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진의 재미있는 K-LCC 이야기] (66)성공한 LCC의 공통점 ② 창업자의 혁신 리더십_기존항공사를 따라 하지 않았다
2023-06-28 06:23:02
사우스웨스트항공의 주요 창업자 허브 켈러허 회장은 항공사 경영을 처음 맡은 직후 미국 내 다른 항공사 직원들이 회사의 운영전반에 대한 다른 영역에 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무관심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조종사, 정비사, 객실승무원, 지상직, 마케팅, 영업 등 각각의 직원들은 자신의 분야에만 관심을 두고 나머지 항공기 운항전반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무관심했다. 이 같은 항공사 문화는 미국 뿐 아니라 세계 공통적이다. 전 세계 항공사의 직원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만큼은 유난스레 전문가이다. 자신이 속한 본부가 없으면 비행기는 절대 이륙할 수 없다. 조종사가 없으면 안되듯이 객실승무원이 없어도 안되고 정비사가 없어도 이륙이 불가능하다.
항공사 CEO라면 항공사만의 이 같은 특유의 문화를 잘 알고 있고, 그래서 대개 이를 인정해준다. 하지만 처음으로 항공사 운영에 뛰어든 변호사 출신의 허브 켈러허 회장은 기존항공사의 기존 관습을 따라하지 않았다. 모든 본부의 직원을 하나로 엮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멀티태스킹을 통해 다른 본부의 업무를 이해하고 심지어 함께 처리하도록 했다. 이 때문에 사우스웨스트항공에서는 직원들이 일체감을 갖고 서로 협력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그래서 LCC 비즈니스 모델의 신화가 된 ‘10분 턴어라운드’의 효시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모든 본부의 직원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융합된 멀티태스킹을 통해 턴어라운드 10분의 역사를 썼다. 당시 미국 내 항공사 가운데 항공업계 출신 임원이 가장 적었던 사우스웨스트항공이었기에 가능했다.
10분 턴어라운드 작전을 성공한 이후 사우스웨스트항공 직원들은 “우리 중 상당수는 항공업계 경험이 없었기에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해낼 수 있었다”고 증언했다. 다른 항공사에서 이직한 경력직원들조차 ‘아, 이게 되는 거였구나’라고 말할 정도였다. 이를 계기로 사우스웨스트항공은 항공업계에서 스케줄을 가장 잘 지키고, 정시발착을 하는 항공사의 전통을 쌓아 올릴 수 있었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의 또다른 주요 창업자이자 초기투자자였던 롤린 킹은 “우리는 회사운영을 하면서 ‘다른 항공사들이 이렇게 하고 있으니, 우리도 그렇게 하자’와 같은 태도를 철저히 배격했다”고 증언했다. 오히려 직원들에게 항공사의 관습에 도전하라고 격려했다. 초창기 직원들은 대부분 창조성을 억압하는 다른 회사에서 옮겨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사우스웨스트항공에 와서 창조성을 발휘하고 이전에는 항공업에서 시도하지 않았던 많은 것을 해볼 수 있었다. 이 같은 회사 분위기에 따라 기존항공사에서 수십년간 일한 경력자들도 기존관행을 버리고 기꺼이 비판적 현장철학을 수용했다.
아시아의 대표 LCC 에어아시아에는 노조가 없다. 말레이시아는 항공노조가 꽤 활성화되어 있는데 반해 에어아시아에 노조가 없는 것이 더 어색하다. 직원들은 사내에서 아주 활발하게 소통이 되므로 굳이 내세울 대표가 필요 없다는 것이 노조가 없는 이유이다. 활성화되어 있는 내부 네트워크를 통해 교류가 일어나기도 하지만 토니 페르난데스 회장이 직접 현장에서 발로 뛰는 덕분이 더 크다.
에어아시아 경영진들은 큰 조직에서 생기는 갈등과 불만의 가장 큰 요인이 개인사무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개인사무실 칸막이를 몽땅 없애 버렸다. 쿠알라룸푸르공항에 위치한 에어아시아 본사 ‘레드 큐’에는 개인사무실이 없다. 유리벽으로 막은 회의실을 제외하고는 모두 트인 개방공간이다. 조종사가 대표나 임원에게 할 얘기가 있으면 그냥 직접 하면 되기에 그게 노조보다 더 낫다고 생각한다. 토니 페르난데스 회장은 모든 경영진과 사무실 근무 직원들에게 고객이나 최전방 직원을 수시로 접할 수 있도록 최대한 비행기를 많이 타라고 권한다.
