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정의 시선] 우리은행 고객은 없다

신수정 기자 2024-03-29 13:46:05

'기업금융 명가'를 지향하던 우리은행이 최근 '고객중심 자산관리(WM) 전문은행 도약'이란 새로운 경영 비전을 제시했다. 그런데 우리은행의 고객중심 자산관리는 KB국민‧신한‧하나‧NH농협은행 등 경쟁은행들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우리은행은 지난 7일 기자간담회에서 "완전판매를 통해 불완전판매를 종식하고, 고객중심의 자산관리 전문은행이 되겠다"면서도 초고위험 투자상품인 주가연계증권(ELS)는 판매를 지속하겠다는 기존의 입장을 고수했다. 이는 우리은행과 같이 '고객중심 자산관리'를 강조하는 다른 시중은행들과 대조되는 행보다. 

NH농협은행은 지난해 10월부터 원금비보장형 ELS 판매를 전면 중단했고, KB국민‧신한‧하나은행도 올해 1~2월 ELS 판매를 중단했다. 반면, 우리은행은 일본 닛케이225지수(닛케이지수) ELS를 지금까지도 판매하고 있다. 해당 ELS의 리스크 축소를 위해 ▲만기 배리어(원금손실 발생기준) 기존 65%에서 55%로 인하 ▲판매 종목 3개로 제한 ▲판매 비중 10% 인하 등 운용 정책을 손봤기에 "안정적"이라고 주장하면서다. 

그러나 ELS 판매를 중단한 은행들도 만기 배리어를 55% 정도로 설정했었다는 점에서 여전히 위험한 투자상품을 권하고 있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ELS는 일정 구간들에 따른 수익률을 미리 정해놓고, 기초자산이 특정 구간 이하로 내려가지 않으면 연 5~10%대의 이자수익을 거둘 수 있는 파생상품이다. 하지만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최대 원금 100% 손실까지도 가능해 기대수익 대비 막대한 손실 가능성이 있다. 과거 수많은 중소·중견기업들을 도산으로 몰고간 환헤지 파생상품 '키코(KIKO)'와 유사한 구조다. 그러나 은행들은 ELS를 확정 이자 상품, 고금리 예금인 것처럼 판매해 금융당국으로부터 불완전판매 지적을 받았다. 

일각에선 우리은행식 고객중심 자산관리가 일종의 '눈속임'이란 지적이 나온다. 완전판매를 전면에 내걸고 있지만, 사실상 ELS를 동원해서라도 거래 수수료 등 비이자수익을 늘리겠다는 심산으로 보인다는 얘기다. 결과적으로 초고위험 투자상품에 노출되는 건 우리은행을 찾은 애꿎은 고객이란 우려도 섞여 있다. 

박선종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많은 사람들은 은행이 예‧적금 같은 아주 안전한 자산을 관리해주는 곳으로 알고 찾는다”며 “우리은행이 ELS 같은 위험한 상품을 판매하는 것에 부정적인 입장”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금 금리가 연간 4% 수준인데 은행이 ELS 판매 수수료로 1%씩만 가져가도 투자 기대수익의 25%를 가져가는 셈이다”며 “이걸 금융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고객중심 자산관리란 것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일각에선 우리은행이 ELS 판매를 고수하는 배경으로 우리금융그룹 산하에 증권사가 없는 상황을 꼽는다. 타 금융그룹과 달리 우리금융에는 ELS 판매를 대신할 창구가 없다는 분석이다. 올초 '시중은행 당기순이익 1위'라는 목표를 제시한 우리은행 입장에서도 ELS를 통한 비이자수익은 포기하기 어려운 요소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이유들이 쌓일수록 고객이 수익성에 밀렸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필연적으로 고객중심 자산관리에 대한 진정성은 의심받게 된다. 게다가 우리은행이 판매하는 ELS가 기초자산으로 삼는 닛케이지수는 '고점'이라 현 시점에서 3년 만기로 상품을 가입하면 큰 손실을 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닛케이지수는 지난 28일 장중 한때 사상 최고치인 4만888.43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은 같은 날 금융통화위원회 금융안정회의에서 최근 논란이 되는 닛케이지수 등과 연계된 ELS 발행이 계속되는 만큼 손실 위험에 유의해야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한은은 "이들 지수가 역사적으로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어 앞으로 급격히 가격이 조정되면 이를 기초로 발행한 ELS의 손실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우리은행은 최근 은행들 중에서 가장 먼저 홍콩H지수 ELS 배상을 결정했다. 우리은행이 처리해야 할 관련 금액은 400억원이다. 타은행들에 비해 적은 금액이라지만, 피해 고객 입장에서는 결코 적지 않다. 우리은행이 ELS를 반성하기에도 부족하지 않은 금액이다. 과연 우리은행의 배상 결정 속엔 그 반성이 있었을까. 직원의 불건전 영업에 대한 책임을 따지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을 시행한다지만, 무엇보다 먼저 ELS 같은 상품을 팔지 않아야 한다. 허울뿐인 고객중심 자산관리 받고 싶은 우리은행 고객은 없다.


신수정 기자 newcrystal@smartf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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