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진의 재미있는 K-LCC 이야기] (52)전 세계 LCC 공통분모 ② 설립과정 고난의 역사

김효정 기자 2023-04-22 06:12:02
양성진 '세상을 바꾼 K-LCC' 저자

모든 신생항공사가 그렇겠지만 특히 저운임을 무기로 하는 신생 LCC는 기존항공사에게 충분히 껄끄러운 존재였다. LCC가 없던 세상에서 기존항공사들은 비행기를 탈 수 있는 계층만을 대상으로 영업했고, 그래서 항공여행의 대중화가 그리 달갑지 않았다. 때문에 저운임을 실현하겠다는 LCC가 세상에 등장하는 것을 어떻게든 막으려 했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이 취항하기 전까지 미국 항공업계는 항공당국에서 승인 받은 동일한 운임을 책정하고 있었다. 따라서 기존항공사들이 생각하는 항공시장은 다음과 같은 두 부류만 있었다.

1) 비행기 값을 낼 여력이 있는 사람, 그래서 비행기를 타는 사람

2) 비행기 값을 낼 여력이 없는 사람, 그래서 비행기를 못 타는 사람

기존항공사들은 이 같은 두 부류의 시장원리가 곧 시장논리라는 점을 의심하지 않았고, 혹시라도 항공료를 인하하는 것은 곧 항공사의 수입감소를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시장 상황이 변해서 운항비용이 상승하면 곧바로 항공료를 올리면 됐다. 운임이 올라도 비행기 값을 낼 여력이 있는 사람은 계속 비행기를 탈 것이고, 비행기 값을 낼 여력이 없는 사람은 어차피 비행기를 못 탄다는 것은 오래된 관습이었다.

신생항공사이자 개척자정신으로 무장된 사우스웨스트항공은 관습이 아닌 혁신을 통해 시장에서 살아남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기존항공사의 관행적인 운임정책을 뒤집어 보기로 작정했다. 낮은 운임과 훌륭한 서비스를 연결하면 얼마든지 새로운 승객을 창출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전 세계 각 대륙에서 태동한 LCC는 기존항공사와 그들의 편이었던 항공당국으로부터 노골적인 방해공작과 비협조로 설립 초기부터 모두 ‘비슷한 유형’의 어려움을 겪었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은 1966년 초 롤린 킹(Rollin King)이 ‘텍사스의 황금 3각지대를 새로운 항공회사로 공략해 보자’는 생각으로 시작되어, 1966년 말 허브 캘러허(Herbert D. Kelleher) 변호사와 함께 본격적으로 설립작업에 들어갔다. 두 사람의 의기투합으로 1967년 3월15일 ‘에어 사우스웨스트 컴퍼니’라는 항공사를 설립했다. 하지만 1971년 6월18일 취항할 때까지 무려 4년 3개월 동안 기나긴 법정싸움을 벌여야 했다. 그러느라 설립자본금은 모두 까먹고 말았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은 회사 설립 직후 운항허가를 텍사스주 항공당국에 신청했고 1968년 2월20일 별다른 이의 없이 허가됐다. 그런데 허가 당일 텍사스주 기존항공사 3개사가 공동으로 지방법원에 ‘사우스웨스트항공의 항공업 면허를 발급해 주면 안 된다’는 취지의 가처분 신청을 냈으며, 텍사스 언론에서는 “신규 항공사는 불필요하다”는 기존항공사 입장과 동일한 뉴스가 쏟아졌다. 기존항공사들은 “사우스웨스트항공이 취항하려는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이며, 신규 항공사가 들어올 여지가 없다”는 논리로 지역사회에서 반대여론을 이끌었다. 사우스웨스트항공과 기존항공사 3사는 지루한 법정싸움을 벌였다. 1968년 여름, 1심에서 법원은 “댈러스, 휴스턴, 샌안토니오의 3개 도시는 이미 기존항공사들로부터 충분히 항공서비스를 받고 있으므로 사우스웨스트항공이 이 시장에 신규 진입하는 것을 허가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은 즉각 항소했지만 서류가 2심 법원으로 도착하는 데에만 7개월이 걸렸다. 2심 법원도 같은 논리로 사우스웨스트항공이 패했다. 텍사스주 기존항공사들의 논리와 여론은 법원과 언론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고, 사우스웨스트항공은 연거푸 좌절을 맛보는 동안 2차례의 투자유치로 모은 설립자본금은 법정소송 비용으로 모두 탕진했다.

1970년 하반기에 이르러서야 기존항공사 3사의 항소는 연방 대법원에서 최종 기각됐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은 회사 설립 후 무려 4년이 지난 1971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비행기를 띄울 준비에 돌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기존항공사들은 이후에도 사우스웨스트항공 취항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는 등 지속적으로 훼방을 놓았고 사우스웨스트항공은 취항 하루 전날까지 아슬아슬한 법정다툼을 벌여야 했다. 1971년 6월18일, 사우스웨스트항공은 마침내 비행기를 하늘에 띄울 수 있었다. 사연도 많았고 탈도 많았지만 고난과 역경을 딛고 일어선 취항의 역사는 단지 사우스웨스트항공의 취항전사(前史)일 따름이었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은 취항 이후에도 다양한 상대로부터 수많은 견제에 시달렸다.

