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진의 재미있는 K-LCC 이야기] (92) K-LCC의 설립 및 취항사(史) 2세대 항공사_영남에어 ①

2023-12-27 05:01:02
양성진 '세상을 바꾼 K-LCC' 저자


부산을 기반으로 설립된 최초의 지역항공사는 에어부산이 아닌 영남에어(South East Air)였다. 이 항공사는 비행기도 들여왔고, 취항에도 성공했다. 정부로부터 민간항공사업 면허를 취득한 순서로만 따지면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한성항공, 제주항공에 이어 5번째로 빨랐다.

2006년 12월29일 설립된 영남에어는 본사를 부산시 부산진구 양정동에 뒀다. 초대 대표이사는 오병훈 사장으로 안진회계법인 회계사 출신이었으며, 대주주는 모 건설사 대표인 것으로 알려졌다. 도입 항공기는 한성항공이나 제주항공의 터보프롭 기종이 아닌 제트기를 도입해 1세대 K-LCC와 차별화를 시도했다.

영남에어는 "한성항공보다 고급화된 항공사를 추구하고 있다"면서 '부산을 기반으로 하는 지역항공사'를 표방했다. 하지만 당시 취항요건이 워낙 까다로웠던 탓에 취항시기를 회사 설립 후 2년 뒤로 잡았다. 2008년 하반기에 ‘정기항공사’ 면허를 취득해 '부산의 날개'가 되겠다고 밝히면서, LCC보다는 지역항공사(Regional Carrier)를 택했다. 즉 한성항공 같은 ‘부정기항공사’가 아닌 제주항공의 ‘정기항공사’ 모델과 기존항공사(FSC)에 필적하는 고급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저렴한 운임정책을 펴는 이른바 ‘하이브리드형’을 꾀했다.

회사 설립 후 4개월여 만인 2007년 5월10일 포커100(좌석수 109석) 기종의 항공기 도입계약을 체결했다. 그동안 한성항공, 제주항공 등이 80인승 이하 소형기종을 도입한 것에 비해 좌석규모 100석이 넘는 중형 제트기 도입을 계획한 것은 K-LCC 가운데 영남에어가 처음이었다. 이는 당시 신생항공사의 도입 항공기에 대한 좌석수 규제가 존재했었다는 현실을 잘 모른 듯하다. 영남에어는 곧바로 본사를 부산시 사상구 괘법동으로 확장 이전하고, 대구사업본부까지 신설하며 부산경남권을 넘어 영남지역 전체로 영업범위를 확대했다.

항공기 도입계약 5개월여가 지난 10월23일 영남에어 1호기가 김해공항에 도착했다. 항공기 외부 엔진부분에 부산갈매기를 그려 넣어 부산을 근거지로 하는 지역항공사 이미지를 형상화했다. 그런데 포커100 기종의 109석짜리 좌석을 80석으로 개조해서 들여왔다. 이날 영남에어는 "단순히 탑승료가 저렴한 저비용항공사가 아니라 부산지역에 기반을 둔 영남의 대표항공사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다시 한번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설립 초 사업계획대로 진행되지는 못했다. 당시 신생항공사의 면허 취득 과정은 험난하기 이를 데 없던 시절이었다. 때문에 애초 정기항공사로 면허를 받아 100석 이상의 항공기를 취항시키겠다는 계획은 이른 시기에 무산되었다. 결국 좌석은 29석이나 줄였고, 2007년 11월5일에야 정기항공사가 아닌 부정기항공사 면허를 받을 수 있었다. 이로써 제주항공과 한성항공에 이어 3번째 K-LCC로 이름을 올렸다. 영남에어는 또 2008년 1월 대구시와 협의를 통해 대구~김포, 대구~제주 등 2개 노선에 대한 취항계획을 약정하고 항공기 동체에 '컬러풀 대구' 로고를 새기는 것 등을 합의했다.

2008년에 들어서자 준비된 자금이 소진되면서 취항준비에 차질이 발생했다. 부정기운송 면허 조건이었던 자본금 50억원의 확보여부가 불투명했고, 직원임금도 체불하고 있었다. 게다가 기도입된 포커100의 리스료를 내지 못해 운항증명(AOC) 인가가 계속 늦어졌다. 계획대로 운항했다면 진에어보다 앞선 국내 3번째 K-LCC로 출범이 예상됐지만 투자유치 실패로 인한 자금난이 발목을 잡았다. 때마침 부산에서 또다른 항공사인 부산항공이 추진되는 바람에 부산지역에서만 2곳의 항공사로 나뉘면서 힘이 분산됐고, 지역상공인들은 부산항공을 선택하면서 영남에어는 지역자본 투자유치에 실패했다. 여기에 부산시마저 부산항공을 선택했다.

우여곡절 끝에 2008년 6월17일에야 부산지방항공청으로부터 운항증명(AOC)을 교부받는데 성공했다. 비로소 취항준비에 들어간 영남에어는 슬로건을 영남지역민의 꿈을 실현하는데 동참한다는 의미를 담아 'Let’s fly for the future'로 정했다. 1호기를 '부산갈매기'로 명명한데 이어 연내 도입예정인 2, 3호기에도 지역특색을 살린 이름을 부여해 부산지역 연고와 소속감을 갖도록 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부산항공과 경쟁하면서도 지역을 향한 구애의 끈을 놓치지 않기 위한 발버둥으로 보였다.

영남에어의 초기 노선전략은 파격적이었다. 부산∼제주, 대구∼제주, 부산∼김포 등 3개 노선에 동시 취항키로 했다. 신생항공사의 경우 취항 초기에는 1대의 비행기로 1개의 노선을 왕복 운항하며 운항경험을 쌓는 게 일반적인데 이 회사는 1대의 항공기로 3개 노선을 동시에 취항한다는 노선전략을 짰다. 그런데 실제 운항에서는 더 나아가 김포~제주 노선까지 무려 4개 노선을 운항했다. 이에 따라 김포, 부산, 대구, 제주 등 4개 공항에서 동시에 취항하게 됐다.

영남에어는 기존항공사들이 수요부족으로 운항을 꺼리는 노선 등 기존 항공여객시장의 틈새를 공략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당시 K-LCC 업계에서는 영남에어가 부산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정작 부산에서 외면을 받자 대구시와 손을 잡는 바람에 부산과 대구 모두 포기할 수 없는 노선이 되고 말았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영남에어의 시작은 2006년 12월로 진에어나 에어부산보다 월등히 빨랐지만 취항 준비기간이 길어져 정작 취항은 진에어에 8일 뒤진 2008년 7월25일 이루어졌다. 그리고 지역 경쟁자였던 부산항공은 부산국제항공에 이어 에어부산으로 이름을 바꾸고 영남에어 취항 3개월 후인 2008년 10월27일 취항하면서 영남에어는 난기류에 빠졌다.

<글 / 양성진 ‘세상을 바꾼 K-LCC’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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