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진의 재미있는 K-LCC 이야기] (53)전 세계 LCC 공통분모 ③ 신생 LCC에 대한 기존항공사의 가격대응은 전 세계에서 똑같았다_해외 LCC 사례

김효정 기자 2023-04-26 06:45:03
양성진 '세상을 바꾼 K-LCC' 저자


사우스웨스트항공은 이처럼 기존항공사들의 엄청난 방해를 헤쳐 나오는데 급급하느라 취항이후 적자에 시달렸다. 이익을 내는 방법을 찾는 것이 시급했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이 취항하기 2년 전이었던 1969년 모든 항공사가 휴스턴 도심에서 가까운 하비공항을 비우고 교외에 새로 지은 인터컨티넨탈공항으로 옮겼다. 이에 따라 사우스웨스트항공도 취항이후 인터컨티넨탈공항을 이용하고 있었지만 기존항공사에 밀려 비행기가 텅텅 비어서 운항하고 있었다. 이판사판 도박하는 심정으로 하루 12회 왕복운항하던 휴스턴~댈러스 노선을 텅 빈 하비공항으로 옮겨봤다. 1971년 11월14일 하비공항의 유일한 항공사가 된 사우스웨스트항공에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하비공항의 휴스턴~댈러스 노선 운항 하루 만에 승객이 2배나 증가한 것이다. 단거리 노선을 자주 이용하는 회사원들의 출장승객에게는 거리가 조금 더 먼 신공항보다는 도심에서 가까운 황량한 공항이 오히려 더 알맞았다.

1971년 6월18일 취항이후 처음으로 가능성을 엿본 사우스웨스트항공은 휴스턴에서 출발하는 다른 노선도 몽땅 하비공항으로 옮겼다. 그러자 기존항공사들이 이를 가만두지 않았다. 기존항공사들은 일부 노선을 하비공항으로 이동시키고, 운임도 사우스웨스트항공 수준으로 낮추며 대대적으로 광고까지 했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은 “우리가 하비공항으로 돌아와 요금을 낮추지 않았으면 기존항공사들이 결코 요금을 낮추지 않았을 것이다. 하비공항 요금인하의 공로는 당연히 사우스웨스트항공의 것”이라는 전단을 배포하며 맞섰다. 다행히 휴스턴 사람들은 사우스웨스트항공을 타 주었다. 그리고 수년 후 기존항공사들은 하비공항을 온전히 사우스웨스트항공에게 넘겨주고 철수했다. 이를 계기로 사우스웨스트항공은 처음으로 이익을 내기 시작했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은 휴스턴 하비공항에 있던 항공기 1대를 주말정비를 위해 매주 댈러스공항으로 이동시키고 있었다. 그러던 중, 빈 비행기로 가느니 운항원가라도 건지자는 생각에서 휴스턴~댈러스 노선의 금요일 밤 마지막 비행편을 10달러에 팔았다. 해당노선 운임은 기존항공사들이 27~28달러를 받고 있었고, 사우스웨스트항공은 20달러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금요일 마지막편 운임을 기존 사우스웨스트항공의 반값, 기존항공사의 3분의 1만 받는다고 하니까 광고를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전석이 매진됐다. 승객들 입장에서는 10달러짜리 항공권은 생전 처음 보는 것이었다.

저운임에 승객들이 열광하는 분위기를 읽은 사우스웨스트항공은 댈러스~샌안토니오 노선에서 좌석도, 시간도, 요일도 구분하지 않고 무조건 13달러만 받겠다고 선언했다. 파격적인 저운임이 알려지자 해당노선의 기존항공사 브래니프항공은 10일 후 댈러스~휴스턴 노선 운임을 절반으로 인하하며 반격했다. 브래니프항공은 댈러스 지역 일간신문에 휴스턴행 운임을 13달러로 내린다는 전면광고를 게재했다. 항공업 진출 40년 경력의 항공대기업 브래니프항공 입장에서 댈러스~휴스턴 노선은 수많은 노선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고 전체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했다. 하지만 사우스웨스트항공에게는 유일하게 돈을 벌어주는 노선이었다. 현금 보유가 허약한 회사가 브래니프항공과 저운임을 놓고 경쟁을 펼치면 치명상을 입을 게 뻔했다.

