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진의 재미있는 K-LCC 이야기] (91) K-LCC의 설립 및 취항사(史)_2세대 항공사 ⑧

2023-12-20 05:07:02
양성진 '세상을 바꾼 K-LCC' 저자


진에어가 출범하고, 진에어가 폭풍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을 때, 늘 가까운 자리에는 지금은 고인이 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막내딸 조현민씨가 있었다. 조 회장의 1남2녀 가운데 유독 막내딸만 진에어 곁에 있었다. 그래서 2000년대 후반과 2010년대 초중반까지 K-LCC 업계에서는 장남은 대한항공, 큰딸은 호텔, 막내딸은 진에어로 교통정리를 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돌았다. 그런 추측이 나올 만큼 조현민씨의 진에어 챙기기는 확실히 남달랐다. 중요한 의사결정은 대부분 조현민씨의 작품이라는 얘기가 나왔고, 그래서 진에어는 ‘조현민의, 조현민에 의한, 조현민을 위한 항공사’라는 말이 회자됐다. 따라서 오늘날 진에어의 성공을 견인한, 지금은 ‘잊혀진’ 공로자는 조현민씨인 셈이다.

조현민씨는 1983년 8월 미국 하와이에서 태어난 미국 국적자이고, 미국 이름은 조 에밀리 리(Cho Emily Lee)이다. 그의 아버지가 경영학 석사 공부를 한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 남가주대)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고, 2005년 8월 졸업 직후 9월에 LG애드에 입사해 메르세데스 벤츠 국내광고를 담당했다. 이후 2007년 3월 대한항공에 입사, 광고선전기획팀 과장으로 일했다.

조현민 과장은 당시 출범한 진에어의 톡톡 튀는 마케팅을 기획 연출했다. 진에어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의 객실승무원이 기내서비스를 하고, 동화속에 나오는 램프요정 ‘지니’라는 애칭을 붙였다. 2008년 6월15일 명동 한복판에서 펼쳐진 진에어 출범식에서 조 과장은 청바지를 입고 행사내내 소리를 높이며 흥을 돋웠다. 항공업계에서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대한항공이 이같이 발랄하고 파격적인 마케팅을 선보인 데는 조 과장의 역할이라고 봤다.

2010년 3월26일 조현민 팀장은 조원태 대한항공 전무와 함께 진에어 등기이사에 선임되면서 본격적으로 진에어 경영에 관여했다. 2009년 인사에서 부장으로 승진한 지 채 2년이 안된 2010년 12월29일 발표된 대한항공 2011년 임원 정기인사에서 27세의 나이로 임원으로 승진했다. 조현민 상무는 2012년 1월1일자로 진에어 전무에 올라 마케팅 부서장을 맡았다. 진에어에서는 전무지만 대한항공에서는 상무 직급을 유지했다.

조 전무는 진에어 등기이사가 되기 전부터 공식행사마다 얼굴을 비추며 홍보맨을 자처했다. 조 전무는 '저가항공사는 불편하고 위험하다'는 편견을 깨는데 주력했고, 출범 2년 만에 흑자를 기록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조 전무는 "미국 사우스웨스트항공은 LCC로서 자기만의 영역을 확실히 구축했다"며 "그동안 진에어가 아는 사람만 아는 항공사였다면 이제는 대중적으로 다가설 수 있는 친숙한 이미지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2012년 7월17일 조 전무는 진에어 객실승무원 유니폼을 입었다. 이날 오전 김포발 제주행 LJ643편에 올라 승객들에게 탑승인사를 하고, 음료수를 서비스하는 등 객실승무원 일일체험을 했다. 청바지에 연두색 티셔츠, 연두색 야구모자 차림을 한 조 전무는 항공기가 정상고도에 접어들자 쟁반을 들고 승객들에게 감귤쥬스 등 음료를 서비스했다.

