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진의 재미있는 K-LCC 이야기] (63) LCC의 성공은 세상을 바꾸었다 ②

2023-06-07 15:28:42
양성진 '세상을 바꾼 K-LCC' 저자


K-LCC가 출범하고 불과 5년이 지난 우리사회에는 ‘항공업계의 가격파괴’라는 예전에 보지 못했던 세상이 열렸다. 제주도까지 1만원권 비행기 티켓이라는 거짓말 같은 이벤트에 소비자들은 열광했다. K-LCC마다 접속자가 폭주해 예약은커녕 홈페이지 접속조차 하지 못한 채 입맛만 다시고 포기하는 일도 속출했다. 때문에 3~4개월 뒤에 탑승할 항공권을 미리미리 예약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으로 떠올랐다.

지금이야 일반화되었지만 K-LCC 출범 5~6년차 시점이었던 2010년 당시 우리나라 항공소비자들은 이른바 ‘얼리버드(early bird)’ 항공권을 익히기에 여념이 없었다. K-LCC들의 항공티켓은 공급량이 정해져 있어 티켓이 동이 날 무렵에는 운임이 정상가에 다다랐다. 예약률이 높아질수록 가격도 비싸지는 구조였다. 통상 예약률이 10% 미만일 때 얼리버드 최저가에 이용이 가능했다. 이 같은 항공권 가격파괴로 여행객들의 인식도 많이 달라졌다. 여행일정이 확정되면 무조건 빨리 예약하는 게 상책이었다. 일정변경 및 취소불가 등 제한사항이 많은 항공권일수록 그만큼 더 싸고 빨리 팔렸다.

흔히 수요가 공급을 창출한다고 생각하지만 항공여행에서는 반대의 현상이 일어났다. 과다공급이 가격하락을 불러왔고, 풍부한 물량과 낮은 이용료가 수요를 불러일으켰다. 대표적으로 제주도 여행붐을 일으킨 가장 큰 요인은 항공수송의 과다공급이다. 제주도 가는 비용이 저렴해지면서 제주도 여행이 각광받은 것은 합리적인 인과관계이다. K-LCC 출범으로 제주여행의 편의성이 올라가면서 2007년부터 한국인이 즐긴 적이 없던 새로운 콘텐츠가 생겨났다. 그것은 한국의 여행상품 중에서 가장 성공한, 그리고 한국의 많은 지방자치단체가 일제히 따라 할 정도로 유행한 제주올레이다. 제주올레는 제주 여행 판도에 새로운 키워드 몇 가지를 추가시켰다. 첫 키워드는 ‘힐링’이다. 지금은 거의 일상적으로 사용할 정도로 익숙해진 이 말이 오르내린 시점은 제주올레가 각광받은 시점과 유의미하게 일치한다.

더 중요한 변화는 제주올레로 인해 우리나라에도 자유여행이라는 여행장르가 대단히 빠르게 자리잡았다는 점이다. 여행업계에서는 FIT(Foreign Independent Tours)라는 약자로 쓰이는 자유여행은 패키지여행을 빠른 속도로 밀어냈다. 누가 제주도를 가는데 패키지여행을 가느냐고 반문하겠지만 K-LCC 출범 이전에는 그게 대세였다. 자유여행과 패키지여행은 각각의 장단점이 명확하다. 자유여행은 상대적으로 비용이 적게 들고 내 취향에 맞는 코스를 내가 짤 수 있는 대신 미리 알아봐야 하고 근본적으로 내게 뭔가 취향이 있어야 한다. 반면에 패키지여행은 상대적으로 조금 더 비용이 들고 남이 짜준 코스를 도는 대신 내 준비나 취향이 없어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K-LCC 출범 전의 제주도 여행은 대형여행지와 단체관광객 위주의 프로그램으로 운영되는 대표적인 패키지여행의 목적지였다. 제주올레는 그 판도를 크게 틀었다. 수학여행과 단체여행의 목적지로 향하는 발길이 줄고 자유여행을 목적으로 하는 여행자가 늘어난 것이다. 이렇게 제주올레는 제주도가 지금까지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경향인 힐링과 자유여행을 가져왔다.

중요한 요소가 하나 더 있다. 공짜다. 제주올레에는 입장료가 없다. 이를 통해 K-LCC와 제주올레가 실속 자유여행이라는 새로운 여행패턴을 불러왔다. 왕복 10만원 이하의 비행기표를 끊고 하루 투숙료가 2만~3만원 정도인 게스트하우스에 머무르며 저렴한 식사로 요기를 해결한다면 20만~30만원 정도로도 제주도의 풍광을 즐길 수 있었다. 이렇게 제주도를 즐기는 방법이 변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K-LCC의 출범은 제주올레의 흥행에 단초를 마련했다. 바꿔 말하면, 제주올레가 흥행하면서 K-LCC업계는 ‘올레꾼(올레길을 걷는 사람)’ 덕분에 쾌재를 불렀다. 올레꾼 대다수는 ‘올레길 여행은 K-LCC가 더 잘 어울린다’는 믿음이 강했다.

게다가 올레꾼 덕분에 항공업계의 고질적인 비수기와 성수기 간 승객수 차이가 줄어드는 현상마저 나타났다. 과거에는 7~8월 여름장사로 1년을 먹고 산다고 했던 국내 항공업계의 생태계가 올레꾼 덕에 달라졌다. 아무리 자주 항공여행을 즐기는 사람도 1~2년에 1회 정도 제주도를 방문하는 게 보편적이었지만, 제주올레가 흥행에 성공한 이후에는 몇 차례로 나눠 올레길 코스를 다 도느라 1년에 3~4차례 제주도를 찾는 여행객이 부쩍 늘어났다.

그리고 2011년 ‘제주항공 효과’라는 말이 처음 등장했다. 2006년 6월 국내선 운항을 시작한 이후 운임인상 억제와 여행객 증가 등 항공여행 대중화의 기반을 마련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제주항공 효과’는 20여년간 기존항공사 두 곳이 점유한 ‘철옹성’ 같았던 국내 항공업계가 ‘공급자 중심’의 시장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변화된 현상이었다. 전 세계 LCC의 효시 사우스웨스트항공이 만들어 낸 ‘사우스웨스트 효과’에는 그들만의 ‘개척자(frontier)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제주항공도 설립과정에서 각종 규제와 기존항공사의 텃세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겪은 고난과 극복의 역사를 의미하는 정신이 있다. 그것은 영어로는 ‘프런티어 정신’이었고, 우리말로는 ‘개척자 정신’이었지만 ‘맨땅에 헤딩’이란 용어를 더 많이 썼다.

<글 / 양성진 ‘세상을 바꾼 K-LCC’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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