항공대기업의 횡포에 잔뜩 화가 난 작은 신생항공사 사우스웨스트항공은 생존 차원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대응광고를 냈다. 이 광고는 사우스웨스트항공 역사상 가장 유명한 광고문안이 되었다. “누구도 그 잘난 13달러로 사우스웨스트항공을 하늘에서 쫓아내지는 못한다.”

텍사스 지역 언론들은 처음에 대형항공사에 맞서는 작은 신생항공사의 무모함에 승산이 없어 보인다는 보도를 했지만, 나중에는 질 것이 뻔한 약자를 응원하는 심리가 작용하면서 사우스웨스트항공을 지지하는 여론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텍사스 주민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브래니프항공의 노골적인 ‘사우스웨스트항공 죽이기’는 역효과를 일으켰고, 지역여론에 반감을 샀다. 브래니프항공은 댈러스~휴스턴 하비공항 노선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결국 철수했다.

사우스웨스트항공

신생 LCC에 대한 기존항공사의 이 같은 가격대응은 LCC의 효시라 할 수 있는 사우스웨스트항공 취항 당시 시작되었고, 약 30년 후 아시아 최초의 LCC 진입시에도 똑같이 되풀이되었다. 기존항공사의 국내선 운임인하는 급성장하려는 신생 LCC를 곤혹스럽게 만들기 위해 꺼내 드는 전 세계 항공시장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었다. 에어아시아가 말레이시아에서 항공업을 시작할 당시 말레이시아항공과는 다윗과 골리앗의 관계였다. 말레이시아항공은 국영항공사였으며 항공기 120대를 보유했고 국내선 모두를 독점하고 있었다. 그래서 에어아시아의 말레이시아항공과 국내선 경쟁은 애초부터 가능하지 않았다.

하지만 말레이시아항공은 신생항공사 에어아시아를 궁지에 몰아넣기 위해 국내선 항공료를 절반으로 낮췄다. 그동안 말레이시아에서 기존항공사는 운임인상은 있을지언정 운임인하는 없었다. 기존항공사의 운임 50% 인하라는 비정상 상황에 에어아시아가 받은 충격은 대단히 컸다. 말레이시아항공은 에어아시아와 가격경쟁을 하려 했다기보다는 고사시키려는 목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전체매출에서 차지하는 국내선 비중이 말레이시아항공은 미미했지만 에어아시아는 100%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영항공사 말레이시아항공은 정부보조금으로 운영됐기에 위험부담이 거의 없는 반면 에어아시아는 생사가 걸린 문제였다.

에어아시아는 분노했지만 여론에 호소하는 방법 외에 달리 방도조차 없었다. 말레이시아 일간지에 ‘말레이시아항공이 경쟁자를 말살시키려 한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그리고 토니 페르난데스 대표는 교통부장관에게 쫓아가 말레이시아항공의 판매정책이 불공정하다고 항변했고, 장관은 말레이시아항공에게 일단 해당활동을 멈추게 했다. 에어아시아의 LCC 전략이 국민들에게 유명해지고 차츰 명성이 높아지면서 정부는 말레이시아항공이 에어아시아를 시장에서 퇴출시키도록 내버려두기에는 곤란했다. 유권자들이 부정적으로 반응할까 우려했다.

얼마 후, 총리는 말레이시아항공에게 지급했던 국내선 보조금을 취소해 버렸다. 그 바람에 말레이시아항공은 에어아시아와 동일한 선상에서 경쟁하게 되었다. 말레이시아항공이 미처 대비하지 못한 일이었다. 신생항공사이자 아시아 첫 LCC였던 에어아시아로서는 기존 질서를 파괴할 수밖에 없었다. 에어아시아는 파괴는 경쟁자를 파멸시키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 유리하게 시장을 바꾸는 행위라고 믿었다. 에어아시아는 말레이시아 항공시장에 진입해서 경쟁자를 공격하여 기존 영역을 빼앗으려 하지 않았다. 대신 새로운 길을 물색했고, 시장에서 첫 주인이 될 새로운 영역을 창조하는데 주력했다. 결국 에어아시아의 성공은 말레이시아항공을 곤경에 빠뜨리는 매우 중요한 단초를 제공했다.

<글 / 양성진 ‘세상을 바꾼 K-LCC’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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