이후 진에어 부사장과 대한항공 통합커뮤니케이션실 전무, 한진관광 대표이사, 칼호텔네트워크 대표이사를 맡는 등 승승장구하던 그는 2018년 4월 광고대행사 직원에게 물컵을 던진 일이 외부에 알려졌고, 당시 우리사회의 갑질논란에 휩싸이면서 모든 직책에서 물러났다.

이 같은 논란의 와중에 조 부사장이 편법을 써서 회사경영에 참여하고 있다는 뜻밖의 주장이 제기됐다. 진에어의 등기임원 재직(2010~2016년)이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는 지적이었다. 여기에 국토교통부가 조 부사장의 진에어 등기임원 재직기간 동안 사실을 파악하지 못하는 등 관리·감독에 소홀했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비난여론에 등이 떠밀린 국토부는 2018년 4월17일 "진에어는 2009년에 국제항공운송사업 면허를 발급받았고, 외국 국적자인 조현민은 2010년 3월부터 2016년 3월까지 진에어 등기임원으로 재직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당시 항공법령에는 등기이사 변경 등에 관한 보고의무 조항이 없어 지도·감독에 제도상 한계가 있었으며, 문제점 개선을 위해 2016년 9월30일부터 등기이사 등 경영상 중대한 변화 즉시 고지의무, 면허기준 지속 준수의무 명시화, 관련 증명자료 제출 등 법적절차를 개선하여 항공사의 주요 변경사항 등을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국토부는 이어 "조현민의 진에어 등기이사 문제와 관련하여 진에어로부터 외국인 등기임원 임명사실 및 사유, 장기간 결격사유 유지 등에 대해 사실조회하고, 공식적으로 여러 법률 전문기관 자문을 거쳐 법적·행정적 제재방안을 검토하여 문제가 있을시 철저히 조치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2018년 6월 말 국토부는 급기야 진에어에 대한 면허 취소여부 심의에 돌입, 신규항공기 도입과 운수권 배분 불가 등의 제재를 내렸고, 이는 2020년 3월31일 제재처분자문위원회에서 진에어에 내렸던 행정제재를 19개월 만에 해제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당시 정부 중징계의 골자는 조현민 부사장이 미국 국적인데 어떻게 진에어의 등기이사가 될 수 있었느냐는 것이었다. 그런데 항공업계에서는 2010년 3월26일 진에어 등기이사에 선임되던 당시부터 그 이후에도 조현민 이사의 미국 국적은 모두에게 알려진 사실이었고, 아무도 이를 지적한 사람이나 기관은 없었다.

2010년 7월1일 조현민 대한항공 통합커뮤니케이션 팀장(부장)이 전개하고 있는 ‘스타크래프트 마케팅’이 한진그룹에 새로운 활력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뉴스에서도 “미국 국적인 조 팀장(미국명 조에밀리리)은 대한항공의 홍보마케팅에 깊숙이 관여, 언니인 조현아 전무나 오빠인 조원태 전무와는 확연히 다른 색깔을 내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2011년 4월 계열사인 한진에너지 등기이사에 선임됐을 때도 “조 상무보는 3월29일 이사에 선임되고 4월12일 조 에밀리 리(Cho Emily Lee)라는 이름으로 등기를 마쳤다. 조 상무보는 국적법상 미국인이다. 조 상무보가 등기이사인 곳은 진에어와 정석기업을 더해 3곳으로 늘었다”는 뉴스도 있었다.

이처럼 조현민 부사장의 국적은 무려 8년간 모두에게 알려진 사실이었지만 2018년 4월 우리사회의 갑질논란 파장에 휩쓸리면서 타의에 의해 K-LCC업계에서 떠나야 했다. 당사자 입장에서는 꽤 억울하고 어이가 없었겠지만 긴 안목의 역사적 관점에서는 K-LCC 업계의 손실이었다. 우리나라에 LCC가 태동한 이래 수많은 뉴스가 생산되었는데, 그 뉴스들 속에서 가장 오랫동안 가장 많이 등장한 몇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그는 K-LCC의 선각자였다.

<글 / 양성진 ‘세상을 바꾼 K-LCC’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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