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저비용항공사(LCC)의 역사는 1967년 미국에서 사우스웨스트항공이 설립되고 1971년 역사적인 취항을 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아일랜드에서 1984년 설립된 라이언에어가 1990년이후 사우스웨스트항공을 철저하게 벤치마킹한 후 ‘유럽형 LCC’로 변신하면서 비로소 LCC는 미국에서 유럽으로 전파됐다. 그리고 인도계 말레이시아 사람인 토니 페르난데스가 유럽에서 성공한 LCC를 도입할 계획으로 2001년 초 튠에어를 설립하고 같은 해 12월 기존항공사였던 에어아시아를 인수, 유럽형 LCC로 전환하면서 LCC가 아시아로 옮겨오는 발판을 마련했다. 미국에서 시작된 LCC가 유럽을 거쳐 아시아로 넘어오는데 30년이 걸린 셈이다.
이처럼 전 세계에서 대륙마다 LCC가 탄생하고, 성공한 LCC가 나오면서 다시 이를 따라 한 LCC 가운데에서 상당수는 도산하고 이후 제대로 된 시장으로 재편되고 나서야 우리나라에서도 LCC 설립 움직임이 나타났다.
LCC 태동이래 36년이 걸린 셈이고, 아시아시장에 도입된 지 약 2~3년 후였던 2004년 초 충청지역항공추진사업단과 충청항공이라는 이름의 ‘낯선’ 단체가 등장했다. 2004년 3월, 당시 시각으로는 꽤 엉뚱한 뉴스가 처음 나왔다. 2003년 5월19일 설립됐다는 ㈜충청항공이 2004년 3월 8일 충북 청주시와 지역항공사 설립을 위한 업무제휴 협약을 체결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이르면 2004년 10월부터 청주공항과 제주도 더 나아가 동남아를 운항하는 경항공기로 취항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게 과연 가능한 건가?’라는 시각이 먼저였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항공업은 매우 특수한 분야였다. 항공업은 예나 지금이나 국가 기간산업이고, 그래서 민간의 영역이 아니었다. 매우 철저한 허가산업이자 장치산업이었고, 기존 산업의 벽은 철옹성이었다. 민영이기는 하였지만 국적항공사의 대표주자 대한항공은 국민들이나 항공당국으로부터 가히 국영항공사 대우를 받았다. 2004년 당시에는 그랬다.
1962년 설립된 국영 대한항공공사를 1969년 3월1일 한진상사가 운영권을 인수해서 민영 대한항공이 출범하고, 20년이 흐른 후 1988년 2월17일에야 아시아나항공이 설립된 이후 다시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굳건한 양대 항공사 체제가 유지되고 있었다. 충청항공이 비록 ‘지역항공사’를 표방했지만 국가 차원의 정치적 정책적 결단이 뒷받침돼야 새로운 항공사가 설립될 수 있는 것이었지, 민간인이나 민간회사가 지자체와 손을 잡는다고 해서 만들어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최소한 2004년까지 항공사에 대한 우리나라 정서는 그랬다.
그런데 충청항공이 청주시로부터 항공기 도입과 외자유치, 항공사 홍보와 외국인 관광객 유치 등을 지원받아 항공기 3대를 도입해 이르면 2014년 10월부터 제주 등 국내노선에 주 28회, 일본 중국 홍콩 러시아 등 국제노선에 주 28회 등 주 56회의 부정기 및 전세기를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최근 유럽과 동남아시아 등지에 LCC(당시 언론에서는 ‘저가항공사’라 했다)가 속속 등장함에 따라 기존의 항공요금보다 30∼35% 저렴한 요금을 적용하는 저운임의 항공사를 지향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이 같은 최초의 계획을 구체적으로 뜯어보면, 이 항공사는 민영, 지역, 소형, 부정기로 준비되고 있었다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충청항공 설립자들 역시 당시 우리나라 항공업에 대한 기존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었던 것이다. 이들이 최초에 만들고자 했던 항공사업계획은 총 3가지의 이유에서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의 양대 항공사 체제를 훼손시키지 않는 선에서 이루어진 지극히 현실적인 수준이었다.
