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진의 재미있는 K-LCC 이야기] (61)전 세계 LCC 공통분모 ⑥ 기존항공사의 신생 LCC 영업방해로 정부 처벌을 받은 것도 똑같았다
김효정 기자2023-05-24 06:34:01
사우스웨스트항공이 러브필드공항과 포트워스신공항을 두고 법정싸움 중이었던 1975년 2월14일, 사우스웨스트항공을 지속적이고 조직적으로 온갖 방해를 일삼았던 브래니프항공과 텍사스인터내셔널 등 기존항공사 2개사가 미국정부에 의해 기소됐다. 혐의는 사우스웨스트항공의 정당한 영업행위를 방해하여 그들을 항공업계에서 쫓아내려 했다는 것이었다. 기소된 두 회사는 혐의를 인정했고 10만 달러(환율 1300원 환산시 약 1억3000만원)의 벌금형에 처해졌다. 지금으로부터 48년 전의 벌금액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꽤 큰 액수의 중범죄에 해당되었다고 유추할 수 있다.
그리고 35년 후 우리나라에서도 똑 같은 일이 있었다. 기존항공사의 신생 LCC에 대한 영업방해는 똑같이 벌어졌고, 정부의 처벌도 똑같이 있었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35년 전이나 35년 후나 기존항공사와 신생 LCC 간에는 필연적으로 같은 갈등을 겪게 마련인 듯하다.
제주항공이 본격적으로 근거리 국제선 취항을 시작하고, 기존항공사들이 자회사와 계열회사를 통해 K-LCC 시장에 참여하면서 이른바 ‘제주항공 죽이기’가 암암리에 이루어졌다. 2009년 K-LCC업계는 2006년 취항한 제주항공과 2008년 취항한 진에어와 에어부산, 그리고 2009년 1월에 신규 취항한 이스타항공까지 4개사가 경쟁하고 있었다. 당시 시장구도는 4개사가 각각 치열하게 4인4색의 시장 다툼을 하는 와중에 대한항공이 영업까지 도와주는 진에어, 아시아나항공이 적극 밀어주는 에어부산 등 ‘자회사형 LCC’ 2개사와 제주항공, 이스타항공 등 ‘독립형 LCC’ 2개사 등으로 나뉘어 경쟁하는 이중구도였다.
이를 크게 보면,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진에어, 에어부산 등 4개사가 독립형 LCC 2개사를 시장에서 밀어내기 위한 ‘땅 따먹기’ 싸움의 구도를 보였다. 기존항공사들은 시장지배력을 이용해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의 해외 신규 노선 취항을 방해하거나 이들과 계약을 맺지 못하도록 여행사에게 은근한 압력을 넣었다. 이 같은 사례가 빈발하자 제주항공은 자사의 영업과 운송 직원들에게 증거를 수집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제주항공은 사례를 취합해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하는 방안을 준비했다.
제주항공은 2009년 3월20일 첫 국제선 정기편을 띄울 당시에 매출액 1∼20위권 여행사와는 상품계약을 체결하지 못했다. 기존항공사가 이들 여행사에게 '제주항공과 거래할 경우 향후 좌석 배당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식으로 압력을 행사한 결과였다. 더 구체적인 사례는, A여행사가 제주항공과 계약 성사 직전까지 갔지만 취항 1주일 전에 취소했다. 또 기존항공사의 영업직원이 B여행사 대리점을 찾아가 자신의 소속을 밝히며 "제주항공 상품을 취급하면 앞으로 가격이나 좌석 협조가 어렵다"고 말했다. 제주항공과 대리점 계약을 이미 체결한 C여행사는 기존항공사의 주관사에서 배제 당했다. 한 여행사 사장은 "좌석을 확보해야 영업이 되기 때문에 여행사들은 대형항공사에 언제나 '을'의 입장"이라며 "기존항공사들과 등 돌릴 각오가 아니라면 작은 항공사와 연계된 상품은 광고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 같은 증언들에 대해 기존항공사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선두 항공사를 죽이기 위한 후발업체들의 음해"라고 주장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09년 6월25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에 조사관을 파견해 시장우월적 지위 등 불공정거래 행위가 있었는지에 대해 조사를 시작했다. 공정위는 LCC가 생기면서 중소여행사들이 이들과 거래를 시작하자 기존항공사들이 계약해지를 요구하는 등 우월적 지위를 남용한 사례가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공정위 조사는 해를 넘긴 2010년 2월24일 전원회의를 열고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한 행위에 대한 처벌수위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날 공정위는 국제선 여객운송의 60%, 국내선 여객운송의 90% 이상을 담당하며 수십 년 동안 국내 항공시장에 지배력을 행사하던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2006년부터 생기기 시작한 제주항공, 한성항공, 영남에어의 시장진출을 의도적으로 저지했다고 판단했다.
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제주항공의 티켓을 팔면 불이익을 준다며 여행사들을 회유한 사례가 적발됐다고 밝혔다. 독립형 K-LCC들의 티켓이 포함된 해외여행 패키지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했다. 이와 함께 대한항공이 국내 항공시장 점유율 1위인 시장 지위를 이용하여 여행사들에게 항공티켓을 일정가격 이상 할인하지 못하도록 압박했다는 것도 밝혀냈다. 하지만 제주항공의 시장 진입시기가 2006년으로 얼마 되지 않았고 아직은 매출규모가 작아 이를 방해한 기존항공사에 대한 과징금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흘러 나왔다.
공정위는 2010년 3월11일 독립형 K-LCC의 영업활동을 방해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에 대해 11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고 발표했다. 대한항공에게 103억9700만원, 아시아나항공에게 6억4000만원의 과징금 부과를 결정하고 시정명령을 내렸다. 대한항공은 좌석판매 제한행위 부분에서 5억9700만원의 과징금이 부과됐으나 항공권 판매량에 대해 조건부 리베이트를 제공한 행위에 대해서도 98억원이 부과돼 전체 과징금 규모가 103억9700만원으로 불어났다.
공정위는 기존항공사가 제주항공, 한성항공, 영남에어 등과 거래하는 여행사에 대해 성수기와 인기노선의 좌석 공급, 가격지원 등을 제한하거나, 불이익을 주겠다고 압박하는 방식으로 여행사들의 독립형 K-LCC 좌석판매를 제한했다고 봤다. 이에 따라 독립형 K-LCC들은 여행사를 통해 국내선과 일본, 동남아 등 국제선 관광노선의 좌석을 판매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됐다는 게 공정위의 설명이었다. 공정위는 "항공운송업은 사업 초창기에 항공기 확보, 각종 설비투자 등 대규모 자본투자가 이뤄지기 때문에 안정적인 시장진입에 실패하면 막대한 자본조달 비용에 따른 재무적인 압박, 도산 가능성이 커진다"고 지적했다.
공정위가 파헤친 기존항공사의 독립형 K-LCC에 대한 영업 방해의 폐해는 여실히 드러났지만 실질적인 피해당사자들인 제주항공, 한성항공, 영남에어 3사 가운데 한성항공과 영남에어는 이미 영업부진과 자금난으로 문을 닫아 회복 불능 상태에 빠진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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