LCC 항공사


에어아시아 전신인 튠에어(Tune Air) 법인의 설립주주 3인은 모두 항공업에 문외한이었다. 이들은 항공사 허가를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조차 몰랐다. 말레이시아는 어떤 사업을 새로 시작하려면 정치적인 끈이 필요한 나라였다. 그래서 그들은 정부 고위인사인 파하민을 회장으로 영입했다. 파하민 튠에어 회장에게 항공사 설립 허가를 위해 필수적인 말레이시아 정부 최고위층을 연결하는 역할을 맡겼다. 그리고 2001년 7월, 마하티르 빈 모하맛 총리와 면담할 수 있었다. 항공사 설립 허가를 항공당국에 신청하는 게 아니라 말레이시아 총리를 알현하고 총리에게서 결심을 받는 구조였다.

튠에어는 처음부터 라이언에어를 모방한 새로운 LCC 설립이 목표였다. 하지만 총리는 “말레이시아 국내선을 허가한다. 기존항공사를 인수하는 조건이다. 새로운 항공사 설립 허가는 해줄 수 없다”고 결론을 냈다. 총리의 발언은 말레이시아 정부의 정책이었고 법이었다. 튠에어 경영진은 아시아 최초의 LCC 설립이 물 건너 갔다며 크게 낙심했다. 그들은 보잘것없는 ‘에어아시아’라는 작은 항공사가 국내에 존재한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고, 2001년 9월9일 인수계약서에 서명했다. 인수조건으로 에어아시아 부채의 50%를 부담해야 했다. 부채는 4000만 링깃(환율 290원 환산시 한화로는 약 116억원)이었다. 인수 후 새 항공사의 이름을 자신들의 법인 명칭인 ‘튠에어’로 하고 싶었지만 주위의 반응이 신통치 않았고, 더욱이 말레이시아 관광부장관이 강하게 밀어부치는 바람에 튠에어 대신 에어아시아라는 기존 명칭을 그대로 쓰게 됐다.

계약서 서명 이틀 후는 2001년 9월11일이었다. 9.11사태가 발생한 것이었다. 유가는 천정부지로 뛰어올랐고, 전 세계의 모든 승객은 막연한 두려움에 항공여행을 꺼렸다. 항공사들은 탑승객의 수직하락으로 수익성이 급락했고, 이 와중에 항공사를 새로 시작하는 것이 너무 어리석어 보였다. 최악의 상황이었지만 항공사 경험이 없던 이들은 겁도 없이 에어아시아를 운영했다. 심각한 난제에 수시로 부딪혔고, 시련을 겪으며 좌충우돌하면서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한층 강해질 수 있었다.

제주항공 항공기. /사진=제주항공


제주항공을 처음 기획한 제주도는 2002년 10월30일 가칭 ‘㈜제주지역항공사’ 설립계획을 확정했다. 제주지역항공사 설립작업이 빠르고 구체적으로 추진되자 정부에서 반대와 우려 의견이 나왔다. 국영(國營)항공사도 없는 판국에 전국 광역지자체 중 가장 재정자립도가 낮은 제주도에서 도영(道營)항공사를 설립하면 ‘돈 먹는 하마’가 될 공산이 크다는 현실적인 이유가 컸다. 제주지역에서도 반대와 우려의 의견이 나오고, 기존항공사들이 제주도민에 한해 운임을 할인해주는 등의 당근책이 쏟아지자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는 항공사를 굳이 설립할 필요가 있느냐는 여론이 설득력을 얻었다.

이후 제주도와 제주도의회 사이에 제주지역항공사 설립을 둘러싼 힘 겨루기가 벌어졌다. 제주도의회의 반대에 제동이 걸리면서 제주도의 지역항공사 설립 추진은 공전되었다. 게다가 제주지역항공사 설립의 선장 격이었던 우근민 제주도지사가 2004년 4월 대법원에서 벌금형(당선무효형)을 선고받아 도지사직을 상실했다. 이후 대한항공은 또다시 운임인상을 발표했고, 혼란에 빠진 제주도는 갑작스런 도지사의 궐위로 새 지사가 부임하기만을 기다렸다. 2004년 6월6일 34대 제주도지사에 취임한 김태환 지사는 2004년 6월14일 "지역항공사 설립에 따른 채산성과 항공기 운항의 안전성 등에 대한 이견이 존재하고 있다"면서 신중 모드를 보였다.

지역항공사 설립을 두고 제주사회에서 미묘한 신경전이 펼쳐지고 있던 그 시기에 대한항공에서 2004년 7월16일부터 제주도민에 한해 국내선 항공요금을 10%씩 할인해 주기로 했다. 하지만 제주 지역사회에서는 "대한항공이 항공료를 갖고 제주도민을 두 번 죽이는 동안 지역항공사 설립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면서 "항공요금 인상에 대해 항구적인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주체적으로 지역항공사 설립을 논의해야 하며, 김태환 지사의 지역항공사 설립 공약 이행을 거듭 촉구한다"고 지적했다. 대한항공이 전격 발표한 제주도민 국내선 항공요금 할인이 오히려 악재가 되고 말았다. 여론이 급격하게 악화된 가운데 열린 제주도의회에서 지역항공사 설립자본금 50억원 출자가 승인됐다.

<글 / 양성진 ‘세상을 바꾼 K-LCC’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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