그 이유는 첫째, 충청항공이 들여오려는 항공기는 양대 항공사가 운항중인 것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경항공기라 했다. 경항공기라 함은 소형항공기로 이해됐다. 그래서 기존항공사들의 시장에 영향을 주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둘째, 허브공항이 인천공항이나 김포공항이 아닌 청주공항이었다. 당시 청주공항은 고속철도시대 개막에 따라 크게 위축돼 있었다. 비행시간보다 고속철도시간이 더 빠른 시대가 열리면서 제주공항과 부산 김해공항을 제외한 나머지 지방공항들은 항공기 이용객 감소로 국내선 항공편 무용론이 대두되면서 존폐위기감에 휩싸여 있었다. 셋째, 부정기 및 전세기를 운영하겠다고 했다. 즉 정기노선에 의한 정기항공사가 아니었다. 당시에도 부정기항공사는 존재했다. 관광헬기사업 등이 부정기항공사였다. 그런데 청주~제주 노선을 운항하겠다고 노선계획까지 발표한 것은 일종의 정기성 부정기편, 혹은 정기성 전세편을 운항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정기항공사가 아닌 부정기항공사임에도 불구하고 민영항공사라는 측면에서만 보면, 꽤 파격적이자 신선한 시도였음은 틀림없었다. 이 ‘신기한 시도’가 성공한다면 충북 청주시에 국내 최초의 민영 지역항공사가 설립되는 것이었다.
2004년 당시 새로운 항공사 설립을 위해서는 지역공항과 해당 지역 지자체의 손을 잡는 게 최우선이자 유일한 해법이었다. 항공사 출신들이 항공사를 설립하고 항공기를 들여오고 취항예정노선을 짜는 것은 가능했지만, 철저하게 면허사업이었던 우리나라 항공시장에서 정부로부터 항공면허와 노선면허를 취득하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을 설립했던 미국에서 항공면허를 취득한 것은 변호사였고, 에어아시아를 설립했던 말레이시아에서 항공면허를 취득한 것은 회장으로 영입한 정부 고위인사 출신이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지자체가 그 역할을 담당했다. 지자체 입장에서는 쇠락해가는 지역공항을 살리는 지역과제가 차기 선거에 매우 유리한 수단이었다. 그래서 충청항공은 청주공항 활성화를 위한 방안이 시급했던 청주시에게 손을 뻗었고, 청주시에서는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청주시는 충청항공과 함께 허가권자인 건설교통부를 대상으로 항공면허 취득을 위한 노력을 해나갔다.
시작은 항공업의 꿈을 꾼 방송기자 출신 이덕형씨의 기획이 2003년 5월19일 충청항공 설립으로 가시화되면서 비롯됐다. 이덕형 대표의 꿈은 조종사에서 시작됐다. 이 대표는 1989년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졸업 후 조종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조종사교육원을 다니며 면장을 취득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미국 항공업계에 대한 이해와 사우스웨스트항공을 탑승하는 기회가 있었다. 1994년 가을 귀국 후 조종사가 아닌 청주지역에서 방송기자를 하다가 2000년부터는 뉴스전문 채널 YTN에서 특집제작팀장을 맡아 항공관련 다큐멘터리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당시 제주지역항공사를 추진하던 우근민 제주도지사에게서 지역항공사 설립 외부컨설팅 자료를 받아보고 그 동안 막연하게 생각했던 LCC 비즈니스 모델과 ‘지역항공사’을 엮는 구체적인 구상을 하기에 이르렀다.
2003년 다니던 방송사를 퇴사한 후 충청지역항공추진사업단을 꾸렸고, 같은 해 5월19일 충청항공을 설립했다. 청주시의 정책적 협조를 이끌어낸 이후 충청항공은 아시아나항공 호주지점장을 거쳐 여행사 대표를 지낸 한우봉 사장을 영입, 2인의 각자대표 체제로 본격 추진됐다. 충청항공 이덕형 대표이사 부사장이 수립한 초창기 운영계획은 “전세버스처럼 수요가 있을 때 전세기를 띄우는 부정기항공사로서 철저히 사업성 위주로 운영되는 회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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