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주의 문화인사이드] 그런 괴짜 선생님 만나고 싶다…뮤지컬 '스쿨오브락'

2024-02-14 15:02:31
'신나게 즐길 준비 되었나? 로큰롤 속에서 놀아보자!'며 들뜬 기분으로 좌석에 앉았다.

예술의 전당 ‘오페라 극장’에 오르는 뮤지컬이라니.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의 모습이 왠지 흐뭇하다.

모든 음악이 라이브로 진행되고, 조명은 700개 이상, 200개가 넘는 스피커가 배치되어 현장의 열기는 더해질 터. 유쾌하고 발랄한 뮤지컬임은 이미 영화에서도 경험하지 않았던가. 물론 2004년도에 개봉한 영화였으니 20여 년이 훌쩍 지났지만, 이 작품은 뮤지컬계 거장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2015년 뉴욕에서 초연한 대표 뮤지컬이다.

그가 만든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캣츠','에비타' 등의 넘버들은 그야말로 황홀하다. 2019년 월드투어로 한국에서 첫선을 보인 후 5년만의 내한인 이 공연이 기다려진 이유다.

공연의 막이 오른다.

밴드 연주의 무대가 열리고, 이어 열정의 극한에서 몸서리치고 있는 듯, 무대 한쪽에서 온 몸으로 연주하는 기타리스트에 눈길이 쏠렸다. 그를 보는 다른 연주자들의 거북한 반응들. 록 스피릿 충만한 그이지만 안타깝게도 그룹에서 조화롭지 못한 기색이 역력하다. 아니 거슬린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밴드에서의 불안하고 불편한 분위기는 그를 퇴출로 몰았고, 자신이 만든 밴드였음에도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큰 소리 빵빵 치며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 집마저 방세도 못 내며 친구에게 얹혀사는 신세다. 그러나 록에 대해 드러내는 자신감은 시원스럽게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굳세다. 자신감이 그의 찌질함마저 사그라지게 만들면서 기대감과 함께 그의 매력을 부추긴다. 그가 뭔가 일을 낼 것 같다.

뮤지컬 '스쿨오브락' 공연 포스터'.

곧이어 일을 냈다. 록을 하는 그가 친구의 신분을 사칭해 '호레이스 그린'이라는 명문 사립학교의 임시 교사가 된 것이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사칭한다는 것은 도덕적으로도 납득되지 않고 정작 같이 살고 있는 친구가 알아도 큰일 날 일이건만, 가짜 임시 교사인 주인공 듀이 핀의 학교 생활은 뻔뻔하기 그지없다. 수업을 하지 않는 것은 물론, 숙제도 없이 규율도 무시한다. 오직 '놀아!' 심플하다. 놀아야 한다. 수업도 숙제도 없다. 치열한 교육 현실을 겪고 있는 학생 관객에게는 이상적인 장면일지 모르나 부모에게는 몹쓸 교사임이 분명하다.

지루하게 놀기만 하던 듀이 핀은 우연히 클래식한 음악 수업 모습을 보고 학생들과 밴드를 결성하기로 한다. 듀이 핀의 열정이 쏟아지기 시작하는 장면이다. 차에 있는 악기를 교실로 옮겨오고, 록의 역사와 아티스트에 대해 가르치기 시작하며 학생들에게 CD를 주고 숙제를 낸다. 이때 평균 연령 12.5세 '영캐스트'(아역) 17명의 활약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경연대회를 준비하면서는 기타리스트, 보컬, 피아니스트, 코러스, 작곡가, 스타일리스트, 매니저 등 프로페셔널 한 직업을 연상시키듯 아이들 스스로 맡은 영역에서 눈부신 성장을 하며 밴드를 이끈다. 

하지만 연습을 거듭할수록 부모들은 이를 기특하고 대견하다고 여기기보다 '한심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지금의 현실에선 충분히 이해되는 이면들이다. 중학생과 초등학교 고학년 자녀를 두고 있는 나 스스로도 '부모가 꼭 저런 반응이어야 할까', 한숨을 내쉬다가도 '나 같으면 어땠을까', '치열한 입시 앞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을까' 생각한다.

그러다 가슴을 내리치는 뮤지컬 넘버가 나에게 강타를 날렸다. “언젠가 내 얘기에 귀 기울이게 할 거에요. 방법을 찾을 거예요. 내 애길 들어준다면 전부 다 말할텐데,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니에요. 내 얘기를 들어주세요.”

이야기 듣는 것이 뭐 그리 어려운가. 그렇게 바쁜 이유가 무엇인가. 저 어린아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좀 기울여 주지. 무대에서의 부모 모습은 한심하고 답답했다. 그러다 저 부모의 모습이 순간 나였다는 생각에, 고개가 푹 숙여졌다. 이야기 듣는 것이 왜 그리 어려웠을까. 이야기가 길어질 때면 난 어김없이 분주해졌다. 아이들이 가장 소중한 존재라면서 그 소중한 존재가 원하는 건 무시한 채 내가 원하는 대로 키운 건 아닐까. 지난 일들이 떠올라 가슴이 거칠게 쓸렸다.

공연속 아이들은 경연대회에 도전해 멋진 모습으로 부모님들을 설득시킨다. 연주는 록 콘서트를 방불케하는 신나는 무대로 마무리 되었다. 객석의 관객들은 모두 일어나 ‘스쿨오브락’을 외치고, 어느새 진심으로 무대 위 어린이들을 격렬하게, 목청껏 응원한다.

그들이 노래하는 ‘권력자에게 맞서라(스틱 잇 투 더 맨·Stick it to the man)’는 외침도 통쾌했다. 이 통쾌함으로 자신감을 일깨워 준 주인공 듀이 핀이 바로 진정한 선생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서 무엇보다 소중한 아이들에게 자신의 재능과 즐거움을 선사하며 그들이 이야기를 듣고, 성장할 수 있도록 응원하며, 뭉클한 감동까지 전해 준.

어쩌면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괴짜가 아니면 진정한 선생님이 되기 어려울지 모른다.

치열한 입시 경쟁에서 벗어나 자신이 진정 원하고 잘하는 것을 하라고 응원해주는 선생님.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아이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열정을 최선을 다해 쏟아내는 선생님. 

아이들의 웃음 코드를 제대로 알고 활짝 핀 웃음을 전해 줄 수 있는 선생님.

그런 선생님. 만나고 싶다.

글·조현주 박사(문화콘텐츠학)

댓글

(0)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깨끗한 댓글 환경에 동참에 주세요. 0 / 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