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진의 재미있는 K-LCC 이야기] (99) K-LCC의 설립 및 취항사(史) 2세대 항공사_에어부산 ⑥

2024-02-14 05:31:01
양성진 '세상을 바꾼 K-LCC' 저자


오늘날 ‘에어부산을 절대 내어줄 수 없다’는 지역사회 주장의 이면에는 ’아시아나항공에게 잠시 맡겨 둔 우리가 실제 주인’이라는 믿음이 깔려 있다. 부산지역에서는 이미 2020년 11월16일 산업은행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 추진을 결정하자 ‘통합LCC’의 본사는 부산에 둘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통합의 주체인 대한항공은 통합의 객체일 뿐인 에어부산의 지역사회에서 요구하는 바람을 수용할 이유는 없었다. 진에어, 에어부산, 에어서울 가운데 1위회사를 제치고 2위회사를 중심으로 본사를 운영하라는 것은 대한항공이나 진에어 입장에서는 불공정한 처사에 다름 아니었다. 또한 전체노선의 다수가 있는 인천공항을 두고 부산으로 내려가 지역항공사로 포지셔닝 하라는 요구는 합리적이지 않았다.

갈등의 싹이 조금씩 커지자 2022년 6월22일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통합LCC 명칭은 진에어로 정했다"며 "인천공항을 허브로 삼으면서 부산을 제2의 허브로 유지하겠다"는 뜻을 조기에 밝혔다. 부산시민단체들은 즉각 반발하며 부산 유치 운동을 본격화했지만 2023년 2월19일 국토부에서조차 ‘항공사 자율 결정사항’이라며 발을 뺐고, 통합LCC의 본사 유치 실현 가능성은 사라졌다.

부산시민단체들은 2023년 3월13일 부산시의회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에어부산은 대한항공과 산업은행의 강압으로 진에어와 합병 후 인천으로 끌려갈 상황에 처했다"고 성토했다. 이들 단체는 "대한항공은 사회적 책임을 뒤로하고 오로지 사익만 추구하면서 지방소멸을 외면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한 "윤석열 대통령은 대통령직인수위 당시 통합LCC 본사는 부산에 유치돼야 한다며 확고히 약속한 바 있다. 정부의 약속을 거스르는 국토부와 산업은행, 대한항공의 행위에 대해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 밝혀달라"고 요구했다.

이후 지역상공계와 시민사회는 에어부산의 분리매각 요구로 방향을 틀었다. 부산시와 부산상공회의소 등은 TF를 만들고, 주채권단인 산업은행에 이를 요구하는 공식 건의문을 전달했다. 지역 상공계는 실제로 대규모 자금을 동원해 ‘블록딜(주주 간 지분 대량 매매)’ 방식으로 에어부산에 대한 아시아나항공의 지분을 통째로 사들이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은 “가덕도신공항이 완공됐을 때 지역 거점항공사의 필요성이 더 커지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양대 항공사의 합병 윤곽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2024년 2월에 심도 있는 논의를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리고 이제 2월이 되면서 그 시기가 도래했다. 여기에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임박하면서 이 문제는 산업계 이슈가 아닌 정치논리로 변질되고 있다. 그 중심에 에어부산에 이어 산업은행의 본사 부산 유치까지 더해졌다. 키를 쥐고 있는 산업은행마저 본사 부산 이전이 추진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산업은행 본사 부산 이전'은 2022년 5월 국정과제로 선정됐다. 산은법 개정안은 여야 이견으로 현재 국회 정무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윤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산업은행 본사 부산 이전을 위한 산업은행법 개정안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하고 있다. 정부는 여기에 더해 2030세계박람회(엑스포) 부산 유치 불발에 따른 부산지역 민심 붙들기에 공을 들이고 있다. 산업은행 자체가 부산지역기업으로 추진되고 있는 상황에서 지역사회의 강한 요구와 염원을 묵살하기에는 여러모로 애매해 보인다.

에어부산의 분리매각에 대한 항공업계 전망은 엇갈리고 있다. 항공업 경험이 없는 여러 지역기업들이 공동으로 에어부산을 인수해서 제대로 경영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현실적인 지적이 있다. 지역사회를 떠나 에어부산 만을 놓고 보면 차라리 진에어와 에어서울 등과 통합되는 것이 최선이라는 반론도 존재한다. 오늘날 에어부산의 성과가 아시아나항공을 빼고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역항공사든 거점항공사든 특정공항에 매이는 게 과연 미래지향적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한계 탓에 하늘길을 지역으로 한정해서 운영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은 게 현실이다. 지역항공사로 출범한 신생항공사에게 거점공항은 초기 정착과정에서 큰 힘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후에는 족쇄에 다름 아니다. 에어부산 역시 설립 초에는 김해공항을 기반으로 성장세가 꽤 가팔랐다. 진에어와 비슷한 시기에 출범해서 K-LCC 2위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초기 에어부산은 결코 진에어에 뒤지지 않았다. 하지만 수도권공항으로 노선을 확장하는 시기가 지연된 탓에 진에어에 확연히 밀리더니, 한참이나 후발주자로 여겨지던 티웨이항공에게 어느새 우위를 넘겨주고 말았다. 진에어, 티웨이항공과 다른 점은 거점공항이 상대적으로 수요가 적은 공항이라는 이유밖에 없었다.

이 같은 지역적 한계는 플라이강원과 에어로케이항공의 사례에서 입증되었다. 플라이강원, 에어로케이항공, 에어프레미아 등 3개 신생항공사가 동시에 면허를 취득했지만 양양공항 거점의 플라이강원은 운항이 중단되었고, 청주공항 거점의 에어로케이항공은 여전히 적자로 성장이 더디고, 인천공항 거점의 에어프레미아는 2023년 3분기 실적에서 흑자를 기록하며 제일 잘나가고 있다.

에어부산 분리매각에 대한 항공업계 전망이 이처럼 크게 엇갈리는 가운데 이상한 점은 정작 당사자가 아무런 말이 없다는 점이다. 합병의 주요 당사자가 숨죽이고 여론을 지켜보고 있다. 의견이 없는 것일까. 자신들을 둘러싼 자기 목소리가 없는 게 일견 이해는 가지만 일견 이해가 안 간다. 산업은행,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부산지역상공계 등 4곳의 영향력에 대한 에어부산의 목소리가 있어야 맞다. 합병이든 독자생존이든 산업은행,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부산지역상공계가 아닌 에어부산 구성원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고 이를 토대로 결정되어야 하는 게 맞다.

<글 / 양성진 ‘세상을 바꾼 K-LCC’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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