정기항공운송면허 사업요건인 자본금 50억원을 2004년 6월 9일에야 확충하고, 청주시는 2004년 7월 20일 건설교통부에 항공면허를 신청하는 것으로 계획을 수정했다. 이에 따라 충청항공의 취항은 2004년 10월에서 2개월 미뤄진 같은 해 12월로 변경됐다. 그리고 2004년 6월 16일 ATR72 2대를 도입하겠다는 변경된 기종의 항공기 도입계획이 알려졌다. 정확한 기종은 프랑스의 항공기 제작회사이자 에어버스(Airbus) 자회사인 ATR사에서 제작한 ATR72-200으로 72인승 단거리용 쌍발 터보프롭 항공기였다.
충청항공은 청주시의 지원아래 2004년 8월 항공면허를 신청했으나, 건교부가 유.무선 통신시설 보완 등을 이유로 허가를 보류하면서 모든 취항계획과 재무설계가 틀어졌다. 이외에 당시 항공사 설립시에는 반드시 격납고를 갖춰야 한다는 무지막지한 조항이 있었는데 이는 모든 신생항공사의 발목을 잡았다. 마치 항공사 설립을 실질적으로 가로막기 위한 조항으로 받아들여졌다. 신생 항공사가 항공사 설립자금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격납고를 자체적으로 확보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이 같은 진입장벽은 신생항공사 설립 자체를 포기하게 만드는 주요 요인이 됐다.
이같은 격납고 확보는 나중에 임차도 가능하다고 바뀌었다가 결국 격납고가 없어도 되는 것으로 규제가 대폭 개선되면서 이후 신생항공사 설립이 자유로워지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항공사 설립의 첫 주자였던 한성항공 입장에서는 항공당국과의 갈등이 빈번할 수밖에 없었다. 격납고가 있어야 허가를 내줄 수 있다는 항공당국과 이를 깨뜨려야 하는 한성항공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며 갈등의 골이 깊어진 이덕형 대표는 이후 한성항공 등기이사 명단에서 제외되고 나서야 건교부의 허락을 받아낼 수 있었다.
충청항공은 또 2004년 8월 건교부 면허 신청 과정에서 회사 이름을 갑자기 ‘한성항공’으로 변경했다. 당시 이른바 ‘DJP연합’으로 최초의 여야 정권교체가 이뤄진 상황에서 ‘충청’이라는 단어는 그 어느 때보다 정치적으로 민감했다. 살얼음을 걸었던 건교부 면허 신청 과정에서 안팎의 우려를 받아들여 충청의 항공사가 가지는 정치적 지역색을 떼어내야 했다.
충청항공에서 한성항공으로 회사 이름을 변경했지만 특별한 대외행사나 공식발표조차 없었다. 일반인들은 충북 청주에 본사를 두고 있는 항공사가 왜 한성항공이라는 사명(社名)을 선택했는지 잘 알지 못했다. 다만 지역 명칭을 사명으로 쓰고 있으면 향후 서울(김포)~제주 노선 등 청주가 출발공항이나 도착공항이 아닐 경우의 고객 혼동을 사전에 방지하는 차원이 아니었을까 하는 수준의 인식만 있었다.
그리고 한성항공의 한성이 가지는 의미도 도마에 올랐다. 한성은 조선시대 한성부(漢城府)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이다. 당시만 해도 중국인들이 서울 대신에 사용하는 ‘한성’이라는 용어가 우리 국민들에게 그리 호감가는 단어는 아니었다. 한성항공은 한성의 한자이름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아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이 같은 오해가 있었다.
하지만 정작 한성항공의 한성(韓星)은 ‘한국의 별’을 의미하고 있었다. 한성(韓星)이라는 단어는 국어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작명(作名)이었다. 그런데도 한성항공은 한자어보다는 한글과 영문으로만 표기했기 때문에 한성이 한국의 별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아는 고객은 거의 없었다. 실제로 2004년 8월 사명이 변경됐지만 6개월이 흐른 뒤 2005년 2월에 가서야 '한국 지역항공사의 별(★)이 되겠습니다'라는 슬로건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한성항공은 2005년 2월22일 건설교통부에 부정기항공운송사업 면허를 재신청하고, 청주공항과 제주공항에 발권데스크를 설치했다. 한성항공이 첫 취항노선으로 계획한 청주~제주 간 운임은 기존항공사의 편도기준 7만원에서 절반 수준으로 책정해 국내 항공사 가운데 가장 저렴한 항공사가 되겠다는 기준을 세웠다. 그리고 일찍 예약하면 최대 20% 이상 더 깎아주는 등 탄력적인 가격정책도 내세웠다. 한성항공은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과 경쟁할 생각도 없고, 경쟁상대도 되지 않는다"며 "지방을 잇는 틈새시장을 노려 지역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항공사를 운영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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