사실, 항공사 특유의 문화는 다른 본부의 직원들과 교류가 없다는 점이다. 조종사는 조종사끼리, 정비사는 정비사끼리, 객실승무원은 객실승무원끼리만 소통한다. 그래서 에어아시아는 자주 파티를 열었다. 항공업 경험이 전무했던 창립멤버들은 항공사의 소통방식이 어떤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하든 좋은 방법에 대한 선입견이 없었다. 더 나은 방법이 뭔지 모르니 그냥 내키는 대로 해볼 수 있었다.
토니 페르난데스 회장은 자서전에서 “우리는 에어아시아를 설립하면서 당연히 항공산업 전문가를 물색했지만 모든 것에 의문을 제기하고 회사를 이끌었으며, 경쟁사를 상대하는 사람은 항공업계 출신이 아니었다. 우리는 항공사를 시작할 때 항공산업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다. 새로운 시장에서 사업을 시작한다면 의문을 제기하고 파괴하고 또 창조하는 사람을 고용해야 한다. 해당산업 출신은 그 산업 테두리 내에서 생각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고 회고했다. 에어아시아의 성장동력은 사람, 문화, 단순한 메시지와 브랜드였다.
한국의 대표 LCC 제주항공의 문화도 기존항공사에서 보기에 꽤 특이했다. 2006년 초 취항을 준비하는 과정부터 취항이후까지 본부 간 교류가 유난히 많았다. 조종사가 정비사, 객실승무원은 물론 지상직원과도 다 알고 지냈다. 이는 정비사도 객실승무원도 지상직원도 마찬가지였다. 회사를 처음 만드는 과정에서 시작된 이런 문화는 1000명이 넘을 때까지 이어졌다. 가장 큰 이유는 설립 초의 사무실 구조 덕분이었다. 당시 김포공항 화물청사 3층에 위치했던 사무실에는 CEO와 임원들을 비롯해서 조종사, 객실승무원, 운항통제, 예약센터, 영업운송 등이 모두 다닥다닥 붙어 있었는데 이들 전체가 한 개 층에 있었다. 한 개 층에 모두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얼굴을 부딪히며 지냈다.
김포공항 화물청사는 활주로를 따라 -자형으로 지어진 특이한 구조이다. 건물 길이가 500미터가 넘고 한 가운데 복도를 따라서 양쪽으로 수많은 사무실이 존재한다. 국내에서 가장 긴 건물 순위가 있다면 랭킹 안에 들어간다. 입주사 직원들이 끝에서 끝까지 복도를 따라 운동 겸 산책을 다닐 정도였다. 제주항공은 사무실과 사무실의 문을 터서 통하게 했다. 모든 직원들이 휴식을 취하거나 손님을 만나는 라운지를 중간에 조성해서 수시로 유대감을 쌓을 수 있도록 했다.
우리나라 LCC의 수많은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내고 돈독한 기업문화를 창조해낸 유서 깊은 김포공항 화물청사에서 빠져나와 항공지원센터로 옮긴 제주항공이 그 때문인지 이제는 초창기 정신을 많이 상실했다고 평가받는다. 반면에 티웨이항공이 김포공항 화물청사 3층으로 입주하더니 각 본부별 유대를 쌓는 효과를 톡톡히 내고 있다. K-LCC업계에서는 최근 “과거 기존항공사들조차 불가사의하게 여겼던 제주항공의 독특한 기업문화가 티웨이항공에서 꽃을 활짝 피우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리고 제주항공은 2005년 1월25일 취임한 초대사장부터 2020년 5월31일까지 15년 5개월 동안 수 차례 CEO가 바뀌었지만 단 한번도 항공사 출신을 대표로 선임하지 않았다. 코로나19 직후인 2020년 6월1일자로 선임된 아시아나항공 출신의 김이배 대표가 첫 항공사 출신이다. 물론 임원 중에는 기존항공사 출신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 따라서 비항공인 출신의 대표이사가 주재하는 임원회의에서 “대한항공에서는 이렇게 한다” 라거나 “아시아나항공에서는 저렇게 한다”는 말이 매우 경계되었다. 오히려 “기존항공사처럼 하면 제주항공은 망한다”는 말이 나왔다. 항공사 운영전반에서 기존항공사와 다르게 운영되기를 바랐다. 제주항공에서 비교대상은 사우스웨스트항공이나 에어아시아의 지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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